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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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에 70명의 시인이 모인다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시인들이 하나의 시들을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 시인들의 시 중 한 구절 혹은 한 구석을 옮겨온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글귀들의 옆에 조용하게 일러스트가 자리잡았다.

<순간을 읊조리다>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느낌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여러가지임을 알게 해 주는, 정말 신선한 책. 시이지만 시가 아니고, 그렇다고 시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시적인. 그래서 학교 다닐때부터 압박으로 작용했던, '국어시간의 시에 관한 거부감'을 막연하게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시 입문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봤다. 출판사 서평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 문장이 나의 전부를 읽은 것만 같은 전율과 기쁨을 줄 때, 그 한 문장에 이끌려 하나의 시를 읽게 되고, 그 하나의 시 때문에 한 권의 시집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실로 가지고 싶은 문장들을 통해 시의 세계라는 황홀경에 발들일 수 있는 작은 출입구를 마련한다.라고. 책 속에는 읽기 쉽고 와 닿는 글귀들이 많이 들어있다. 여백이 잔뜩 들어있는 이 글귀들 속에서 읽는 이는 어쩌면 삶의 한 부분을 발견할 수도, 옛 사랑을 찾을 수도, 과거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여백을 많이 잃어버린 채 산다. 내가 짰지만 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인간 관계도 사회 생활도 모두 빠듯하게 해 내야지만 당연한 세상에서 살면서 말이다. 이건 살아 있는게 아니야,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또 다시 빠듯한 생활 속의 하루를 보내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 돼 버린 요즘 사람들... 책 속의 여백은 이런 바쁜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던지는 것 같다. 잠깐만 여기 와서 쉬라고 말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말이다. 책은 여백이 가득 들어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백이 가득 있다. 사실 이 말 자체는 모순이지만, 이 책을 기획한 사람들은 책 속에 한가득 마련한 여백을 통해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끼기를 바라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빈 공간에 자리잡은 몇 글자는 소설의 교훈성보다도 때로는 더 교훈적이고, 슬픈 음악보다도 더 슬프다. 화려함을 자제하고, 복잡함을 제거하고, 간단하면서도 조용하게 마주한 여백.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냥 그것들이 좋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들의 물살이
가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그냥 속에 살아가는
당신을 만나는 일처럼.      
그냥 - 이승희 (82, 83쪽)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키 - 유안진 (102쪽)

 
삶, 사랑, 고통, 이별, 관계, 그리고 당신.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지극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온전한 전체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있는 그대로의 한 문장으로써의 글도 반기게 된다. 여백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찾은걸까. 사람들 속의 나, 그리고 너와 나 사이의 나, 그리고 외로운 나. 아마 내일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나, 행복한 나, 너와 나 사이의 나. 금방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지만 손에 닿는 곳에 두고 가끔씩 읽으면 여백을 보면서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백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참, 일러스트의 따스함이 글귀들을 더 생각하게 만드는, 볼수록 따뜻한 책이다. 봉현 작가의 따뜻한 일러스트는 색감도 그림체도 뾰족하지 않아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의 감성이 더해진 것이 어쩌면 이 책이 더 사랑스러워지는 데 한 몫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누구든 이 책을 읽는 이에게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의 여백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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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호경 지음, 전철홍.김한민 각본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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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사실에 근거하면서 글을 쓴다 해도 어찌됐든 그 시대의 정확한 고증과 재현은 남아있는 사료로는 힘들다. 다큐멘터리조차 현실의 상상력이 들어가야 하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러니 영화나 소설이란 장르를 갖고선 그 인물이 겪어온 삶을 똑같이 만들어 낸다는 건 어불성설- 그래서 일단 <명량>이라는 영화와 소설은 'Faction'임을 인지해야 한다. 사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사료들과 취재를 사용하되, 극의 쫀득함을 위해서 인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 어느정도는 만들어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순신의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끓고 있다. 영화가 1700만을 넘어섰다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그에게 갖고 있는 마음은 단순함을 뛰어 넘게도 보인다. 이순신이라는 장군이 가진 백성을 위하는 마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신의, 왜구에 맞서 싸운 용기까지. 이순신이라면 의당 따라오는,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영화를 계기로 각성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지만 그 허구조차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만큼 이순신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들은 보는 이의 입장에선 감동스럽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겠지만, 글을 읽다보면 내가 백성의 일부분이 된 것 양 일본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고 백성들의 용기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의 서평을 신청했을 때는 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영화 극본을 소설로 옮겼을 때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궁금증을 좀 해결해보려고 했다. 소설이 원작인 것이 아닌, 영화 극본이 원작으로 소설로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때는 영화가 돌풍이기는 했으나 이정도의 돌풍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 있었었다.) 영화가 소설로 출간된 경우를 찾아보면 많이 있겠지만 내가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풀어보려고 했지만, 내가 아직 <명량>을 보지 못했으므로 아쉽게도 비교는 할 수 없게 됐다. 영화가 너무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 역대 최대 관객 스코어를 매일 갈아치우게 되자, 왜인지 나는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돼서다. 뭐 그건 둘째 이유고 실제로 보러 갈 기회가 없었다. 시간을 빼서 시사회들은 보러 간 적이 있지만, 8월에는 시간을 빼서 영화관에 가야 할 만큼 일들이 많았다. 시사회가 아니고선 영화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추석 지나면 영화를 내릴 것 같은데, 소설에서 본 전투씬을 큰 화면으로 영화관에서 볼 수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영화를 만든 자본과 영화를 배급하는 곳이 같은 곳이어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개봉관을 줬기 때문에 이만큼의 흥행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영화가 너무 잘 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테다.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일단 소설에서는 "이 소설은 일본군과 조선의 이야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최대한 전투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명량대첩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으므로 모든 포커스가 후반부에 있는 전투를 위한 포석들인 것이다. 일본이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에 보낸 정유재란의 장수들의 권력싸움이라든지, 조선 내 선조의 눈치를 보는 사대부들의 이야기라든지, 그들을 돕고 있는 허구의 일본군 첩자와 탐망꾼과 수군을 돕는 백성들까지.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전투가 펼쳐지기 전의 각자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대망의 전투씬에서는, 글을 읽어나가면서 영화는 이랬겠구나..정도로 꽤 급박한 상황들로 하여금 전투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영상보다야 다가오는 것은 적겠지만, 전투씬 만큼은 포가 날아다니고 배가 불타는 걸 영상으로 보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이순신 장군의 휘하 부하들조차 두려워할 때 대장선이 홀로 적진에 진격하는 모습은 사실이지만 왜인지 허구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말이 안됐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말이 안될만큼 모든 것이 열세한 채로 시작된 전투였고, 전투가 시작되고 끝날때까지 이길 수 없음이라는 전제를 두고 진행된 전투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는 천행이 따랐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순신을 그렸다.

