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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지금 여기의 사회학 이야기
요시이 히로아키 지음, 정문주 옮김 / 오아시스 / 2018년 5월
평점 :
일본인 저자의 자기계발서는 믿고 거르는 독자분들이 많은데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인문/사회 쪽 서적은 잘 고르면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초보자에게 알맞은 개론서 및 입문서 등이 매우 독자친화적이랄까, 읽기 편하고 친절하다.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사회학 개론서 혹은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깊이를 찾는 독자는 그 수준에 맞는 책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처럼 관심은 있되 대번에 덤비기는 겁나는 초보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거나 단편적이지 않다.
일단 초반부에서 사회학의 기본개념과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정립에 기여한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주요 주장을 알려 준다. 그러고 나서 타인에 대한 인식과 타인과의 관계성,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스마트폰이 변화시킨 삶에 대한 비판, '~답게'라는 말의 폭력성, 인간이 아닌 타자로서의 환경 문제, '정치적'이라는 말의 의미 등을 다룬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외부 자극에 대한 자신의 내면의 고찰이 심리학이라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학인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삶을 영위해가는 일상생활이 둘도 없이 소중하며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고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방인의 눈'을 가지면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일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바로 엊그제 이방인의 눈을 경험했다. 자라오면서 종로 일대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며, 인사동 거리, 광화문 광장 등 첫 번째, 두 번째 회사생활도 그 근처였고 퇴근 후 혼자서 바람 맞으며 걷곤 했던 거리이다보니 내겐 각별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그런데 종로 쪽으로 다닐 일도 한동안 없었고 서울 근교로 이사까지 가니 더욱이 갈 일이 없었다. 오랜만의 광화문 거리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일단 예전의 후줄근한 낮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미래도시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좀 무서울 정도였다. 지나가며 스치는 향수 및 온갖 체취 등에 코를 연신 킁킁거리는 나의 모습은 이방인 자체였다. 외국에 가서 이방인을 경험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익숙한 거리, 나의 일부였던 거리에서, 그것도 말도 통하는 곳에서의 이방인 체험은 참으로 신선했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자다움, 남자다움 등 '~다움'이 우리 삶을 규정하고, 영역을 제한하는지 더 나아가서는 암묵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남편다움, 아내다움, 엄마다움, 아빠다움, 자녀다움, 학생다움 등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규율에 순종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굴레를 씌우기도 한다.
저자는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인간관계의 질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시간,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회과학자다운 통계적, 과학적 근거에 의해 주장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바일 메신저와 빨래터 수다를 비교하며 대면하는지 여부, 같은 공간에 있는지 여부 등을 들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모바일 매체의 속도가 빠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는 LTE같은 기술적인 속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신중하게 교류 및 소통을 한다. 빨래터 수다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고 이사라도 가면 종료될 수밖에 없지만 모바일 매체는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SNS의 지인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지만 SNS가 있으면 원하는 지인과 계속적으로 보다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거리와 시간, 속도는 모바일 매체가 있기에 더욱 가질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장애인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장애인이 불편한 생활을 하는 건 당사자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잘못된 것이므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며 (노멀라이제이션) 소외되어 주변으로 떨어진 기지 않도록 주류가 되어아한다고 (메인 스트리밍) 하는 시각이다.
마찬가지로 환경을 나와 관계가 있는 상대방으로 인식한다면 핵 에너지에는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핵폭탄의 위력에는 두려워 떨면서도 원자력은 위험과 공해 없는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라는 신화가 2011년 동북대지진으로 깨졌다.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환경을 인간의 상대편으로 생각하며 환경에 나쁜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 그게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어려운 학문적 지식을 설파하는 게 아닌 삶이라는 보물이 담긴 일상이라는 보물 상자를 어떻게 가꾸어 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해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