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8 한정판 (8권+한정판 다이어리+2012 달력 스티커)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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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에 오는 손님은 참 다양하다. 맘에 드는 사람도 있고 영 싫은 사람도 있고. 그러나 심야식당, 말 그대로 깊은 밤에 불 밝히고 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매력은(더구나 식당!) 거부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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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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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마디 | 아! 과골삼천

 

 

나를 알아주는 말이 아닐세

 

일흔여섯의 노인은 손에서 공부를 좀체 놓지 않았다. 다리 부러진 돋보기를 코끝에 비스듬히 걸치고 끊임없이 베껴쓰고, 메모하고, 정리했다. 평생 그렇게 베낀 책이 키를 넘겼다.

 

ㅡ어르신! 그 연세에 무슨 영화를 보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십니까? 이제 그만 쉬셔도 되잖아요. 바람도 좀 쐬시고요. 건강 다치실까 걱정입니다.

 

노인은 돋보기 너머로 눈길을 잠깐 주더니 다시 붓방아를 계속한다.

 

ㅡ그만두세. 누가 말리겠나, 저 고집을. 황소고집일세, 황소고집! 저 나이에 내년에는 과거에라도 나가실 모양일세 쯧쯧!

 

노인이 붓을 놓는다.

 

ㅡ자네들! 거기 앉게. 날 위하는 말인 줄이야 왜 모르겠나만, 그런 말은 나를 알아주는 것이 아닐세.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의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자네들 다시는 그런 말 말게.

 

삐죽대던 입들이 쑥 들어갔다. _『삶을 바꾼 만남』「아! 과골삼천」012-013p.

 

 

 

세번째 마디 | 60년간 새긴 말씀

 

 

감히 여쭙습니다.

 

주막집 봉놋방에서는 종일 말 한마디 없이 지낼 때가 많았다. 도대체 입을 열 일이 없었다. 혼잣말이 늘거갔다. 1801년 11월부터 시작한 유배는 어느새 계절이 네 번 바뀌었다. 그는 묵묵히 책을 읽었다. 침침한 눈으로 메모를 하고, 글을 썼다. 뒤란 대숲 소리에 마음이 들레면 한잔 술을 청해 마셨다. 바닷가 산책도 자주 했다. 허전하고 적막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도 그를 일상의 풍경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려니 했다. 처음의 적대적이던 시선도 조금씩 눅어졌다. 그래도 그들 쪽에서 먼저 다가서는 법은 없었다.

 

적막한 가운데 주막집 주인 노파만이 이따금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다음은 다산이 글로 기록해둔 어느 날의 대화 한 토막이다. 다산이 흑산도에 있던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온다.

 

ㅡ나으리께서는 글을 많이 읽으신 분이니 감히 여쭙습니다. 부모의 은혜가 같다고는 해도, 제가 보기에는 어미의 수고가 훨씬 더 큽니다.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보면 아버지는 무겁고, 어머니는 가볍게 여깁니다.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고, 상복도 어머니는 더 가볍게 입습니다. 친가 쪽은 일가라 하면서 외가 쪽은 일가로 치지도 않고요. 왜 그렇습니까?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닙니까?

 

ㅡ아버지께서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닌가? 그래서 옛 책에서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무겁게 여기는 것일세. 어머니의 은혜가 깊기는 해도 천지에 처음 나게 해주신 은혜가 더욱 중하기 때문이네.

 

ㅡ제 생각은 다릅니다요. 초목으로 치면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이겠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야 힘들 게 뭐 있겠습니까. 하지만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공은 아주 큽니다. 아무리 그래도 조를 심으면 조가 되고 벼를 심으면 벼가 됩지요. 몸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땅의 기운이지만, 마침내 종류는 모두 씨앗을 따라갑니다. 옛날 성인께서 가르침을 세워 예를 만들 적에 아마 이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제 생각이 그렇습니다.

 

ㅡ할멈! 내가 오늘은 크게 배웠네그려. 자네 말이 참 옳으이.

 

이러구러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도사려 앉아 부글부글 끓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해졌다.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나요?

 

이따금 다산의 동태를 살필 겸 주막을 들락거리던 아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경계심을 풀었다. 나중에는 그들이 먼저 제 자식을 가르쳐줄 것을 부탁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밥값이라도 앞가림을 하면 그만큼 가족의 부담이 줄어들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그 적막을 견딜 수가 없었다. 1802년 10월, 다산은 주막집 봉놋방에 작은 서당을 열었다. 유배 온 지 근 1년 만의 일이었다. 아전의 자식 몇이 와서 배움을 청했다.

