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문학동네의 모니터링 미션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와카미 미에코의 날카로운 질문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해주어 재미있었다.
무라카미 호르헤 보르헤스라고 있죠. 그가 어느 날 시를 써서 친구 앞에서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 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가와카미 그때 작가가 두려워하는 건 아마 자기모방의 가능성이겠죠. 후퇴하지는 않았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 같은 대여섯 가지의 패턴을 되풀이하면서도 발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부분일까요?
무라카미 문장입니다.
가와카미 문장?
무라카미 네, 문장. 제게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가와카미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 p11_12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내 머리를 울렸다.
문장을 갈고닦는 행위로 내 자신과 대면하고 변화하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