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굴암산 궁벽진 환경이 홀로 사는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작가라는 이름의 우상에 갇혀 산 나를 풀어노라 하는 것이지만, 풀어져 자유롭게 흘러갈 그리운 그곳이 어디냐 하는 점은 오리무중이었다...


어째서 나는 쓰고 있던 소설을 칼로 무 자르듯 중단하고, 당분간 절대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작가로서의 임종사를 써던지고, 그리고 그 죽음 뒤에, 절을 떠올렸을까. 절이란 욕망이 들끓는 세상보다 오히려 더 시간으로의 침식과 사멸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각들의 장소.해답은 요령부득이다 ... 이십여년의 작가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던 그가 <절필선언>을 하고 굴암산 자락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신을 되돌아 보며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형식으로 내 놓은 삼년만의 작품집 '흰소가 끄는 수레' 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고뇌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되돌아보며 다시 글을 쓸 수 밖에 없음을 들어낸다. 

'연필을 들고 원고지와 마주해 앉으면, 천지창조의 마지막날 아침처럼, 휘황한 광휘의 어둠을 뚫는 섬광이 되어, 모든 감각의 촉수를 열고, 그 촉수들의 활홀한 운행으로 하나씩 열씩  차고 나는 어휘의 나비떼를, 고통이 있다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그 수많은 나비 중에서 어떤 나비를 어떤 표충망에 담아백씩.. 지표면을 원고지 네모난 우물에 가두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의 창작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토록 휘황찬란한 나비떼들의 난무로 이어지던 창작력이 일순간 절필을 선언하게 까지 한것은 한국문학에 커다란 사건이기도 했지만 가족과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일이었을까. 평범한 우리로 비유하자면 20여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선택하여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요즘처럼 명퇴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나 다른 일을 접하게도 되지만 작가란 타고난 재주이기도 한데 자신의 능력이 바닥이 났다고 펜을 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면도칼을 준비하고 다녔다면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느껴진다.

자신안에서 어휘의 나비떼들이 난무하던 때는 지나고 나비떼가 사라진 다음의 허무함과 작가생활을 하며 멀리했던 <가족>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을때 자신은 어떤 이였는지 묻는 자신은 누구였는지 묻는 질문이 가슴이 찡하기만 하다.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기분, 자식들이 크고 나면 여자들이 공황장애를 겪듯이 작가로 산 그에게 작품이외에 그무엇이 그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옆에서 보는 아내마져 위기를 느끼고 절필을 하라고 할 정도였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답을 얻은 것은 역시 <글쓰기> 였던 듯 싶다. 

'때때로 소설쓰기는 나를 행복하게도 했고, 또 많은 시시때때, 소설쓰기는 천형이었다.'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 시절, 정신만큼 육체는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 휘청거리며 흔들렸을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위기를 느낄 정도였다면 정말 위기일발이었으리라. 하지만 작가로의 다짐도 가족의 가장으로도 그의 휴식은 더 나은 충전의 시간을 준것 같다. 가수들이 은퇴를 선언한 후에 노래가 더 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면서 다시는 은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럼 휴식의 시간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었을 듯 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어서 그를 직접적으로 만나는 느낌이 든다. 솔직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들이 절실히 느껴져 가슴이 절절하다. 

누구나 힘든 시간은 있다. 무엇을 하며 살던 갑자기 내가 달려온 길이 내가 맞게 가고 있는가 하고 터닝포인트 같은 점을 찍는 순간, 과거가 불현듯 다시 밀려오며 발목을 잡고 내 자신을 평가해 현재의 삶이 진정한 삶일까 라는 물음을 던질때 그 길만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주는, 더 깊은 믿음을 준다면 다행이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인다면 나머지 삶은 흔들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의 삼년여 휴식기가 가져다 준 작품들과 신간 <고산자>를 구매해 놓았다. 작가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아서 다른 작품을 만나기가 더 수월할 듯 하다. 잘 나갈것만 같았던, 잘 나가는 줄만 알았던 그에게 이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작품의 빼곡한 나비떼 같은 언어들의 난무가 말해주고 있다. 좀더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서 좋았던 작품이며 그가 딸에게 쓴 편지의 끝말인 '야 류블류 쩨뱌!(나는 너를 사랑한다) 처럼 그의 영혼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깊은 암흑, 골방을 나와 밝은 햇빛으로 걸어 나온 그의 다른 작품들을 얼른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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