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이번 4월 한달 간 출간된 신간 도서 중 인문/사회/과학 분야 중에 관심이 가는 책 다섯 권을 선정해본다. 

1.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 (정정훈, 그린비, 2011.04.19.)

  얼마 전 좋은 입문서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봤었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의 좋은 입문서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꼽겠다. 이 시리즈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입문서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입문서의 역할을 지금껏 해내고 있다. 

  이 시리즈는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맑스를, 칸트를, 니체를, 장자를 현대 철학의 다양한 면들과 접촉시킨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현대 철학에 오염된 고전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런 오염이 반갑다. 사실 오염(?)된 것은 고전이 아니라 이 현실이다. 역사는 흘러갔다. 그들이 그 고전을 썼을 당시의 문제틀, 이데올로기는 변형되었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그 책과 현대의 독자들은 다른 '에피스테메'를 딛고 있다. 그 간극을 무시하고 텍스트에 무조건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고전을 죽이는 길이다. 

  열네 번째 리라이팅 클래식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것이다. 저자 정정훈은 이를 맑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재술한다. 이미 그람시, 알튀세르 등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위대한 유물론의 전통이라는 흐름 속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에 대한 일반의 통념은 권모술수와 처세의 사상가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이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마키아벨리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라는, 현대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철학보다는 처세술이 필요한 시대인가?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함께 그런 시대는 저물고 있다. 마키아벨리를 새로운 지적 전통과 결합시키는 것이 시대의 새로운 요구이다. 이 책의 저자 정정훈이 마키아벨리를 혁명적 맑스주의와 어떻게 마주치게 할지 사뭇 궁금하다.  

 

2. 국민과 서사 (호미 바바 엮음, 류승구 옮김, 후마니타스, 2011.04.22.)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과 더불어 탈식민주의 3대 이론가로 불린다는 호미 바바. 하지만 난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3대 기타리스트니, 4대 미드필더니 하면서 이런 식으로 클래스를 구별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호미 바바의 이론이 에드워드 사이드나 가야트리 스피박과 어떤 차별점을 보일지 기대되고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탈국가화 추세는 근대질서에 대한 저항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 체제 자체의 한계와 모순으로 촉발된 것이고, 그러한 위기들에 대한 무능력으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추세를 마냥 손 놓고 환영할 수만도 없는 것이, 여전히 칼자루는 '그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네이션' 체제가 제국주의 시대가 종결되고(제3세계 식민지의 대대적인 독립) 미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 이후에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었던 것처럼, 새롭게 변형된 '네이션'체제에 다시금 갇히게 될 수도 있다. 현 추세를 촉발시킨 것은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렇게 새롭게 열린 공간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적극적으로 사고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3. 상대성이란 무엇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영사, 2011.04.25.)

 상대성 이론 만큼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론도 드물다. 아인슈타인을 이역만리 작은 나라의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든 상대성 이론은,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감히 도전하기에는 왠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 출판물 중 자연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출간된 입문서가 상대성 이론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상대성 이론에 대한 대중의 흥미는 상당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해가 안돼서 그러지..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단지 과학계 뿐 아니라 지성사 전체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우리는 이미 저도 모르게 상대성이란 지평 위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신간평가단에서 과학 분야가 인문/사회 분야와 함께 다뤄지면서 과학 분야 책이 홀대받는 경향이 있다.(물론 출간되는 책 자체가 인문/사회에 비해 적은 탓도 있지만) 나 역시 과학에 문외한이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 아인슈타인은 재밌고 명쾌한, 새로운 방식의 강의로도 유명했다. 강연집 형식을 띄는 이 책 역시 명쾌하고 재밌기를 바란다.  

 

4.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김원, 이매진, 2011.04.25.) 

  1980년대의 대학 문화와 학생운동을 더듬어 가는 이 책은 "잊혀진 것들"에 대해 기억하자고 말한다. 스스로가 386세대인 저자는 그 시대를 트라우마라는 측면에서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그것은 '잊혀진 것들'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단절된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유난히 질곡이 많은 우리 현대사 때문인지, 아주 가까운 과거조차도 우리에겐 너무 아득하게 느껴진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혁명, 독재와 민주화라는 숨가쁜 일련의 과정 아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불과 2,30년이 지난 가까운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68세대의 극복이 포스트 68세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서유럽과 달리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386 그들이 물리친 구시대의 유령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저자는 기억의 정치를 말한다.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앞으로 나아갈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세대는 역사와 기억에 대해 너무 무책임(무기력)해왔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억을 해야 한다.  

 

5.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알라이다 아스만, 그린비, 2011.04.25) 

   주목 신간도서로 선정할지 말지 무척 고민한 책이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책이 아니라 신간평가단 리뷰 도서의 1차적인 후보군을 고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싸고 두꺼우며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는 점은 은연중 선정을 꺼리게 만든다. 교양서보다는 학술서에 가까운 책은 가급적 제한하려고 했다. 이번 선정 목록 중에서는 앞서 추천한 호미 바바의 <국민과 서사>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굳이 선정한 것은, 바로 위에서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선정하면서 발견한 고민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기억에 대해 너무 무책임해왔던 것은 아닐까?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 대해 너무 무기력해왔던 것은 아닐까? 기억이라는 것이 기성 권력, 기성의 지식, 특히 미디어에 점령당하는 것은 비단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기억의 점령에 너무 무기력하게 방관해온 것은 아닐런지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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