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어떻게 망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궁금해하던 영화랍니다. 원래 연극으로 상영된 것이라고 하는데, 워낙 스토리가 진실성이 있어서 인기를 얻었나 보더라구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미국에선 특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었고, 연극의 인기에 힘입어 이렇게 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해요. 원작가가 각색을 했다고는 하나 원작이 극본이라 그런지, 역시나 연극적인 요소가 다분하더군요.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게, 연기력 없는 배우들이 읊었더라면 어색했을 연극적인 대사들이 평범하게 주고받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화들로 들리게 하는데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야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고, 줄리아 로버츠는 그간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연기도 잘한다 싶더군요. 아카데미 주연상을 오래전에 꿰찬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이런 정극에서 대배우들에게 주눅들지 않는 흔연스런 연기를 펼친다는게 놀라웠습니다. 그외 다른 배우들도 다들 제 이름값을 하는 통에, 오히려 요즘 가장 핫한 배우라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작품속에서는 가장 연기를 못하는 듯 보이더군요.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겉돈다는 느낌이었어요. 역 자체가 그런 배역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가는 모르겠지만...하여간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며, 완성도 높은 각본이며, 말랑하지 않은 인생의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태도등이 그저 이 영화가 소문만 요란한 작품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해주었어요. 한마디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막장 가족의 징글징글한 가족사라고 해서 보면서 저건 말도 안 되지, 저런 가족이 어디 있나? 라면서 분개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막장 가족이 맞긴 한데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 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젠 하도 세상에 치이다 보니 왠만한 막장에는 놀라지 않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 작품이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라, 억지로 꾸며낸 흔적이 없어서 그런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 모든걸 합해서 그만큼 설득력 있었다는 말이 되겠죠.


영화는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해요. 인생이 너무 길다는 엘리엇의 시구절을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는 아내의 약물 중독을 , 아내는 그의 알콜 중독을 봐주면서 그들의 부부 관계가 이어져 왔다고 고백을 하죠. 우리는 상대를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참아낼 수 있는 것일까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참아주던 이 가족은 아버지의 기권 선언(=자살)으로 인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온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족들의 인내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죠. 과연, 이 가족은 멀쩡할 수 있을까요? 약물 중독에 독설가인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무기력하게 끌려다닌 아버지, 그런 부모가 끔찍해 일찌감치 달아난 큰 딸, 그런 부모에게서 달아나지 못해 인생이 망가져 버린 둘째 딸, 나쁜 남자에게만 끌리는 희한한 안목을 지니고도 행복하길 바라는 세째딸, 그리고 그들의 주변을 빙빙 도는 이모...이들이 아직까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중반 이후에 나올 폭탄 하나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로 이 가족을 보는 눈빛이 달라질테니 말여요. 막장의 끝을 보여주시는 가족들이라서, 과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오히려 몇 몇 장면에서는 너무도 공감이 되서 마음이 짠했네요. 누구에게나 할 것 없이 못되게 구는 엄마 메릴 스트립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지 짐작하게 만들던 크리스마스 일화나, 이모가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구박하는 이유를 들려줄때, 그리고 첫째 딸이 별거하고 있는 남편에게 난 결코 당신이 왜 나를 떠났는지 알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요. 이 영화가 그저 한 가족의 막장을 다룬 것이라고 폄하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보석같은 진실이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일겁니다. 극적인 요소만을 위해 막장을 집어넣는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인생을 이해하고,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고뇌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니까요. 이 작품속에서 큰 딸 바바라는 재능은 있지만 그걸 포기한 작가로 나와요. 아마도 그녀가 바로 이 작품의 원작을 쓴 저자가 아닐까 추측이 되더군요. 역시나 아버지의 눈은 정확한 것이었구나 했네요. 글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관계로 한마디만 더 하자면, 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넌 나보다 행복한 줄 알아,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는 것이 자식에게 못되게 굴때마다 당당하게 내미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걸, 이 영화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네요. 적어도 난, 그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 겠다,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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