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으로 산다 - 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이음 클래식 2
임홍태 지음 / 문헌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69 / 인문학. 동양철학] 주체적으로 산다. 임홍태. 문헌재 (2019)-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내게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은 참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이다. 암기 과목 외우듯 뜻도 모르고 단어만 달달달 외워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인 시간이었다. 교과목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간 중 단 1년, 일주일에 한두 시간 동안 시공간을 초월한 여러 학자의 사상을 훑어보려면 영어단어 외우듯 달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었던 당시 윤리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조금은 이해되지만, 정말 재미가 없었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동서양 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설명한 책들을 가끔 읽는데, 위인들로부터 통하는 큰 줄기의 방향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낀다. 지행합일, 격물치지, 심즉리의 양명학, 주자학을 반대하여 나타난 왕양명의 양명학 책을 읽게 되었다. 20년 전 그저 외웠던 그 실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주체적으로 산다’를 선택했다.

동양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 임홍태는 왕양명의 <전습록>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책을 집필하였는데,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가 얕은 독자로서 비슷한 단어들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어냈지만, 전체를 이해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부나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양명학의 핵심은 마음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싫어하던 윤리 과목,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제는 스스로 찾아본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학자들과 사상, 그 속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고 헤맬 때 선인들의 책에 기대어 숨 고르기를 하게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칠 때마다 버팀목 같은 책을 만난다. 4년 전 최진석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 3년 전 이진우의 니체(휴머니스트, 2015)가 그랬다. 그 책들을 읽으며 어렴풋이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좀 많이 지치고 무기력한 요즘의 내게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말고 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라는 이 책 덕분에 생각 가지치기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지만, 꾸역꾸역 해내고 싶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켜서 꾸역꾸역 외워야만 했던 양명학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지키고 싶은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런 의미에서 좋은 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반드시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야 하며, 덕을 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마음을 길러야 한다. (38)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믿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서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 하려고 하는’ 생각을 유지한다면 나의 생각이 ‘나는... 하려 한다’는 데서부터 점차 ‘나는... 해야 한다’ 또는 ‘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아서 대담하게 견지해나갈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잠재 능력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습니다. (33)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이길 수 있다. (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디자인 - 공유경제의 시대,미래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김영세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수여년 전 인간극장 같은 특별한 일반인(?)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김영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정해진 패턴처럼 생각하던 그 시절의 나와는 다른 창의적인 디자이너의 발상과 삶 같은 것이 신기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김영세의 디자인 경제 이론서인 '빅 디자인'은 제목과 저자 이름만으로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빅데이터를 사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프로세스가 빅 디자인이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빅데이터를 통해서 사람들의 니즈를 찾아내고, 그 니즈를 채울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빅 디자인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32)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민음사, 2003)에 등장하는 빅브라더 같은 존재에 두려움이나 거부감 같은 게 없는 사람이 있을까. 비슷한 맥락으로 빅데이터도 별로다. 정보를 공유하느냐 독점하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요즘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는 빅데이터의 산물이 자리 잡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하루 만보를 걷고 하루 백원을 벌어 간식 사 먹는 '캐시 워크'가 그렇고, 웹서핑 중 내 시선을 자극하는 광고들,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여론조사 스팸전화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하지만, 나 자신의 생활 패턴이 데이터로 반영되어 분석되는 것이 별로다. 어떤 방식으로 빅데이터가 빅 디자인으로 바뀌게 되는지 궁금했고, 이 책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느낌은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다.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저자의 경험담과 유명한 기업가의 사례, 훌륭한 사람들의 명언 같은 것은 따로 발췌해서 다시 챙겨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빅데이터, 디자인적 사고를 나의 업무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디자이너만 디자인적 사고를 하는 게 아니다.'라는 의미로 빅 디자인을 이해했는데, 쳇바퀴 돌듯 매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직종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글귀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글귀는 자기 계발서-이미 알고 있지만, 행동하기 쉽지 않은 훌륭한 글귀들-에서도 종종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사고방식이나 그릇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좋은 자극이 되는 책임은 분명한데, 지금의 내겐 알듯 모를 듯 멀게 느껴진다. 기대가 컸나 보다.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다양한 사례와 디자인적 사고를 엿볼 수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디자인 교양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레바퀴 아래서 - 일러스트와 헤세의 그림이 수록된 호화양장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은경 옮김 /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66 / 소설. 독일 고전]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이은경 옮김. 아이템 비즈. (2019)

헤르만 헤세의 저서 ‘데미안’을 두세 번 정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절망 독서’, ‘시 읽는 엄마’ 등의 몇몇 책에서 헤세의 시를 인용한 구절을 만난 적이 있지만, 고전은 어려울 것 같은 부담감으로 작가의 저서 한 권 전부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게 되었다.

