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방인>의 뫼르소

 

 

 

 독서모임 2월 토론선정도서이다.

 투표를 통해서 최다득표를 받은 작품으로 민음사에서 나온 이방인 한권으로 하려다

 이웃 <마르케스 찾기>님의 조언을 얻어 2권을 선정했다.(감사해요^^)

 민음사판 이방인은 알베르까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화영 교수님의 번역판이고,

 새움 출판사는 김화영 교수님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이렇다 할 약력도 없는 이정서님이다.

 처음에 책을 사고 나서 독특했던 것이 있다.

 민음사판은 작품이 150여페이지, 작품해설 50여페이지, 작가연보 50여페이지로 이루어져

 있고, 새움출판사는 작품이 150여페이지, 역자노트가 150여페이지(원문과 대조하여 밑줄을  긋고, 그 간의 출판된 책들의 번역 오류를 지적한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유명한 첫구절만 잠시 비교해보도록 할까.

 

  <민음사의 김화영>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

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새움의 이정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

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이정서님은 이 유명한 첫 구절부터 역자노트에서 꼼꼼히 지적한다.

 

"일단 '그것만으로써는'이라는 말은 틀린 어법이다.'으로서'는 지위, 신분, 자격을 나타내는 격조사다. 이것이 어떤 것의 수단이나 도구를 나타낼 때는 '으로써'가 된다. 굳이 이렇게 쓰려면 '만으로서는'이라고 써야 하겠지만, 그냥 '그것만으로는'이 맞는 표기다. 이 문장은 번역도 잘못됐다. 앞에 전보 내용이 다 나와 있는데, 그것만으로 '뜻'이 없다니? 모친이 돌아가셨고, 내일 장례식이 있다는 '뜻'이 거기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뜻이 없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셨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앞의 '명일'도 우습다. 뒤를 '근조'라고 옮기고 한자를병기할 양이면 여기도 한자를 써주어야 했다. 한자어 '명일'은 '내일'말고도 여러 뜻이 있으니까. 굳이 그럴 양이 아니면 이건 우리말 번역이니 그냥 '내일'이 있지 않은가.

이제 번역 문제로 돌아오면, 보다시피 위 원문에 밑줄 친 je ne sais pas(나도 모르겠다)가 아예 빠져있다. 앞에 'Aujourd'hui(오늘) 다음의 쉼표도 빼버렸다. 작가의 문체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이다 소설에서 문체는 정말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다'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부다. 문체가 없는 작가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스토리작가인 것이다. 번역문이 100퍼센트 원문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역자는 저자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전소설 같은 경우에는 더군다나.-168~169쪽

 

이런 식으로 김화영 교수님의 도그마에 정면으로 승부한다. 그러기에 민음사판을 먼저 읽었다.

이정서님이 어떤 분이고 역자노트에 담겨 있는 많은 분량의 지적이 어떤 것인지 사뭇 기대되는 밤이다. 

 

2. <인간실격>의 '저'

 

연인과 생애 다섯번 째 자살기도에서 드디어 성공, 서른 아홉살의 나이로 사망한 다자의 오자무의 역작이다.

흔히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가로 불린다.

세편의 수기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편까지만 읽었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사나이의 유년 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중략...)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괴상한 소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두 번째 사진 속의 얼굴. 이건 또 깜짝 놀랄 만큼 변해 있다. 교복차림이다.(...중략...)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상한 미남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다. 이제는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다.(..중략..)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묘한 얼굴의 남자를 역시 본적이 한번도 없다."9~12쪽

 

서문에서 본 사진의 인상들은 세편의 수기로 완성된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내 인생의 책이 될 듯한 예감이 든다.

늘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던, 그러나 쉽게 표출하지 않았던 부분을 투영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뿐만은 아닐테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실격의 주인공처럼 인간관계의 고통과 괴로움에 정면 승부하지 않는 '익살'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가 사랑스럽다.

 

3. <1984>의 윈스턴 스미스

 

 

 

  

 

 

 

 

 

 

 

 

 

 

어쩌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먼저 읽어버렸다.

과연 하루키의 작품과 어떤 부분이 닮아 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흥분된다.

이 책은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우린 또 다시 거대정보화 시스템에서 통제받는 무력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전체주의라는 말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고전은 이렇게 늘 현재진행형이다.

