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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환영 받지 못하는 베스트


이 책은 제9기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첫 번째 인문/사회/과학 분야 평가 도서 중 한권이다. 러셀의 유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러셀 생전의 에세이, 연설문, 자서전 등등 다양한 저작에서 특정 대목을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원제는 <Bertrand Russell's Best>인데 국역본 제목은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이다.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 윤리 등을 바라보는 러셀의 관점, 시선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이 그런 주제에 대한 러셀의 예리한 분석이나 깊이 있는 통찰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짧으면 대여섯 줄, 길면 열댓 줄 정도의 분량으로 특정 문제들에 대해 간결하고 유머러스하게 내뱉고 있으니, 경구에 가깝다. 원래는 심오한 텍스트의 한 부분이었을 내용들을, 그것으로부터 베어내 뽑아왔으니, 전체 맥락에서 그 구절이 담당하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유의 기능은 박탈당했으나 대신 가벼움과 날카로움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다른 많은 서평이 올라왔는데 일일이 확인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이 책에 대한 많은 불만이 있었다. 이 책은 정말 별로인 책일까?



나 역시 이 책을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못했다. 서평을 쓰려고 하는 동안에도 대체 어떤 식으로 서평을 써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동안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거는 책의 스타일과도 관계되는 문제인데, 서평이란 것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애초에 이런 방식(이런 방식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발췌식? 옴니버스식? 백과전서식? 암튼)으로 만들어진 책은 추천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이 책을 받고 약간 당황스러웠고, 읽고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다른 고민이 또 추가되게 되었다. 이 책의 성격과 관련된 것이다. 이 책은 인문 분야의 서평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과연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러셀의 철학 작업에 관한 글은 아니다. 이 책이 인용한 원저들은 대부분 에세이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정치나 종교, 윤리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들어있었다고 하더라도 원저에서 분리되어 조금 더 가벼워진 경구들은 본래의 그런 인문학적 성격마저 희미해진 상태이다. 알라딘에는 이 책을 교양인문학과 철학으로 분류해놨는데, 교양 인문학은 그렇다 쳐도 철학책이라고 보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분류했는지 확인해보려고 대학 도서관에 가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영미철학으로 분류해놨다.


나는 이 책이 에세이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에세이로 여기고 러셀이 뭐라고 말하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면서 조금 더 민감하게, 그렇게 읽으려고 했다면 조금 더 재밌었을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러셀의 이름은 알지만 그러니까 그가 위대한 지성이고, 그가 철학사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알지만 실제로 그의 철학이 뭔지는 모르는 그런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러셀의 사유가 무엇인지 맛보기를 원하면서 이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러셀 철학의 입문서이길 기대하면서 읽을 수도 있고, 혹은 러셀의 사회사상에 대한 소개이길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책 자체만으로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독자의 애초의 기대감, 그러니까 인문학 서적으로 이 책을 대하면서 바랐던 그런 기대감을 책은 배반하고 있다. 당연히 평가가 나쁠 수밖에.


출판사 측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식의 홍보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 최고의 재치, 최고의 지혜, 최고의 풍자를 모은 결정판!” 같은 홍보 문구는 어느 책이나 으레 하는 그런 홍보의 수준을 벗어나지도 않았고, 왜곡된 정보를 주지도 않는다. 이 책이 러셀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거나, 러셀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사유한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최고의 재치, 지혜, 풍자를 “모았다”고 말하고 있다. 러셀이라는 이름에 너무 기댄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데, 이 책 애초의 기획 자체가 러셀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책의 내용 자체가 워낙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러셀이 말해왔던 것이기에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걸 러셀의 이름으로 홍보하지 않으면 어떻게 홍보할 방법이 없다.


내가 보기엔 출판사도 적절한 방식으로 이 책을 홍보했고, 책의 내용도 어느 수준 이상의 훌륭한 재미를 주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이것이 본격 인문서적이 아니란 것을 알고 읽는다면, 꽤 흥미 있는 짧은 에세이 모음이 될 것 같다. 더군다나 꼬박 한 세기를 산 러셀이 매 시기 사회적으로 발언을 해왔기 때문에 당시 서구의 역사적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단 점도 적지 않은 재미를 준다.


하지만 꽤 잘 만들어진 이 책이 왜 지금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면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혹평을 많이 듣고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독자의 기대와 책의 방향이 어긋나 있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엔 이 책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의 출간이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문학 대중화의 큰 흐름 아래 다른 많은 철학자들이 재조명되고 대중적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셀의 철학에 대한(여기서 러셀의 철학이란 이 책에서 찬양해 마지 않는 기호논리학과 수리철학을 의미한다) 대중적 소개가 많이 시도되지 못한 듯하다. 에세이 같은 그의 다양한 저작들이 꾸준히 출판되고 꽤 널리 읽힌 것에 비해 오늘날의 위대한 철학자 러셀을 있게 한 수리철학과 기호논리학에 대한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상당히 알려진 바가 적다. 지금 사람들은 바로 그런 부분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러셀에 대한 입문서 같은 것을 기대하거나 바랐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모순이 있다. 어려운 본격 철학책은 아니다. 대중 독자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에세이집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대중 독자들의 요구와는 어긋나 있다.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오히려 러셀의 철학을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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