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진단, 장사 중독!
장사 체질도 아니라면서 웬?

그게 말하자면,
끊임없이 물건을 사고 팔기에 그렇다는 건데..
새벽 4시 20분에도 물건을 주문하고 있으니,
이눔의 휴대폰을 없애버리든지...
아!
맞다!
아이스크림 주문했지!
내일 아침엔 지각하면 안되는데에!!!

이휴.
아예 눕지를 말까?
흠..

비 좀 오면 좋겠다.
비 오면 손님 없고
바람 불면 더 없고!
그러니까
바람은 불지 말고
주룩주룩
오랫동안
비만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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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6-16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사체질이 아니면서 장사중독된 메리포핀스님~ 즐겁게 하신다는 뜻으로 새겨들어요!^^
오랜 가뭄에 공원에 옮겨심은 나무들이 말라가고... 너무 비가 안와서 큰일이어요~ㅠ
 

말로만 사랑하고
말로만 일하는 것들아!
말로만 먹어라.

말로만 일하고
말로만 사랑하는 것들아!
말로만 처먹으라고,
제에발!



(난 이제 잔다..고 말만 하고
안 자고 버텨볼라고 했더니,
하품에, 눈물에,
하이고,
이제 진짜 자야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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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5개월째다.
휴일 빼고 못해도 750일 이상 가게 문을 열고 닫았다.

ㅡ아무리 봐도 넌 장사 체질이 아니야.
랄지,
ㅡ아직 내공이 부족해.
랄지,
ㅡ그런 마인드로 장사 하면서 안 망하는 게 용하다.
라는 말을 듣는다.

이유는 딱 하나, 내가 손님을 가리기 때문이다.
예의없어서, 속물이라서, 치근대서, 얄미워서, 치사해서, 어이없어서, 기가막혀서, 시끄러워서, 어서 빨리 그 손님이 가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손님이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ㅡ단골인데? 손님 없으면 가게 망하는 건데?
ㅡ응.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니까. 저런 사람은 다시는 상대하고싶지 않으니까.
ㅡ그러니까 역시 넌 장사 체질이 아니라고. 아직도 그렇게 간 쓸개 다 챙기고 있다니. 참..
ㅡ아니야. 얼마나 줄었는데! 그리구 참. 뻑하면 하는 그 말, 장사하면 간 쓸개 다 내놯야 한다는, 그게 진짜 말이 돼? 왜? 왜 그래야되는데? 사람이 간 쓸개 빼놓구 어떻게 살아? 어떻게 사냐구!
ㅡ으이구. 뻣뻣하기는. 쯧. 힘을 빼란 말이다, 힘을. 그래야 진짜 장사를 배우지!
ㅡ흥. 체질이 따로 있나? 있으면 뭐. 체질 타령 그만 하쇼. 체질이든 아니든 나 벌써 3년째란 말이요. 잉? 이제 반 남았으니 두고 보슈. 체질 아니면 체력이라도 길러서 내가 꼭 끝을 볼라니까네. 끝에 뭐가 있냐구? 있으면 어떻구 없으믄 또 어떻다구.
ㅡ얼씨구. 그래. 그럼 그만 자자고!
ㅡ그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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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k0501 2017-05-2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2년 5개월째군요. 개업에 대한 글을 본 건 같은데 그게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글은 이렇게 쓰셨지만 잘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너무 영업적인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저는 정이 더 갑니다. 이게 오히려 영업 기술일 수 있지요.

느린산책 2017-05-2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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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쪽)
영일의 칠순잔치가 열릴 장소는 긴 토론 끝에 결국 자금성이 선택되었다. 비록 버스 한 번이면 갈 수 있는 서울 시내의 자금성이었지만 삼대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과정은 길어서 베이징을 가는 것만큼이나 멀고 험난했다. 칠순이 있기 보름 전 토요일, 예년보다 일찍 나온 매미 울음소리가 거실에 둘러앉은 식구들 귀를 어지럽힌 날이었다.