 

조금씩 색깔이 다른 3권의 고전을 함께 포스팅한 이유는 

이방인의 뫼르소나 인간실격의 주인공, 1984의 윈스턴스미스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들은 특이한 인간이 아니다. 주인공들이 가진 성격들은 다 하나같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자유'이자 고유한 '정체성'의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일부분을 끄집어 내어 조금만 별나거나 다르게 행동하면 4차원이니, 성격이 이상하다느니, 히키코모리라 친구가 없다는 둥 흠집을 내고 싶어 안달한다.  그래야만 내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시대가 많이 변했다. 개인이 세상인 시대이다. 과거에 특이함으로 매도되고 규정지어졌던 개인의 개성들은 이제 지극히 평범해졌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말이다.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 살면서 '평범'하다는 평가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치 않는가? 이젠 누군가를 평가할 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평범'이라는 용어는 시대의 변화속에 격을 높여야 할때이다. 문학속에서 '평범한' 그들이 주인공을 꿰차고 있는 위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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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19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카뮈 「이방인」번역으로 알라딘에서 한동안 논란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논란을 뒤로 하시고 선택하신 작품으로 즐거운 독서시간 가지세요.^^:

북프리쿠키 2016-12-19 10:14   좋아요 1 | URL
이제서야 읽게 되네요 독서 경력(?)이 짧다보니^^;
이웃님들 덕분에 좋은 작품에 눈을 뜨고 책을 고르는 데에도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번역탓을 하기엔 아직 부족한지라..민음사판을 위주로 읽고 있습니다만
이정서님의 이방인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특별하네요
겨울호랑이님의 포스팅도 늘 저에겐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6-12-19 11:50   좋아요 1 | URL
^^: 저도 아직 못읽었습니다. 북프리쿠키님의 좋은 리뷰 기다려봅니다. 행복한 오후 되세요^^:

2016-12-19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12-19 10:2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좋게 봐주셔서요.
고전문학에 대한 깊이가 워낙 없어서 꾸준히 볼려고 합니다.
디테일한 걸 갖고 이야기한다는 게 장,단점이 있지만 문장부호나 조사의 미묘한 차이에서도
문학의 풍미는 꽤 달라진다고 보기에 좋은 기회인 듯 싶어요.
이방인에서의 이러한 시도가 다른 문학을 읽을때에도 행간에서 잠시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수 있는
사색의 깊이를 가져다 주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양철나무꾼 2016-12-19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화영 님의 번역과 글들을 여러 권 만났었는데,
명성에 비해 성과물은 초라해서 별로 안 좋아해요.
그렇다고 이정서의 그것이 ‘정답이다‘라고는 못하겠지만, 노력과 정성은 높이 살만하죠.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 살면서 ‘평범‘하다는 평가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치 않는가? 이젠 누군가를 평가할 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평범‘이라는 용어는 시대의 변화속에 격을 높여야 할때이다. 문학속에서 ‘평범한‘ 그들이 주인공을 꿰차고 있는 위상처럼 말이다.‘

이 구절 좋습니다, 새겨두려구요~^^

북프리쿠키 2016-12-19 22:34   좋아요 0 | URL
“번역은 내 생각만이 옳은 게 아니라 세상에는 구조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카미유 클로델의 오빠인 시인 폴 클로델이 ‘인식은 비교다’라고 했어요. 무엇을 안다는 건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아는 것이죠.”

작년에 40년간 이어진 번역의 여정을 담은 책 <김화영의 번역수첩>(문학동네)을 출간하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정서님의 번역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제 글중 좋아해 주시는 구절도 있으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구요.ㅎㅎㅎ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16-12-19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게 무에 그렇게 중요할까 그냥 대충 의미 파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번역본에 대해선 대충 이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솔직히 글을 쓰는 입장에선 민감해질 수 밖에 없더군요.
번역도 제2의 창작이라잖아요.ㅋ
저는 처음에 이정서가 너무 나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전 그의 공과를 떠나서 이런 문제적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번역자는 작품당 한 사람이 유일했거든요.
그런데 너도 나도 같은 작품을 번역하겠다고 나서니 번역 수준 높아지겠구나 싶더군요.
그럼 좋은 일 아닌가요?ㅎ

생각해 보니 저도 저 책을 사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ㅠ
대신 저는 까뮈에게서 온 편지 읽었는데 나름 읽어 볼만 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12-19 22:49   좋아요 1 | URL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다들 읽으셨을텐데...
제가 억만년전의 이슈를 두고 뒷북을 치게 되어서 좀 부끄럽습니다.ㅎ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한동안 논란이 되었고, 독자들끼리 감정적인 싸움까지도 벌어졌었네요
휴~ 역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ㅠ.ㅠ 짧은 안목으로 포스팅까지..
이러저러한 사정을 다 아시고도 텔라님께서 입장을 분명하게 해주시니..고맙구요.
깊이 공감가는 의견입니다.
전쟁터에서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도 혼자서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순 없듯이
어느 분야든간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존의 체계를 뒤흔들긴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정서라는 분은 그런 면에서 호기심이 생깁니다.

<까뮈에게서 온 편지> 추천도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