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워 Heat
빌 버포드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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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 작가가 주방으로 간 이야기는 흔지 않다.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 엄연히 존재하기에.그나마 기억 나는 책이라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유일한데,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수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중 하나다.그런데 이제 그에 못지 않는 책이 나왔으니,자랑스럽게 소개하자면 바로 이 책이다."그래,이거야!이 정도는 돼야 책이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지,"탄성이 절로 나왔다.완벽한 책이었다.한순간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탄탄한 글솜씨를 보란듯이 자랑하던.어디다 내놔도,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이 정도는 돼야 읽을 맛이 나지.유머와 재치,퉁명스럽게 할말 다 하면서도 사랑스럽고,현장감,솔직함,등장인물들의 톡톡 튀는개성,통찰력,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편견없는 시선,그 시선속에 잡히는 삶의 현란한 모습들까지 담겨 있던,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이 작가처럼 현명하고 흥미진진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부러웠다.

<뉴요커>의 잘 나가던 기자 빌은 뉴욕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밥보>의 천재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를 만나자 곧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광기서린 매력적인 인간성에 매료된다.그래서 그길로 팬대를 쥔 채,밥보의 주방 보조로 들어가는데, 40살 중반의 나이에,무엇보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거란 우려를 뒤로 한 용감한 결정이었다.주방이 작아 요리사들이 숨 쉴 공간도 없다는 곳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는 살아남기 위해 눈치껏 요령껏 최선을 다하던 그.그가  최대 노동에 무임금,이보다 더 비참할 수없다는 노예 계약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서서히 몸으로 일한다는 의미를 체득하게 되는 과정들이 유머러스하게,감동적으로,설득력있게,그리고 무엇보다 주방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많이 배우랴"는  정신 하나로 버티기로 일관하다 승진을 거듭,라인 하나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는데,그 짬짬히 이탈리아로,영국으로,프랑스로 넘나들며 맛의 진정성과 호기심을 충족하는 여정도 보여 주고 있었다.

 주방안의 일상들이 적나라하게 까발려 지던 책이다.자판만 두들기던 사람이 격한 노동의 현장속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 자체가 대단한 일일 것이다.하지만 작가 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그는 요리사들과 동화하고,이해하려 노력하다,마침내 동료가 된다.덕분에 난 주방안에 갖힌 유령같은 존재였던 요리사들을 제대로 그려 볼 수 있었다.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깔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그리고,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요리사가 된다는 것은 선천적인 미각과 고된 노동을 두려워 하지 않을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됐다.쉬워 보일지 모르는 요리 하나하나가 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개발하고 연구해,땀을 흘려 만들어 낸 것이며,집에서는 레스토랑같은 깊은 맛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주방에서 갖가지 요리의 레시피를 외워 주문에 맞춘다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란 것,그리고 늦은 밤에 주문을 하는 눈치 없는 사람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는단 사실,때론 요리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는게 약이라는 충고,주방장이 되기 위한 요리사들의 암투와 그들만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이탈리아에서 만난 푸주한 다리오를 통해 좋은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그들의 고집에 대해서도.작가는 이태리인들의 제대로 된 먹거리에 대한 고집에 경의를 표하면서  말한다.좋은 음식은 오랜 시간을 두고 조리한 것일 수밖엔 없다면서,패스트 푸드의 천박함에 길들어 지고 있는 둔감한 현대인들의 미각에 경종을 울린다.

 매력적인 책이다.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빈틈없이 재빠른 눈에 포착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된다.좋은 사진 작가는 피사체의 개성을 포착해 낸다.좋은 작가도 마찬가지다.책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튀어 나와 쌩쌩 돌아 다니는 듯한 마법이 느껴지던 책,맛깔나다란 형용사는 이 책엔 현저히 부족하다.이 책 자체가 진부함이 전무한 책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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