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상들
윌 듀런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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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크게 6항목으로 작가가 생각하는 위대한 사상가들, 시인들의 리스트와 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들, 세계사의 결정적인 연도 등으로 나눠져있다. 

 

 

1- 뻔뻔한 영웅 숭배

2-위대한 사상가 10

3-위대한 시인 10

4-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 100

5-인류 진보의 최고봉 10

6-세계사의 결정적인 연도 12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생각을 정의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각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 존재의 마지막 수수께끼다. 다른 모든 것이 생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류가 이룬 모든 업적의 원천과 목표도 생각 속에 있다. 생각의 등장은 진화하는 드라마에서 위대한 전화점이었다.

-p23

 

우리들 들쑤셔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확실히 욕망, 도무지 충족할 줄 모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의 욕구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욕이 넘치더라도, 길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생각이다.

-p26

 

 

'생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길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 생각이라면 길은 인간의 이성?

생각을 발전시켜 사상으로 정립하는 것은 타고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 역사에서 중심이 되는 사상가들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주관적인 생각이 유연한 이성의 모험으로 논리적인 사상으로 변할때

사상가들은 어떤 느낌일까?  자신의 사상에 만족할까?

'사상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그들의 개인적인 삶마저도 궁금해진다.

 

 

사물을 이렇게 탐구하면 지식이 완전해진다. 지식이 완전하면 생각이 진실해진다.

생각이 진실하면 영혼이 완벽해진다. 영혼이 완벽하면 자신을 갈고닦을 수 있다.

자신을 갈고닦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있으며, 집안을 다스리면 나라가 안정된다.

나라가 안정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어떤 제자가 악에도 선으로 응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에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선에는 선으로보답하고, 악에는 정의로 대응하라"

-p30-31  공자

 

루이 16세는 캄플 감옥에서 볼테르와 루소의 저작을 보고, "이 두 사람이 프랑스를 파괴했다."라고 말했다. 전체 정치를 겨냥한 말이었다. 어쩌면 이 가엾은 왕이 철학에 지나친 명예를 안겨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볼테르에게 집중된 지식인 반란의 근저에는 확실히 경제적인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p53  볼테르

 

이제 세상을 분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물질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면 물질에서 정신의 모든 수수께끼를 추론해 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정신을 먼저 다룬다면 물질을 단순히 감각 한 다발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각 기관을 통하지 않고는 물질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질이란 우리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란 정신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p55  임마누엘 칸트

 

 

동양에서 익숙한 공자에게 윌 듀런트는 깊은 감화를 받은 듯했다. 우리가 서양철학에서 받은 것처럼 말이다. 공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코페르니쿠스, 프랜시스 베이컨, 아이작 뉴턴, 볼테르, 임마누엘 칸트, 찰스 다윈. 그가 고른 열 명의 사상과 삶도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한 명마다 정해진 짧은 분량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나마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그 다음장의 위대한 시인 10이었다.

 

 

 

 

그 무엇도 머무르지 안고 모든 것이 흐른다.

조각이 조각에 달라붙고, 사물이 그렇게 자라난다.

그러다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알아보고 이름을 붙인다.

       그것들은

점차 녹아서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사물이 아니게 된다.

느리게 또는 빠르게 떨어지는 원자들이 공처럼 뭉친

태양들이 보인다, 태양계들이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태양계들과 태양들조차

영원한 흐름으로 서서히 되돌아갈 것이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지구여. 그대의 제국들, 육지와 바다,

모든 은하들 중 가장 작은 곳,

이른 흐름에서 둥글게 뭉쳐져, 이렇게 그대 또한

사라져 갈 것이다, 그대는 시시각각 이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무엇도 머무르지 않는다. 섬세한 안개에 싸인 그대의

      바다도

날아가 버리고, 달빛이 비치는 모래사장은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바다들이 들어와

하얀 낫으로 또 다른 만(灣)을 베어 낼 것이다.

-p83-84  루크레티우스

 

 

어둠 속에 나는 듣는다. 너무나 자주 나는

편안한 죽음을 반쯤은 사랑했거니,

많은 노래로써 죽음을 다정스러이 부르며

내 고요한 숨결을 바람에 흩으라 빌었거니.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죽음에 풍요한 듯,

아무런 고통 없이 한밤중에 끈타 버림에는.

그러한 황홀 속에 네가 너의

영혼을 쏟는 그동안.

그때도 너는 노래하고 내 귀는 들어도 못 듣고-

너의 드높은 진혼곡 속에 나는 한 줌의 흙이 되리.

-p103-104  존 키츠

 

 

운명앞에 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든, 자신의 짧은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작가의 진지함이든,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슬픔'은 간과할 수 없었다.

호메로스, 다윗, 에우리피데스, 루크레티우스, 이백, 단테,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키츠, 퍼시 비시 켈리, 월트 휘트먼.