일식집에 가자고 하니 회는 물컹물컹거리는 게 비린내까지 난다고 애들이 싫어해서, 그럼 담백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양식은 김치도 없이 손바닥만 한 고기 한 뎅이를 비싼 값에 내온다고 춘단이 싫어하고, 그렇다면 김치도 많이 주고 반찬도 많이 주는 한정식집에 가면 되겠다고 하니 집에서 맨날 해먹는 지겨운 밥을 시아버지 칠순 때까지 먹어야 하느냐며 이번에는 유정이 질색했다. 뷔페는요? 뷔페는 먹을 때만 좋지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알 수 없어서 싫다 하고, 소갈비는? 갈빗집은 철판 바꾸는 게 품위가 없어서 싫다 하고, 그럼 중국..... 쯧! 중국집은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이도 저도 다 싫다 하는 꼴에 옆에서 가만히 신문을 보던 종찬이 끼어들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145쪽)
˝그럼 칼국수나 먹으러 가든지요, 수제비도 좋고.˝

그때까지 난 이파리나 닦으면서 남의 일인 척 앉아 있던 영일의 입꼬리가 단박에 굳었다. 시골집에 있었으면 못해도 마을회관에서 지역 가수까지 부르는 큰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어림잡아도 부를 사람이 백 명이 넘었다. 고향 떠난 죄로 인생에서 제일 크게 치르는 잔치에 부를 사람이라곤 아들 내외, 손자 손녀, 꺼림칙한 옆방 하숙생밖에 없는 처지가 가뜩이나 서러운데,

......칼국수? 수제비?

이제껏 살면서 칠순잔치 때 칼국수를 먹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역사가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 없이 사는 양주댁도 아버지 칠순이라고 멀리 떨어져 살던 오남매가 합심해 뷔페를 차려주고 중국 여행을 보내줬다. 영일은 서운함을 넘어 노여움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녹록지 않은 칠십 년 인생이 칼국수 한 그릇 값으로 매겨진 기분이었다. 둔감한 아들은 자기 말이 영일의 가슴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고 밀가루 가격이 많이 올랐다느니, 이젠 분식도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느니 하며 칼국수 타령만 하고 있었다. 영일이 난 화분을 멀찌감치 밀어놓고 시뻘게진 눈으로 창밖만 보는 것을 눈치챈 유정이

그제야 남편에게 실없는 농담은 그만하라고 눈치를 준 뒤, 아주 품격 있는 중화요릿집 자금성을 추천하고 나섰다. 아까 중국집은 안 된다고 했잖아? 준희가 딴지를 걸자 유정은 흘깃거리며 자금성은 일개 중국집이 아니라 중·화·요·리·집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국인 치고 중화요리 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유정은 영일의 눈치를 살피며 본격적으로 설득에 들어갔다. 짜장 짬뽕 파는 중국집이 아니라요, 최고급 요리를 아주 정통으로 하는 비싼 중화요릿집이에요. 영일은 도통 반응이 없었다. 코스 요리는 그나마 가장 싼 게 일인당 십만 원이니까 중간 정도 가는 것만 먹으려 해도 얼마나 비싼 거예요. 사실, 애들이 먹기에는 너무 귀한 감이 있죠.

영일은 여전히 시뻘건 눈으로 하늘만 노려보고 있었다. 시뻘건 눈에 하늘이라고 푸르게 보일 리가 없었다. 생각나는 미사여구를 다 갖다붙여도 영일의 얼굴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유정은 지하에 잠들어 있는 중국 황제를 모셔왔다. 아버님, 만한전석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중국 황제도 회갑 때나 먹었다는 귀한 음식인데 종류가 백 가지가 훨씬 넘는다네요. 서울에서도 만한전석 하는 요릿집은

정말 드물어요. 예전에 신문 기사에서 보고 아버님 모시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 어떠세요?

˝........˝

˝별로세요?˝

˝........˝

˝아, 귀가 먹었소? 대답을 하쇼. 어떠냐고 묻지 않소.˝

중국 황제까지 행차하고 춘단이 재촉을 한 뒤에야, 영일은 흰자에 선 핏줄을 서서히 풀며 짧게 대답했다.

˝에미가 좋으면 그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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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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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에 처음 발을 들인 어린 처녀 춘단은 마을의 이름이 풍경과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 ‘송(松)’ 자를 붙이고, 한국 사람치고 정 없는 사람 없다고 ‘정(情)’ 자를 붙였다는 송정리는 그러나 막상 와보니 마을을 둘러싼 산이 모두 돌투성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예사 돌이 아니었다. 맷돌로 만들어 콩을 갈면 5대 후손까지 배불리 먹여줄 돌, 비단결처럼 몸을 다듬으면 어느 절의 마당에 그림자도 없이 서있을 돌, 단단한 외피 속에 귀하고 귀하신 부처님부터 땅바닥에 붙어사는 두꺼비까지 온갖 삼라만상을 다 품고 있는 돌. 금값으로 치자면 금광을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춘단은 그 돌들을 바로 옆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태연히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송정리 사람들의 셈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고, 어쩌자고 우리 아베는 백치들만 사는 마을에 딸을 시집보냈단 말인가. (23쪽)

