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어디까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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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포칼립스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12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한동안 SF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과연 미래에 이런 시대가 올 것인가..하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로봇이라는 존재와 조금은 황당하게 생각되는 이야기들이 상상력을 무한 자극했지만 그 이야기들을 통해 공포나 고민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렀고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기계들, 컴퓨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참 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로봇에 관한 책은 정말 오랫만이다. 그냥 미래를 다룬 SF 소설과 로봇을 다룬 소설은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조금 달라서일까.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사실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고 책의 첫부분 <상황 설명> 또한 너무나 영화같은, 그리고 너무나 뻔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상황 설명>이 지나자 소설은 끝도없이 깊게, 그리고 빠르게 흘러간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과 공포를 각각의 시간 순으로, 장면 장면을 긴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독자는 이 상황이 어쩌면 바로 우리 시대, 지금 이순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버린다. 무섭다.... 소설의 긴장감은 굉장하다. 어릴 적 '과연 이런 미래가 올까?' 라는 의문은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그냥 단순히 기계들, 컴퓨터들, 로봇들 자체가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들로 비치기 시작한다.

소설은 기계들에게 마음을 심어준 "선각자 바이러스"로부터 시작한다.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실험들이 우연히 이끌어낸 이 선각자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창조한다.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가 아닌, 인간들 없이 자연과 함께 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벌어지는 인간과 기계들의 전쟁!

"함께 평화롭게 사는 걸로는 충분치 않아. 한쪽 종족이 무릎을 꿇은 상태라면."...509p

인간들은 지금껏 자신들만을 위해 살아왔다. 다른 존재들 같은 것은 자신들만을 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제왕인 듯이 계발하고 바꾸고 끊임없이 재창조했다. <<로보포칼립스>>는 그런 인간들에 대한 경고이다. 언제든 다른 존재들이 그런 인간들의 무절제함과 자만심을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각자 바이러스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적응하는 동물이다. 잘못을 범하고 죄를 뉘우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실수들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달라. 인류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무엇이든 말이야."...37p

때로는 전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용기, 자신의 가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결단과 고집, 때로는 맞서던 적수와 함께 더 큰 적을 위해 굽힐 줄도 아는 지혜 등등...인간의 장점은 결국 이 힘든 고난을 함께 헤쳐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한 번 빠져들면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 높은 소설은, 그저 읽기에 즐겁기만 한 소설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과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