시인은 주변의 '삶' 속에서 소재를 찾아, 글로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외에도 읽는데 필요한 시간은 권당 열 시간씩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주당 일곱 시간씩 4년이 걸려야 읽을 수 있는 교육을 위한 최고의 책 100, 정신과 목적의식이 혼돈을 지배하는 것, 형식과 의지가 물질을 지배하는 것인 인류 진보의 최고봉 10, 인류의 연대기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통해 철학과 이해에 이르는 역사적 시야를 얻을  수 있는 세계사의 결정적인 연도 12 도 읽을만했다.

 

작가 윌 듀런트는 모든 목록이 부분적이고 지역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각자 인류의 발전을 명확히 보여 줄 자기만의 목록을 만들어도 좋다고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깊은 생각을 탐구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다양한 인물과 생각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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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문학동네의 모니터링 미션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와카미 미에코의 날카로운 질문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해주어 재미있었다.

 

 

 

무라카미    호르헤 보르헤스라고 있죠. 그가 어느 날 시를 써서 친구 앞에서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 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가와카미    그때 작가가 두려워하는 건 아마 자기모방의 가능성이겠죠. 후퇴하지는 않았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 같은 대여섯 가지의 패턴을 되풀이하면서도 발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부분일까요?

 

 

무라카미    문장입니다.

 

 

가와카미    문장?

 

 

무라카미    네, 문장.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가와카미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 p11_12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내 머리를 울렸다.

문장을 갈고닦는 행위로 내 자신과 대면하고 변화하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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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과 바닥, 그리고 이불위에 무작위로 쌓아놓은 책들을 보며

'정리해야되는데..'하면서 바로 그 옆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나.

'이래도 될까?' 하다가도 이내 게으름이 밀려와

날 책과 꼭 붙어있게 만들어준다.

언제였을까? 책을 바닥에 쌓아놓고 읽게 되었을때가. 기억이 잘 안난다.

이동진 작가처럼 1만 7천 여권의 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점점 책에게 내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그래도 어떡해 좋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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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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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고, 안목은 자라난다.

 

국립박물관에서 34년을 일한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가 보고 느끼고 지내온 '세월의 흐름'을 알고 싶었다. 

 

1부 아름다움을 보는 눈

2부 알아본다는 것

3부 시골에 집을 마련하다

 

이렇게 총 3부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고 배운 '눈'이 표현되어있다.

 

 

 

 

시절의 운행이 이와 같으니, 변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그 변함을 들여다보면 실로 변하지 않음이 있다.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진실은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우주의 운행에 자신을 맡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봄날 뜰 안의 나무와 풀꽃의 새싹을 보며 우주 생명의 신비를 경외하고, 따뜻한 봄볕에 자신을 맡겨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녹일 뿐이다.  - 봄날은 간다  p23

 

 

아름다움이란 본래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것은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마음으로 보아야한다. - 아름다움을 보는 눈  p32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최고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를 이해하면 나머지 부분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 세상의 모든 명품  p71

 

 

온유돈후의 미학은 슬프되 비탄에 빠지지 아니하고, 즐겁되 음란함에 빠지지 아니함을 말한다. 인간의 슬픔, 비탄, 분노, 기쁨 등 적나라한 감성의 표출은 천박하고 비야(鄙野)한 것으로 치부된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도타우며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 온유돈후의 미적범주는 우아미에 해당한다. - 백자반합  p116

 

 

바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물이 낮은 곳을 따라 흐르듯, 바람도 부는 것이 아니라 흐른다. 정처 없이 이리저리 흐르므로 바람은 자유롭다. 바람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다. 오직 현묘할 뿐이다. 그래서 노자는 그 시원을 어둡고 캄캄한 골짜기 현곡(玄谷)이라 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다.

 

풍류는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멋이자 경지이며, 동양 예술정신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바람은 생명이다.  - 흐르는 바람을 맞으며  p144-145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이란 생겨난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이어서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불안정하고 변하는 실체를 붙잡고 집착하면 그로부터 고통이 발생하지만, 그 실체의 무상을 철저히 체득하면 나라고 하는 존재 자체도 없는 열반에 이르게 된다.

- 무상의 미학  p242

 

 

작가의 인간 '관계'가 신기했다. 사람과의 만남으로 얻은 교훈이나 생각을 '회상'이라는 구성으로 잘 표현해서 편하게 읽었다. 인간사 또한 먼저 자신을 속여야 남을 속일 수 있고, 남을 속이다가 결국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진리라는 말도 재미있었다.

 

극한에 치우치지 않고 온유돈후의 미덕으로 삶을 바라보고 경험해야 인간으로서의 '눈'이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넘치고 과한 감성에 노출되어 내가 꼭 봐야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보아야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놓여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자신' 스스로가 정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보일 것이라 믿는다.