 

기본적인 문리가 난 녀석도 있었고, 아예 글자부터 가르쳐야 할 까막눈도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데면데면했다. 여러 날을 두고 사람의 도리를 친절히 일깨워주고, 글공부를 시켰다. 날마다 숙제를 내고, 강(講)을 바치게 했다. 고만고만한 중에 송곳 끝처럼 자루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아이가 있었다. 말을 하면 말귀를 금세 알아들었다. 질박하고 명민했다.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인사를 올렸다.

 

ㅡ너는 좀 남거라. 이를 말이 있다.

 

꽁무니에 서 있던 더벅머리 소년이 주뼛댔다.

 

ㅡ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큰사람이 되어야지.

 

소년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굴을 붉힌 채 되삼킨다.

 

ㅡ지금보다 더 노력해야지. 게을러선 못쓴다.

 

소년이 어렵게 입을 연다.

 

ㅡ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쨰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ㅡ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ㅡ그것이 무엇입니까?

 

ㅡ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거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스승은 감격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ㅡ잠깐 앉거라. 내가 오늘의 이 문답을 글로 써주마. 벽에다 붙여 두고 마음을 늘 다잡도록 해라.

 

이 소년의 이름이 황상이었다. 그는 감격했다. 서울에서 오신 하늘같은 선생님이 너도 할 수 있다고, 너라야 할 수 있다고 북둗워준 한마디가 소년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놓았다. 이 한 번의 가르침 이후 소년의 인생이 문득 변했다. _『삶을 바꾼 만남』「60년간 새긴 말씀」032-036p.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

한 마디 한 마디 새기며 읽어야 할 책이다.

 

정민 선생께서는 옛사람의 눈으로 봐도 없고 지금 눈으로 봐도 없다 하며 황상을 두고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하셨지만, 『삶을 바꾼 만남』「글을 열며」와 「글을 닫으며」를 읽고 내가 느낀것은 그와 같은 사람이 지금도 살고 있고, 그래서 내가 이런 책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바로 『삶을 바꾼 만남』을 쓴 정민 선생이다. 정민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어느때보다도 느린 속도로 읽고 생각하고 읽고 생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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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3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2-24 18: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메리크리스마스^^

마녀고양이 2011-12-24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핀스님은 진짜 책 많이 읽으시네요.
저는 요즘, 책만 손에 들면 해야할 다른 일들이 막막 떠올라요.. 헤헤.

부지런히, 마음 다잡고, 그렇게 할 수 있지?.... 네네, 저 오늘 사주 봤거든요, 인터넷으로.
내년 토정비결이 좋아서, 아주 신나요. 포핀스님, 행복한 연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올 한해 감사드려염, 내년에도 한결같이, 부비부비~

잘잘라 2011-12-24 18:45   좋아요 0 | URL
요즘 이상해요. 제가. 여름에 책 못읽은거 보충하느라 그런지 다른 일 하다가도, 밖에서 누구를 만나다가도 막 읽을 책이 떠올라요. 헤헷

마고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날, 생각해보면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나신 그 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마치 뭘 해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자만함으로 살아온건 아닌지, 나는 과연 진심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고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크리스마스!!!

마고님 가정에도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마고님이 계셔서 알라딘 서재 나들이가 내내 행복했어요.
감사드려요. ^^

2011-12-24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자 수업 - 11년차 열혈기자의 기자생활백서
최철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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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도사의 한마디가 눈길을 끈다. "...불편한 현실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말기를 기자들에게 바란다. 기사로 말하는 것 외에 기자가 부릴 수 있는 꼼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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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권경희 지음, 임동순 그림 / 미디어일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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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에 대나무 우거지면 모기랑 지네 많고 여름에 엄청 덥답니다."(185p.) 오호~ 그렇군. 가만.. 그럼 담양 죽녹원은 뭐지? 대나무 종류가 다른걸까?.. 아, 이토록 얇디 얇은 나!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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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사용법 - 텃밭부터 우쿨렐레까지 좌충우돌 DIY 도전기
마크 프라우언펠더 지음, 강수정 옮김, 소복이 그림 / 반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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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가장 위대한 순수예술은 작은 땅뙈기에서 안락한 삶을 일구는 일이 될 것이다.-에이브러햄 링컨」그래서 그렇게 `작은 땅뙈기` 갖기가 어려운가 보다. 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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