그러나 갓 들어온 새색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가는 시집 식구들에게 미움 받을 게 뻔해서 춘단은 번쩍번쩍 빛나는 돌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밭일하러 가는 어른들 뒤를 얌전하게 따라 다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모기 때문에 잠을 뒤척이는 영일을 보고 춘단은 참다 참다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이 마을엔 소나무보다 바위가 훨씬 많은데 왜 석정리가 아닌 송정리로 이름을 지었나요?"

영일은 시집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춘단을 귀여워하며 오히려 반문했다.

"여그 어디에 바위가 많다고 그래? 맨 밭에, 논에, 황토색 흙뿐인디."

"뭔 소리여요? 여그도 저그도 맨 돌뿐인디. 눈이 삐었나벼."

영일은 크게 웃으면 춘단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았다. (24쪽)

"그건 당신이 석공의 딸이라서 그려. 돌로 벌어먹고 사는 집 눈엔 요 세상 자체가 맨 돌로 보이겄지. 하지만 이 농사꾼 눈에는 돌산도, 소나무밭도 맨 경작할 땅으로밖에 안 보이는디. 이젠 당신도 농부의 마누라가 됐응께 쓰잘데기 없는 돌멩이 대신에 벼, 고구마, 깨를 보도록 노력해봐. 그게 우리를 먹여 살려줄 텡께."

닭 우는 새벽에 첫 하늘을 본 춘단과 영일은 운명적으로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해마다 농사를 늘려갔다. 시집온 지 이 년 만에 춘단은 아들을 낳았고 그다음 해에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보름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춘단은 마을에서 가장 어린 안주인이 되었다.(24-25쪽)

몇 년 뒤 겨울, 북쪽 벌판에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면서 눈이라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아이들마저 기겁할 폭설이 내리쳤다. 발이 묶여 이웃집 방문도 어렵게 되었지만 그 덕에 송정리 사람들은 하루 종일 온돌방에 머물면서 아궁이에 감자와 고구마를 번갈아 쪄먹는 휴가를 누릴 수 있었다. 세 계절 내리 인간의 먹을 것을 위해 몸을 바친 땅들은 긁힌 속을 다스리기 위해 짐승들을 따라 긴 잠에 빠졌다. 길에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마을은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그런 날 중에 한 날이었다.

따ㅡ앙 따ㅡ앙 따ㅡ앙.

조용히 낙하하는 눈송이의 장례를 방해하며 어디에선가 불가사의한 소리가 들렸다. 송정리 사람들은 처음 들어본 낯선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뜨끈한 아랫목에서 한파가 몰아치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심심한 동네에 뭔 일이 나기야 하겄어, 또 뭔 일이 나면 이장이 연락을 해주겄지, 이 바람만 지나가면 나가봐야제, 사람들은 몇 날 며칠 아침, 점심을 먹고 난 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의 진원지를 궁금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땅땅땅 하고 울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디단 낮잠에 빠져들었다. (25쪽0

따ㅡ앙 따ㅡ앙 따ㅡ앙. 자꾸 들으니 먼 절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같기도 했다.

밥상을 차려준 뒤, 영일에게 아들을 맡기고 어김없이 산으로 올라간 춘단이 보름째 되던 날 양어깨에 긴 밧줄을 매달고 산에서 내려왔다. 밧줄에는 송정리에서 가장 키가 큰 박철보다도 한참이나 큰 바위가 묶여 있었다. 영일은 서방 어깨에도 못 미치는 자그만 여자가 자기 몸이 감당하지도 못하는 큰 돌덩이를 끌고 오는 괴이한 못습을 보고 아들과 함께 뒤로 자빠질 뻔했다. 춘단은 매고 있던 밧줄을 풀고,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영일 앞에 입석을 끌어다 놓았다.

춘단이 말했다.

"봄 여름 가을이면 이제는 나도 당신처럼 곡식들만 보려고 노력해요. 헌디 겨울에는.... 겨울에는 사람이고 땅이고 맨 잠만 자고 이 돌들만 사방에 시퍼렇게 살아서 나를 보는디 워떡해요. 난 농부의 마누라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석공의 딸이잖아요. 내 피의 반쪽을 그 쓰잘데기 없는 돌에서 왔구만요."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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