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유괴범의 딸이 유명 신문사에 취직이 내정된다. 이를 알게 된 경쟁사는 큰 일이나 난듯 이를 문제 삼고, 이에 당사에서는 20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해보기로 결정을 한다. 몇년전 큰 사고를 일으켜 한직으로 물러난 전직 기자 가지는 사건을 알아보라는 상부의 지시에 이유를 몰라한다. 다른건 몰라도 이제와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봤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괴범이 몸값을 들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 버리는 바람에 그 사건에 어떻게 발생했고,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알길이 없었던 터였다. 당시 가장 크게 사건이 이슈화된 것은 유괴된 신생아의 행방을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는 것때문이었다. 과연 당시 유괴된 아이는 모두의 추측대로 살해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범죄자의 딸--그것도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유괴치사 범인의 자식--을 자신들의 체계속에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착한 척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마지막까지 끌고가던 다분히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지던 추리 소설이다. 무엇보다 가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사건의 실상을 풀어내던 기자 가지의 기지가 놀라웠다고 해야 하나. 쓴웃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거의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는데도, 그저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사건을 뚝딱뚝딱하고 풀어낸다는 것에 혀를 차고 말았다. 충격적인 반전을 위해 사건을 만들어낸 듯한 인상이 짙다는 것도 이 책에 대한 호감을 반감시키고, 사건에 관련된 아들딸들이 나중에 아는 사이가 되어 만난다는 것도 너무 작위적이다. 세상이 좁다고 해도 그렇게 좁을리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자연스런 전개를 기대하시지 않고 집어드신다면 그럭저럭 읽힐만한 퀄리티. 하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이나 흥미진진한 전개 뭐,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마시길...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고 한번이라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색하고 기다렸을 책. 이 책을 보면서 비로서 난 그가 왜 자살을 택할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거의 강박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유대인 학살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시는 듯 하던데,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성토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제 정신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난 그가 몇 권의 책을 통해 그의 원한과 고통과 분노와 애닮음을 어느정도는 털어내셨을 거라 생각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오히려 그 도가 점점 심해졌던 것이 아닌가 싶더라. 무엇보다 그 특유의 초연함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떤 인간도,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남을 미워하면서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건 정신이 피폐해지는 일이고,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파괴적이다. 그가 자신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것은 결국 죽음밖에는 없었겠구나, 싶어 그가 가여웠다.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젠 평화를 찾으셨기를 ....



 ★★☆☆☆  탐정 매뉴얼/제더다이어 배리


 갑자기 내가 난독증에 걸린줄 알았다. 읽기가 하도 힘들어서. 다른 책을 읽을때는 멀쩡하던 해석 기능이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멈춰 버리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 이상, 이 책을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난 믿지 못하겠다. 왜냐면 재미는 커녕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쩔쩔 매야 했기 때문에. 딱 초반 몇 페이지는 흥미를 끌어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분명 앞으로 나가긴 하는듯한데, 거의 제자리를 맴맴 도는 듯한 전개가 책 읽는 것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말은 이 책에는 오히려 과분한 단어이다. 지루하다는 것은 그나마 어떤 맥락이라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으니 말이다. 두서없고, 횡설수설에, 산만하고 뜬금없으며, 이상한 탐정의 나라에 온 듯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기나 한건지 의심하게 만들더라. 아무리 읽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긴 했다. 너무 취했거나 너무 졸려서 몸이 안 움직여줄때의 갑갑함을 기억하시는지. 제 정신인 상태에서 가위눌림을 겪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제정신인 상태에서 재밌는 독서를 하고 싶다시는 분들에게는 비추.


 ★★★☆☆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꼴찌에게 희망을! 이란 문장이 되겠다. 학창 시절 끔찍한 열등생이었다는 저자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과연 점수로 아이의 미래를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를 묻고 있던 책. 초반 자신이 열등생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모두를 걱정시키는 열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저자는 회상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숨은 재능을 알아봐 주거나 지식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몇몇 선생님들의 공이었고. 해서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현재의 점수로 단정짓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어른들에게 충고한다. 문제는 그것이 학교 밖에서는 너무 잘 보이지만, 학교란 독특한 상황속에서는 보이기가 어렵다는 점. 아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선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한 책. 특히나  열등생의 심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것에 주목하시길.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유용한 정보 같아 보이니 말이다.하긴 누가 그보다 열등생에 대해 잘 알겠는가. 어린 시절엔 열등생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열등생을 가르친 선생님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니 말이다. 어떤 아이들이건 보다 많이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열등생 시절을 아낌없이 털어 보여준 이 점잖은 노신사에게 공감의 미소를 짓지 않기란 힘들지 않을까 한다. 다만 초반의 신선함을 지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인데, 그건 읽는 사람이 가려서 읽으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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