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런던에서 되는대로 막 살고 있던 오빠 리암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 베로니카는 언젠가는 오고야 말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비탄에 잠긴다. 고통스러운 삶을 위태롭게 이어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빠, 베로니카는 그가 왜 자살할 수 밖엔 없었을까를 생각하다 그들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된다. 소원한 부부 사이였음에도 토끼처럼 꾸준히 새끼를 내지르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리암과 베로니카 형제들은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은 상상도 못한 채 방목하듯 자라났다. 평생에 걸쳐 한 일이라곤 열 두명의 아이 생산과 일곱번의 유산,(이 책의 배경인 아일랜드는 카톨릭 국가로 낙태와 피임이 금지되어 있다.) 즉 생식이 다였던 엄마와 무책임한 가장이었음에도 아버지로써의 권위는 목숨처럼 지켰던 아빠. '대가족이시군요' 라는 타인의 능글거리는 비웃음보다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조차 못한다는 사실이 더 상처였다고 고백하는 베로니카리암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았던 그 여름을 회상한다. 계속되는 임신에 지친 엄마는 아이들을 친정 엄마,즉 아이들의 외할머니에게 맡겨 버렸고,그 여름에 리암은 할머니를 짝사랑하던 옆집 할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고만다. 그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베로니카는 그 사건 이후 리암의 인생이 변질되었다면 분노한다. 장례식을 위해 간만에 모인 가족들의 무심함에  베로니카는 오빠의 죽음이 한층 더 안스러워지지만, 가해자인 할아버지도, 그런 일을 방치했던 할머니도, 아들의 탈선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채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도 이미 이세상 사람들이 아니니 이제와서 누구를 잡고 항의 해야 하냐며 속상해 한다. 아이들을 낳기만 했을 뿐, 정신병자처럼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았던 엄마에게라도 오빠의 억울함을 하소연해 보려 한 베로니카는 이게 다 무슨 소용있겠냐며 물러서고 마는데...

 

한 부부에게 적당한(?) 자식 수는 몇명으로 봐야 할까? 전문가 말에 의하면, 자식이건 애완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적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숫자는 바로 그들이 제대로 돌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나라를 돌면서 끊임없이 아이들을 수집했던 미아 패로나 현재 수집중인 안젤리나 졸리에게 의혹의 눈길이 머무는 것도 그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건사하고 있기나 한걸까?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단지 먹이고 입히는 것만의 문제로 끝나는건 아니니 말이다.진정한 양육이란 한 인격체로서 사랑을 주고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이 책 속 가족들의 경우를 보자. 돌보지 않는 부모 밑에서 다들 제 살기에 바빴던 그들은 혈연임에도 서로에게 냉담하고 무심하다. 그들에겐 가족이라고 할만한 유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베로니카 역시 형제중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다던 오빠지만 자살소식을 듣고 나서야 관심을 가진다. 한때 나이답게 천진했던 소년을 그렇게 변하게한것은 무엇일었을까 그때서야 고민을 해보지만,이미 때는 늦은 것 아니겠는가. 분노의 화살을 이리저리 돌리며 괴로워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가정에마저 불신의 눈길을 보내게 되는데, 과연 그녀는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자신의 아이들에게만은 되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베로니카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오빠의 죽음을 배경으로 대가족의 붕괴와 가족애를 솔직하게 그리고 있던 작품으로, 무책임한 부모와 그 슬하에서 고통받고 자라는 아이들의 문제를 수려한 문체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지극히 아일랜드적인 소설이었다. 다만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려대며 돌고 돌고 또 도는 장황한 전개방식에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산만함, 베로니카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하는 애증처럼 모든 현실을 양가감정으로 해석하던 것등이 (남편과 아이들,과거 남자친구와 기타등등에 대해 그녀는 좋다가 밉다가를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읽는 내내 무척 혼란스런 인상을 준다는 점이 별로였다. 분명 탄탄한 문장력과 예리한 관찰력은 인상적이었지만, 깊이있고 선명한 통찰력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싶다. 마치 피려다 만 꽃을 보는 듯 찜찜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이 책을 보면서 2007년 노벨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이 얼마나 탁월한지 새삼 깨달았다.대가족의 허상을 파헤친다는 레싱의  <다섯째 아이>와 비슷한 주제임에도 그것을 풀어가는 상상력과 결단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대가의 지성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게 아닌가 보다. 비교적 잘 쓴 소설이긴 하지만 감동을 기대하고 집어 드시진 마시란 의미에서 애매작으로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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