 

"울돌목의 회오리를 이용하실 생각을 어찌 하셨습니까?"

"천행이었다."

"그렇다면... 회오리가 아니었다면 아주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랬지. 또 그 급박한 순간에 백성들이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필시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조선 수군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을 두고 천행이라 하신 겁니까? 아니면 회오리가 천행이었다는 말씀입니까?"

"네 생각엔 무엇이 더 천행이었겠느냐?"

 

책을 덮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천행이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줬던 탓이다. 이 또한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는 없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감독의 상상력인지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조차 어려울만큼 하나로 뒤섞인 이야기에서, 아마도 우리는 실존했을 법한 이순신을 만나게 됐다. 그게 사실은 한낱 팩션 속 주인공 일지라도 이순신은 언제까지나 '사실'로 다가온다. 영화로 본다면 스토리가 끊기고 편집도 뭉툭해서 보기 힘들었다는 의견들도 꽤 있었는데, 아무래도 책이다 보니 그런 부분은 전해 괘념치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기에 오히려 책이 많은 부분을 더 보여주는 듯도 하다.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거란 생각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봤던 한 장면도 책에서는 꽤 깊이 다가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술술 읽히는 소설책은 아니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부분은 잘 읽히지가 않아 꽤 애를 먹었다. 하지만 탄력이 붙고 후반 전투씬에 가면 그때부터는 잘 읽을 수 있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 것. 아마 나는 영화를 따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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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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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책이었다. 이 책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말이다. 윤대녕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내겐 익숙치 않은 이름이었고, 보통의 활자보다 조금 더 큰 활자와 군더더기없는 편집은 내게는 '옛날책'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책을 읽기 전 첫 느낌은 그랬고,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여전히 '옛날책'이다. 전자의 '옛날책'은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느낌이고, 후자의 '옛날책'은 '옛날을 추억하는 책'의 준말 정도다.

 

공간을 이야기하면서 그곳과 관련된 지나간 예전 이야기가 늘어진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 힘든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가 된 다음의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곧잘 본래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추억 속을 요리 조리 헤매고 다니다보면 금새 한 공간의 추억이 갈무리 되곤 한다. 그 공간은 이제는 사라진 공간들이지만, 작가에게는 되살아나는 추억의 매개체일 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은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공간에서 옛날을 추억하며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 잠깐의 추억 여행.

