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한 교실에서의 추억. 고2 때, 국어 선생님이 농담을 했다. 선생님의 말을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본 나는 너무 웃겨서 소리내서 하하하 웃고 말았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듯한 조용한 교실에 내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렇다. 나 혼자 웃은 것이다. 63명중 단 한명 나 혼자....재밌는 것은 내가 웃은 것은 진짜로 재밌어서 웃은 것이었고, 웃지 않은 다른 친구들은 정말로 웃기지 않아서 안 웃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은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아니었다. " 아니. 이게 하나도 안 웃기다고? 왜?..." 라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는데, 선생님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웃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영상을 그대로 내가 출력해서 웃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심전심이라고 해야 하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생님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뻘쭘함이란...그는 내가 웃어준 것에 대해 --다시 말해 공감한 것에 대해--고마워 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젠 다른 애들과 정말 다르군. "이란... 난 그것이 고등학교 3년 내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난 늘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때론 그것이 그럭저럭 넘어갈만했지만, 못 견딜만큼 괴로울때가 더 많았다. 친구가 있긴 했지만, 외로웠고, 나를 어떻게 다루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난감했었다. 난 나를 이방인으로 여겼고, 고립자이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3년 내내 그렇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식때 내가 얼마만한 해방감을 느꼈을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난 춤을 추면서 정문을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없다. 정문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 이젠 내 동지를 찾아 가야지. 어딘가에 분명히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그때 고2 교실에서의 외로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성들.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데, 남들에겐 이해되지 않은 특성들이 오랫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했었으니 말이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이라면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특성을 열거하는데, 이거 내 이야기잖아. 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를까 고민했다고 한다. 고립감과 외로움, 두려움, 고통...역시 익히 내가 아는 감정들이다. 그리고 그걸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한 심정들까지...아니, 이런, 내 평생 찾아다닌 동지들이 여기 다 있었네 싶었다. 결국 별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민감할 뿐...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청소년 시절엔 정말로 굴욕적일만큼 치욕적인 것이다. 민감함이 때론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글쎄...그건 그 고통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가 아니었을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하여간, 나와 비슷한 특성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반가웠다. 내가 갖는 특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실은 난 내가 외계인이 흘리고 간 외계인의 자손이 아닐까란 상상을 줄곧 해 왔었다.--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는 저자의 말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걸 응용할 수 있는가는 별개로 치고 말이다. 

민감함. 단순히 남들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는데 그치지 않고, 남들보다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게 되기에 때론 당사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민감함.  내가 남들보다 양심적인 것이나, 남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 공포 영화를 못 보는 것, 도박등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중독이 되려해도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게 된다. 자연적으로---가만 냅두면 혼자 잘 노는 것, 혼자 있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쉽게 피로해지는 것, 어떤 공간이건 들어서는 즉시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직관이 발달한 것등 많은 것들이 이해되서 좋았다. 특히 내가 왜 늘 피로하다고 하는지, 왜 혼자 있으려 그렇게 애를 쓰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걸 말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말해봤자 이해할리 없지만서도, 적어도 내 자신이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렇다. 민감한 사람이 살기 힘든 것은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그들에게 나를 설명할 길이 없어 억울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유추해본 바로는 민감하지 않은 사람에게 민감함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엄마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 다했다. 차라리 괴짜라는 타이틀을 달면 조금 더 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를 개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여길테니까.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다르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 다름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밖엔 없고. 그렇다면 일단 그 다름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그런면에서 이 책은 민감함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민감함이 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 조카를 보면서 유심히 살핀다. 혹시나 녀석도 그렇지 않은가 하고...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조카는 나처럼 어둠속에서 고통받지는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자신이 가진 다름을 유용한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시행착오를 휘향찬란하게 거친 고모가 옆에 있으니 적어도 나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한다. 성장하는데 있어 본인이 겪어야 할 몫은 물론 본인이 해결해야 겠지만서도...

 나처럼 민감함이 고민이신 분들에게 추천한다.유난히 민감한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분들에게도. 그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까. 특히 자신은 민감하지 않는데 자식이 민감한것 같다시는 분들에겐 필독을 권한다. 괜히 자식 잡지 말고 말이다. 무지는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우겨도 결론은 사랑이 아닌 걸로 난다. 하니 사랑을 위해서라도 책을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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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1-07-1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랑을 한다는 건 많은 일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래도 애들을 더 잘 키우기(?)위해 와이프와 더 풍성한 생활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해야지요. 바빠요.

이네사 2011-07-20 09: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렇게 사랑때문에 바쁜게 좋은것 아닐까요.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인생에서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때가 제일 좋았다고 다들 말씀하시더군요.
늙으면 재밌을만한게 없다면서요. 아마도 가장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아이들 키우고 할때라서 그런가봐요. 그러니 넘 억울해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