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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의 민음북클럽이 마무리되고 2019년 새로운 민음북클럽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혜택과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어 기대된다.

 

 

01  세계문학전집 or 세계시인선 3권 선택(일부도서제외)

02  민음 북클럽 에디션 2권 선택

03  북클럽 에코백 증정

04  세계문학전집 북커버 증정

05  독서기록노트 증정

06  민음 북샵 상품 및 각종 이벤트 할인

 

 

 

 

다른 출판사 책으로 갖고 있지만 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세계문학전집과 에디션.

 

오프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는 부담스러웠지만 집순이인 나에게 맞는 소소한 독서 이벤트들이 있어서 지난 1년동안의 민음북클럽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올해는 오프라인 이벤트도 참여해볼까하는 약간의 용기와 부지런함이 발현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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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유시민

『사기』를 나무로 치면 『표』는 뿌리, 『본기』는 줄기, 『세가』는가지, 『서』는 마디와 옹이, 『열전』은 잎과 꽃이다. 중요한 역사의사실을 확인하려면 『본기』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재미와 깨달음을 원하는 사람은 『열전』에 끌린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지만 욕망과 감정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사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 어디서나 모순과 부조리가 넘쳐 나며, 개인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행운과 불운에 흔들린다. 『열전』은 행운과 불운의 간섭을 받으면서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다 간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우리가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한, 물질적 관심의 영역에서는 무조건적인 1 진보 또는 지극히 결정적인 상승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어떤 전반적이고 엄청난 변혁이 없어도 후퇴가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적인 면에서는 진보를 확인할 수 없다. 물론 도덕적 이념도 외연이 확장될 수는 있다. 정신적인 면에서, 예를 들어 위대한 예술품과 문학작품을 오늘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보다 더 위대한 서사 시인이거나 소포클레스보다 더 위대한 비극 작가이기를 원한다면 가소로운 일이 될 것이다.

토인비의 패러다임에서 문명의 흥망은 창조적 소수자, 내적 프록레타리아트, 외적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세 집단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역사는 창조적 소수자를 위인전 목록에 올리기 때문에 그들은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집단으로 만 있을 뿐 구성원 개인의 이름은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 마르크스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기원은 고대 로마다. 지위는 로마 시민이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 말고는 국가에 기여할 것이 없는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 했다.
토인비는 ‘사회적 하위 계층‘ 또는 ‘비창조적 다수자‘라는 뜻으로이 단어를 썼다. 내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문명에 속해 있으면서 억 압당하는 노예, 농노, 천민, 농민, 빈민, 노동자들이다. 스파르타쿠스(고대 로마의 노예 반란 지도자)나 푸가초프(제정 러시아의 농민 반란 지도자), 전봉준(조선 후기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처럼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소망과 욕구를 대변하여 지배적 소수자에 대항한 인물들은 역사에 자취를 남겼다. 외적 프롤레타리아트는문명의 경계 밖에 있으면서 기회가 있을 때 힘으로 대항하는 집단으로, 지배적 소수자는 그들을 야만인‘ 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자신을 규정한다. 부족, 민족 집단, 신앙 공동체, 국민,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문명 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뿐만아니라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 알게된다.

7만 년 전 아프리카 한구석에 살았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 호모 사피엔 스는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고 이젠 신이 되려는 참이다. 그들은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지만불행하게도 자랑스러운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룬 적은 없다. 환경을 정복하고, 식량 생산을 늘리고, 도시와 제국을 세우고, 넓은 교역망을 구축 했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하지 못했고, 다른 동물에게는 큰 불행을 안겨 주었다. 우주왕복선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힘은 세지만 책임 의식은 없고,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하면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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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딕만의 독특함과 무한의 상상이 주는 즐거움으로 매년 읽고 있어요.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이야기에 매력에 언제나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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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문학동네의 모니터링 미션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와카미 미에코의 날카로운 질문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해주어 재미있었다.

 

 

 

무라카미    호르헤 보르헤스라고 있죠. 그가 어느 날 시를 써서 친구 앞에서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 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가와카미    그때 작가가 두려워하는 건 아마 자기모방의 가능성이겠죠. 후퇴하지는 않았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 같은 대여섯 가지의 패턴을 되풀이하면서도 발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부분일까요?

 

 

무라카미    문장입니다.

 

 

가와카미    문장?

 

 

무라카미    네, 문장.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가와카미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 p11_12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내 머리를 울렸다.

문장을 갈고닦는 행위로 내 자신과 대면하고 변화하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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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과 바닥, 그리고 이불위에 무작위로 쌓아놓은 책들을 보며

'정리해야되는데..'하면서 바로 그 옆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나.

'이래도 될까?' 하다가도 이내 게으름이 밀려와

날 책과 꼭 붙어있게 만들어준다.

언제였을까? 책을 바닥에 쌓아놓고 읽게 되었을때가. 기억이 잘 안난다.

이동진 작가처럼 1만 7천 여권의 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점점 책에게 내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그래도 어떡해 좋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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