 

노래방, 영화관, 고향집, 자동차, 골목길, 우체국, 공중전화 부스, 병원, 부엌, 여관, 바다 등등. 여러 군데의 장소가 등장하고 그곳에서의 추억을 꺼내놓는 작가의 공간들엔 부제가 달려있다. 그 부제만 들어도 어떤 공간인지 짐작이 갈 만큼 부제를 잘 달아놓아서, 서평의 제목조차 늘 달기 힘들어 하는 내겐 작가는 순간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옛날을 추억하는 사람의 말투는 늘 즐거운 건가보다. 작가와 나이가 비슷한 우리 엄마를 예로 들어보면,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엔 늘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어렵고 힘든 때도, 한껏 철없이 뛰어놀며 사고쳤던 어린 말괄량이 시절도 모두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추억. 그땐 그랬었지, 추억을 이야기하며 아픔도 무뎌진 채 아련함만을 안고 있는...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런지.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공간이라는 것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지만 세월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지나고 나면 한갓 꿈으로 변하는 삶이라는 것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버려 한사코 복원하고 싶은 꿈이었다고 말이다. 나이가 들어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너무도 많고 현실의 팍팍함에 고개를 떨구는 일이 많은 요즘의 나는 그렇다. 근데, 어느정도 살아낸 다음 나의 예전을 돌아보는 기분은 퍽 즐거울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새삼스럽지만 즐겁고 어려웠던 기억도 추억이라 이름붙여 미화할 수 있는.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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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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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가 판가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정여울 작가의 글은 일단 믿고 보는 편이다. 자신의 현재 이야기와 예전의 이야기들을 잘 섞어서 버무려 내놓는 것. 자신의 전문 분야인 문학과 영화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잘 넣어두는 것. 이 두가지와 더불어 그녀의 생각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유럽>보다 <나만 알고 싶은 유럽>이 더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와 과거의 공존.

 

첫번째 책이 나왔을 때보다 시간은 좀 더 지나가 있었고, 그래서 여행과 관련된 생각은 깊이를 더하게 됐다. 자신이 좋아했던 유럽의 면면을 소개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선정한 테마는 특별한 하루, 예술을 만나다, 달콤한 유혹, 마법같은 풍경, 그들처럼 살아보기, 맘껏 취하기, 생각이 깊어지는 곳, 작가와 영화 주인공처럼, 축제, 휴식까지 총 10개의 테마다. 물론 이전의 책과 같은 10개의 테마들이지만, 아무래도 가보고 싶고 달려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고 그래서 그것들을 즐겼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가만히 앉아있다거나 사색을 한다거나 현지인처럼 생활한다거나 하는, 관광객의 마음에서 현지인의 마음으로 그 마음가짐이 옮겨갔다. 이방인으로 낯선 도시에 서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해 봤으니, 이번엔 그 낯선 도시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찾는 경험을 이야기들에 녹여낼 차례였던 거다.

 

마음은 거대한 색유리창과 같아서 얼룩진 마음으로 바라볼 때는 온 세상이 어둡고 칙칙해 보인다. 어떤 완벽한 여행지에 가면 모든 고민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편리한 환상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는가에 따라, 내가 그 장소에 대한 설렘을 얼마나 깊이 안고 가는가에 따라 여행지는 전혀 다른 절경을 펼쳐 보여줄테니. (135쪽)

 

이번 책에는 무작정 발길이 닿는대로 흘러가다 발견한 새로운 풍경들과 마음에 드는 예술작품들을 찾아냈던 기억들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그러다 작가는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원효스님의 해골물에 버금가는 진리를 깨닫는다. 알고 있지만 당연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들.. 그래서 마음가짐에 대한 이 말이 더 와 닿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에는 작가의 선배가 들려준 이런 한 문장이 나온다.

"인생은 항상 ㄷ자로 뚫혀 있어. 자꾸 억지로 ㅁ자로 메우려 하면 꼭 에러가 나."

완벽함은 존재하기 힘이 드니, 완벽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는 게 좋다고. 모든 글 중에서 최고로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미 사로잡혀버렸다. 그녀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보기도 전부터 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태양 아래서 더욱 눈부신 광휘를 발산한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들은 겨울의 가라앉은 햇살 속에서도, 저물어가는 황혼녘의 붉은 노을 속에서도, 인적마저 드물어진 비수기의 쓸쓸한 풍광 속에서도 자기만이 지닌 존재의 빛을 드러낸다. (227쪽)

 