 

퇴계도 아니고 도연명도 아닌 이내옥의 눈,

즉 '안목의 성장'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겸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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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 개정판 에디션 D(desire) 2
제임스 발라드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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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먼저 접했을때 그들의 변태적 욕구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정도의

느낌과 자극적인 성적표현에 충격이 있었다. 제임스 발라드 (작가와 이름이 같다) 라는 인물의 성격과 그가 느끼는 삶의 기쁨의 표출?을 인정하며 그가 하는 행동과 말, 생각들이 신기했다.

삶의 의미를 육체적 욕망에서밖에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책을 접하면서 영화와는 다른 또다른 충격에 빠졌다.

 

첫 문장에 다 나와있다. 본, 사고, 죽음.

 

어제, 본은 자신이 낸 마지막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우리가 알고 지내는 동안 본은 여러 차례 충돌 사고를 자행하며 죽음을 예행 연습해왔건만, 이번엔 유일무이한 진짜 사고였다. -p9

 

본은 흉터가 발산하는 신비로운 에로티시즘에 대해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계기판은 피로 물들고 좌석벨트는 똥칠로 범벅이 되고, 뇌 조직이 터져서 엉망이 된 선바이저와 같은 도착된 모습에서 성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본은 사고 차량을 보면 언제나 달아오르는 전율을 느꼈다. 펜더가 복잡하게 찌그러진 기하학적 모습에서, 라디에이터 그릴이 예상치 못하게 뒤틀린 모습에서, 마치 기계 펠라티오라는 정해진 행위를 하듯 계기판이 그로테스크하게 돌출되어 운전자의 가랑이 사이로 뚫고 들어간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다. 한 인간의 은밀한 시간과 공간은 칼과 젖빛 유리가 거미줄처럼 뒤얽혀 영원히 굳어버렸다. -p15-16

 

대량생산과 과잉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꿈과 희망이 미래가 아닌 현재의 욕망에 소멸되어가는 극한을 자동차라는 매개를 통해 표출한다. 작가의 상상이 곧 주인공의 상상이 되고 그 둘은 하나가 되어 인간의 극한을 보여준다.

 

내가 아내에게 본 애기를 하면서 우리 둘의 몸이 내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속으로 본의 모습을 완성하는 요소들을 항목별로 정리해 보았다. 차에서 내리려고 한쪽 엉덩이에 몸무게를 싣는 순간 낡은 청바지 안을 가득 채운 그의 단단한 엉덩이, 핸들에 앉아있으면 삼각 치골이 거의 드러날 듯하 얄팍한 뱃가죽, 축축한 사타구니를 뚫고 핸들 아래쪽 바지 속에서 뿔처럼 반쯤 발기되어 불쑥 솟은 그의 남성, 코에 묻은 미세한 점 같은 먼지를 털고 찌그러진 문짝 위를 닦는 모습, 내게 담배 라이터를 건네줄 때 보인 왼쪽 검지가 긁힌 자국, 클랙슨 양각에 닳아서 해진 푸른 셔츠 겉으로 보이는 발기된 유두, 우리가 앉은 시트 사이에 묻은 정액 얼룩을 긁다가 부러진 엄지손톱. -p157

 

차를 탄 다부진 그의 몸에 홀딱 반한 나는 폭력과 흥분이 손짓하는 시스템 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폭력과 흥분은 고속도로와 교통 정체, 훔친 자동차와 본이 분칠한 성욕이 결합된 것이다.  -p 231

 

고개를 돌리자, 고가도로 콘크리트 벽에 햇빛이 반사되어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정육면체가 만들어졌고, 그 단단하고도 차가운 표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하얀 진입로는 본의 몸 일부처럼 보였고 나도 그의 몸을 기어 다니는 파리떼 중 하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광채를 내는 표면에 타 죽을까 봐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정수리에 손을 대고 물컹물컹한 뇌 조직이 도망가지 않도록 꼭 붙들고 있었다. 느닷없이 빛이 사라졌다. 본의 차가 다리 아래로 드리워진 어둠 속에 파묻혔다. 모든 것이 또다시 칙칙해졌다. 공기와 빛도 소진됐다.  도로에 발을 내딛으며 차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자, 본이 불안하게 나를 붙들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말뚝을 따라 잡초가 무성한 폐차장 입구로 걸어갔다. 머리 위 고가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모터가 달린 난파선처럼 움직였고, 차체 도장은 헤지고 탁했다. 운전자들은 운전석에 뻣뻣하게 앉아, 아무 의미 없는 옷을 입힌 마네킹을 실은 공항버스를 추월했다. -p272-273

 

이들의 뒤틀린 욕망과 권태에 약간의 동정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한낱 인간의 욕망을 이렇게 멋지게 글로 묘사한 작가가 대단해보였다.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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