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관두면 되겠네. 그런 똥 같은 회사. 헤어지면 되잖아, 그런 똥 같은 마누라. 어째서 그러지 못하는 거야? 귀찮아서?"

 "그게..."

 "그게 뭐?"

 "그러니까 세상이란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아니, 어렵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으니까. 정론이라면 무조건 통용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나 별로 정론을 얘기한 거 아냐. 당신이 더 높은 사람이고 배운 사람이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 정론이겠지."

 "내..."

 내가 하려는 말은...

 "너, 너 같은 사람이 내 고생을 알아? 싫어도 그만둘 수 없어. 괴로워도 헤어질 수 없다고. 괴롭고 또 괴로워서 살 수가 없지만, 이제 한계지만,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고. 빌어먹을!"

 "어째서?"

 "그러니까 너 같은 놈은 모른다고 했잖아!"

 "그럼 죽.지.그.래."

 겐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죽으라고?"

 "그래. 이봐, 그렇게 모든 것이 슬프고 힘들어서 미치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위도 없는 거 아냐?"

 "그건...."

 겐지가 다시금 말했다

 "그럼 죽으면 되지. 당신, 죽고 싶지는 않은 거야?

 ""죽고 싶지는..."

 .... 않다. 아마도.

 "어째서 죽고 싶지 않은 거야? 살아봐야 힘들기만 하고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죽지?"

 "그, 그렇게 간단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당신 말이지, 야마자키 씨 당신. 당신 변명도 뭐, 모르지는 안헥ㅆ지만, 그렇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 세상에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이란 건 없어. 회사를 관두지 못하는 건 당신이 관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이혼하지 않는 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분명히 그렇다니까."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아?"

 "등신이라도 알지. 당신, 어쨌거나 부장이잖아. 인정받고 있잖아."

 "이, 인정 같은 건..."

 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거지? 더 인정받고 싶으니까, 더 높이 평가받고 싶으니까 괴로운 거 아냐? 부인한테도 더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냉대받는 게 슬픈 거 아냐? 그렇지 않아?"

 "그건..."

 "예를 들어 오늘 집에 들어갔는데, '어서 와요. 피곤했죠?' 그런 말 들으며 어쩌겠어? '지금까지 미안했어요.' 사과하면 금세 용서할 거지, 당신? 뭐, 그래도 지금까지 섭섭했던 거에 대해서는 투덜거릴지도 모르지만, 요는 당신이 우위에 서고 싶은 것뿐이잖아. 회사도 그래. 내일 출근했더니 승진이 되어 있다면 기쁘겠지? 급속히 기분이 좋아질 거 아냐? 떠받들어 주면 모든게 원만해지겠지. 그렇게 떠받들어 주길 바라니까 그만두지 못하고, 헤어지지 못하는 거야. 그것 말고 없잖아."

 "나는 힘들...."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밥을 먹으면 맛있고 계집을 품으면 기분 좋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거 아냐? 그런 게 전혀 없다고,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어?"

 "그런 향락적인 것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지."

 "없을 것도 없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힘들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거야. 당신이 힘들어하는 건 모두 그런 향락적인 점에 있잖아?"

 "뭐?"

 "당신이 말하는 마이너스란 그저 플러스가 아니라는 것 아냐? 그건 마이너스가 아니지. 인생이든 뭐든 보통은 제로라고. 플러스도 없고 마이너스도 없는 것이 보통이야. 있어봐야 결국은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니까. 좋은 일이 없으니 불행하다는 것, 그거 웃기지 않아? 나쁜 일도 없잖아? 인정받지 못해도 칭찬받지 못해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제대로 하고 있으면, 그걸로 상관없잖아? 남의 말 신경 쓸거 없다고. 부인도 그래. 어떤 취급을 당하든 일단 먹여 살리고, 그것보다 좀 더 많이 벌어서 자식 학교 보내고, 뭐가 잘못됐어? 차갑게 대한다거나 해주지 않아서 토라진 거잖아."

 겐지는 말했다.

 "아사미는 당신 욕구의 배출구였을 뿐이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속이는 거 아니지. 당신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그 욕구불만을 아사미의 가랑이에 쏟아부었을 뿐이잖아. 폼 잡지 말라고. 진심이고 어쩌고 그런 소리 그렇게 쉽게 할 거면 뒤따라 자살이라도 하지? 못 죽잖아? 솔직히, 죽은 사람은 말도 할 수 없으니까 바람이 들통 날 일도 없어서 잘됐다고 생각했지? 안 그래?"

 

p54-5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1-1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세상이란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아니, 어렵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으니까. 정론이라면 무조건 통용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이상과 다른 현실~ 현실속에서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해결되지 않는 희안한 모순들~~ 정말 사무치게 느낍니다-_-; 반면교사로 삼고 저부터 조심해야겠습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침 뱉은 우물 다시 찾는다'

2011-11-07 20:34   좋아요 0 | URL
정론이 다 통하지 않는 세상.
처음부터 정론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정론도 사실 다수에 의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다수가 다 옳은 것은 아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