비수기의 쓸쓸함은 활기를 잃은 대신 사색할 공간을 마련해준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존재하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여행지를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참 재미겠지만, 비수기에 여행을 떠나 좀 더 나만의 시간을 갖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작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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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혼자 여행하기 누군가와 여행하기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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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여자도 어른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하다며 '아직 소녀감성'을 이야기하던 마스다 미리가 이번엔 여행을 꺼내들었다. <잠깐 저기까지만>은 혼자 떠나거나 남자친구와 떠나거나 엄마와 떠나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나거나, 어찌됐든 여행이란 것을 즐거운 놀이쯤으로 여기며 여행가기를 즐기는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이야기들을 적은 에세이집이다. 이 책 역시 마스다 미리 특유의 글솜씨로 자신이 지나간 여행길을 담담히 되짚는다. 그 사이사이 그녀가 문득 문득 하는 생각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하는 포인트 중에 하나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 언제나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잘 적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이 글로 보일때의 쾌감, 느껴본 적 있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쾌감을 나는 마스다 미리에게서 얻는다. 그녀가 글을 아주 잘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녀의 이야기엔 힘이 있고, 그래서 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늘 즐거운가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란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더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나란히 작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청춘'이란 지난 뒤에도 어딘가 가까이 있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38쪽)

 

 
#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언제나의 일상이다. 어제는 미야기 현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에 곧잘 일어난 그 감각과 비슷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의 내 자리로 돌아와서 조금 있다 보면, '어? 나 방금 화장실에 갔었는데, 화장실 갔을 때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어.' 곧잘 그렇게 느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지만, 뭔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63쪽)

 

 

친구와 여행에 관한 기분에 대한 글은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했다. 여행은 아무래도 누구와 같이 가느냐가 참 중요한데, 요즘 한창 인기있는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의 윤상, 유희열, 이적을 보면서 나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계획을 짜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여행과 친구들과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느낌이 많이 다른 듯 보였다.) 그래서 책 속에 친구들과 여행다니는 챕터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아.. 나도 친구들이랑 여행가고 싶다,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면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의 심정을 적은 저 글도 많이 공감한다. 여행지에 가 있던 나와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전혀 다른 인물같은 느낌이 들고 멀어진 느낌도 든다는 부분이 참 많이 와 닿았다. 그냥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는 허전함 공허함 정도 밖에는 표현 안해봤는데 이런 표현이 있어 얼른 옮겨 뒀다. 이 부분은 기발한 생각같다. (물론 되게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길거리 걸어다니면서 소소한 군것질거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들고 있는 음식은 더 맛이 있다. 군것질 하나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 안다. 그래서 길거리 음식은 그래서 일반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마스다 미리도 이 의견에 백퍼센트 공감할 것이다. 그녀 또한 모든 지역에 놀러 갈 때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으며,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면 무조건 그 줄에 동참해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하든, 아니면 혼자 여행을 하든 마스다 미리에게는 먹는 게 가장 중요해보인다. 이 책에는 그래서 추사랑 저리가라의 먹방이 기술되어 있으며, 늘 여행 경비를 적어놓는 곳에 식대가 꽤 큰 비용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살아가는 건 먹기 위해서 사는 거다. (그럼 그럼.)

 
다만 즐거웠던 부분들을 제외한 좀 힘들었던 부분은 '어디를 가서 여행할 때 어떤 탈것을 타고 몇 분이 걸려서 갔다.'라는 여행기의 첫 부분들. 그녀는 책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는 담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일본의 지명이나 탈것이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그 긴 단어들이 고역이었다. JR 리쿠토센, 신칸센, 고노센 등 참 다양한 이름을 가진 일본의 철도들의 등장과 내가 알지 못하는 일본의 지명들, 역이름이 한자와 함께 등장했을 때는 멘붕. 저 기차들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KTX, 무궁화호 기차, 해안열차 쯤 되려나. 분명히 더 많은 이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억이 잘 안난다. 책 초반에는 어떻게든 구분해 보려고 애를 썼었지만, 안그래도 낯선 일본의 지명들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고 그 지명들때문에 진도도 잘 안나고 해서 책을 웬만큼 읽어나간 다음부터는 포기해버렸다. 그 부분은 스윽, 읽어버리고 넘어가니 전보다 훨씬 술술 읽혔다.(하하) 아무래도 나는 지명이나 세세한 명칭을 아는 것은 힘든 스타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여행 에세이기는 하지만 이 책으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분들은 아마 없으리라 본다. 물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마스다 미리라는 어른 여자가 어떻게 여행을 즐기는 지에 초점을 맞춰서 본다면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혼자 여행을 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는 여자어른이나 혹은 나처럼 여행을 가고 싶음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책. 여행 그까이꺼 대충~. 뭐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거 말이다. 혼자 떠나거나 누군가와 함께 떠나거나 어쨌든 여행을 떠난 그녀의 모습은 멋있었다.


 
어른이라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이기에 누구의 터치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는 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아닌, 단지 두려움에 여행을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여행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는 그녀를 보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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