1892년 신학교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처벌을 받고 우울증을 앓는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 독일 교육체계를 배경으로 하여 학교 비판의 맥락에서 쓰인 교육소설이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 청소년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불안한 청소년기 학생들의 마음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수레바퀴 아래~’가 나온 구절을 3번 정도 읽었다. 수레바퀴가 어떤 의미인지 강렬하게 와 닿진 않지만, 돌아가는 바퀴 아래로 깔리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7장으로 나뉜 각 장의 구분이 적절하다는 점이다. 읽기 학습하기에 딱 적당한 내용으로 구분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장은 배경 설명과 신학교 시험을 치르고 온 주인공, 2장은 고향에서 즐거운 한때, 3장은 수도원 생활, 4장은 위기, 5장은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 6장은 이성에 눈뜬 한스, 7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장마다 세월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헤세(작가)의 시선인지, 한스(주인공)의 관심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묘사가 특히 좋았다. 헤세의 글에서 느껴지듯 자연과 유유자적을 사랑하던 주인공 한스 기벤트는 정체성을 찾기 이전 주위 어른들의 기대와 강압에 눌려 아름다운 꽃을 미처 피우지 못하고 꺾여버렸지만,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문학가로 살아남아 다행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영혼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육체를 썩히는 게 더 낫다. 너는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이야. 목사가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아마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너를 위해 기도 하마. (77)

주인공 한스를 향한 어른들의 강요와 억압적 시선은 21세기를 사는 성인인 내가 읽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전의 재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읽기 어렵지 않고 적당한 무게를 지닌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 불평등의 한국 사회, 진단과 해법
백승진 지음 / 다할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62 / 사화과학. 한국사회]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백승진. 다할미디어. (2019)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의 저자 백승진은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의 빈곤, 불평등 해결 등 정치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는 유엔 소속 정치경제학자, 한국인으로서는 14번째로 유엔 국별경쟁시험 재정 분야에 합격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주요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저자가 바라본 사회 정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안한 말투로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게 된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데 지식을 주는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이룸북, 2017)’이 있다. 최근 대통령의 성향이나 유형으로 심리를 알아보는 ‘권력자의 심리를 묻다.(지식의 숲, 2019)’를 읽고 있는데, 배경지식이 오버랩되면서 읽기의 재미가 더해졌다.

편안하게 잘 쓰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게 좋다. 당연한 소리지만, 읽기 쉬운 좋은 글을 읽으면 눈도 편하고 머리도 편안해진다. 얼마 전 세계사 같은 배경지식 부족으로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로크미디어, 2019)’를 힘겹게 읽었던 경험이 있다. 학부에서 인문사회계열을 졸업한 평범한 성인이 읽기엔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하던데 세계사, 정치, 경제를 잘 모르는 내겐 정말 어려웠다. 그 책을 읽으며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어떤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는 배경지식 없이도 아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더욱더 좋았다. 글을 쉽고 편안하게 잘 쓰는 저자의 솜씨 덕분인지 일간지 칼럼에 소개된 글이어서인지 더 매끄럽고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사는 듯한 저자의 생각 넓이 덕분에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다. 흘러가는 대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비판적 시각으로 살아가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여운이 많이 남는 책 한 권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자의 심리를 묻다 - 우리가 몰랐던 권력자의 모든 것
최진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63 / 사회과학. 정치 칼럼] 권력자의 심리를 묻다. 최진. 지식의 숲. (2019)

8명의 대통령을 직접 겪고 3대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 최진은 권력자의 유형과 심리를 연구한 ‘권력자의 심리를 묻다(2019, 지식의 숲)’라는 신간을 발표했다. (책 소개 참고) 음식 취향, 트라우마, 유머, 혈액형, 형제 관계, 부모의 영향력, 신앙, 총 7가지 관점으로 대통령의 심리를 분석한다.

여러 대통령의 일화를 통해 대통령 역할과 책임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대통령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남아 대통령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특히 ‘대통령의 유머’ 부분에서 미국 백악관에는 대통령을 위한 개그 작가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그만한 유머를 발휘할 상황과 여건이 마련되지 않음이 느껴졌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 건지, 영웅이어서 난세를 극복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대통령이 겪은 위기나 트라우마는 끔찍했고, 견뎌낸 것 자체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좋아하지 않던 전직 대통령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표본 대상이 미국과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으로 국한되어 그 수가 적기에 이 조사의 결과를 통계로 활용할 수 있나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트라우마나 위기 극복 능력, 부모의 영향, 형제 관계 등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도 빗대어 알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