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그녀를 통해 삶의 진솔한 면을 다시 들여다보다..


작가 오정희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맛깔스럽다. <돼지꿈>에서도 느낀것이지만 작가의 연륜이 묻어나면서 삶을 들여다 보는 그녀만의 통찰력과 위트가 더해져 읽는 이에게 쾌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청양고추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인 찌개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고 난 후의 칼칼함이 묻어나는 그녀만의 단편소설 느낌은 정말 좋다. 어쩜 그렇게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는지, 삶을 살아가는 같은 주부이며 엄마이며 아내인 여자의 눈에 비친 다반사처럼 느꼈던 일상이 이렇게 맛깔스런 이야기로 재탄생 된것을 보면 역시나 소설가의 눈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짧막한 단편들은 읽고 난 후 짜릿한 쾌감과 함께 한동안 위속에 머물러 그 맛을 음미해보게 만드는것처럼 웃다가 혹은 맞아 맞아 하고 박수를 치다가 다시 한번 더 깊게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같은 단어를 써도 어쩜 그렇게 적재적소에 잘 들어맞는지 꼭 꼼꼼하게 짜맞춘 작은 소품처럼 알맞게 제자리에 들어 앉아 있는 낱말들이 그녀만을 위해 탄생된 것처럼 글을 너무 잘 쓴다. 평범한 아줌마의 눈에 비친 평범하지 않은 일상은 그래서 더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것 같아 더 맛깔스럽고 감칠맛이 난다.

철 늦은 사랑고백... 사랑고백을 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가물가물한 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시절을 다시 떠 올리며 추억에 젖게 만든다. 예전에 무척 유행이던 펜팔,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인가 '풋'하고 웃으며 읽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도 거리가 멀어진 '종이편지' 혹은 '손글씨'들이 추억이라면 추억이 되어 그녀가 풀어내는 실타래를 따라 새로운 옷이 되어 나온 따듯한 이야기가 가을밤을 꼬박 새게 만들었다.

시든 꽃의 고백.. 어쩐 자원봉사, 자신의 아이가 미아가 된것인지도 모르고 아이의 찾는다고 자신의 아이 이름을 방송하는 엄마. 자원봉사를 하는것은 좋지만 자신의 아이들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봉사를 다니는 엄마를 탓하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을 자신의 외아들과 친구되어 잘 지내기에 자신의 아이들인양 챙겨주는 아랫집 아줌마.우리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있는 흔한 일상이 재밌으면서도 그녀만의 위트로 잘 그려져 있다. 건망증 또한 요즘 아줌마들이 자주 걸리는 병인데 챙긴다 챙기고 막상 꼭 필요할때 잊어 버리는 건망증, 그녀안에서는 건망증 또한 왜 이리 눈물나면서도 재밌게 그려졌는지. 난 아직 그런 건망증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번씩 깜빡 깜빡 할때마다 나도 나이가 먹은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는데 아직은 중증이 아니기에 웃고 읽었지만 당사자로 생각을 한다면 서럽도록 눈물이 나는 이야기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마흔... 마흔이라는 나이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내 나이가 마흔을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른과 마흔의 어감은 천지차이인것 같다. 아이들도 갑자기 커버린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공황장애때문인지 더욱 자신을 찾고 싶은 나이 마흔, 그에 어울리는 '치통'과 '독립선언'  '자라' '골동품'등 정말 웃다가 울다가 하며 읽은 이야기들이다. 자신을 꾸미기 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겼던 아내가 모처럼의 나들이에 입고 나갈 옷이 없어 언니의 옷을 빌려 입고 내려오는 순간, 치통이 있길 바랬는지 정말 치통이 갑자기 찾아온다. 삶은 그런것일까.

꽃비, 떨어져 내리고.. 40세,윗층의 50세 아줌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계획이 변경될 수 있음을, 그런 일들로 자신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어중간한 나이인 사십. 꽃비 떨어져 내리듯 어느날 갑자기 내 삶이 변할 수 있는 나이임을 느끼며 금연선언도 벌이고 자신만이 가족에게서 왕따를 당한듯 느끼는 '병아리' 이야기나 목련이 하얗게 핀것을 갑자기 발견하고는 추억에 젖다가 식구들 아침밥을 홀랑 태우고 우유만 들이키고 눈을 흘기고 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에 쓸쓸하게 남겨진 자신을 들여다 보는 나이가 왠지 서럽게 가슴을 울린다. 

그녀의 단편들은 꾸며낸 허구의 세계이기 보다는 우리네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있는 일들이 맛깔스럽게 그녀만의 양념으로 버무려져 더욱 맛좋은 작품으로 거듭나서 더 맘에 들며 와 닿는 소설들이다. 삶을 들여다 보는 남다른 눈으로 일상 한 부분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날카롭게 새롭게 재조명하여 탄생시킨 이야기들이 많은 공감이 가면서 가슴을 울려주어 읽는 내내 더 깊게 흔들어 대는것 같다. 그녀의 '가을여자'를 읽고 난 후 가을은 더 깊어 진 듯 한 느낌, 단편이 이렇게 맛깔스러워도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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