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나지윤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와카마쓰 에이스케 저자의 다른 책 《언어의 나침반 (미번역)》을 읽으며 깊이 있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울림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작가 책이 국내에는 번역된 게 없다니 좀 놀랐다.

그런데 저자의 다른 책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이 나와서 정말 반가웠다. 여전히 고급스럽고 따스한 언어, 영혼에 울림을 준다.

이 책은 슬픔을 겪는 사람들을 향한 열세 통의 편지를 담고 있다. 저자 자신이 11년간 암으로 투병해온 아내를 잃어서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어 진솔하게 쓴 글이며 오래된 고전 같은 유명한 문학작품에서부터 한센병 환자가 자비출판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20대 초반에 마음의 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고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 봤는데 그래서인지 공감과 위로에 탁월한 것 같다.

슬픔에 빠지는 경험도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기쁨만큼이나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슬픔을 느낄 때 당신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세상과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슬픔을 느낄 때 바로 옆에 있는 내면의 자신과 조우하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과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난 슬픔이 싫은데, 슬픔에 빠지는 상태 자체를 이상 사태, 평범하지 않고 비일상적이며 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상황이라고 자동적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슬프고 싶어 슬픈 것이 아니며 소중한 사람 혹은 어떤 존재를 잃는 것은 당연한 삶의 과정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나이를 먹고 성숙해진다는 게 그런 것 같다. 지긋이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줄 수 있는 것. 다 안다는 듯이 훈계하지 않고 섣불리 조언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

그녀가 시를 썼듯 당신도 무언가를 써보기 바랍니다. 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듯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당신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모든 대상을 향해 진심을 전해보세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요.

저자는 《언어의 나침반 (미번역)》에서도 그랬지만 누차 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구원해준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책들은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지만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언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한다. 어떤 문인은 섬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여중/여고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수백 통의 편지가 그래서 내게 구원이 되었나 보다. 받은 편지는 물론이고 독서실 구석에서 공부하다 말고 쓴 엽서와 편지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나를 지탱해준 지팡이이었던 것 같다. 불현듯 20년도 훨씬 전의 내가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1년 전에 20년 가까이 동행해 온 반려견이 세상을 떠날 즈음, 모든 일을 내려놓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시고 세상을 떠나자 애도의 편지를 쓰신 한 소중한 이웃님이 생각난다. 그때로부터 1년이 흘렀다. 슬픔과 함께 동행하시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구원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사소하고 소소한 일이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늘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만요.

여느때처럼 가방을 메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10대의 어느날이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차 안의 두세 살 됐을까 싶은 아기가 창밖의 날 보며 활짝 웃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일본에서 늘 지나다니는 길의 버스 정류장에서 길을 물으신 할머니께 알려드렸더니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어주셨다.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파편 하나하나가 살아가는 힘을 준다.

이토록 따스한 언어, 깊은 위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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