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창의력 여행 - 일본에서 마주친 기발하고 비범한 창의력 이야기
김광희 지음 / 넥서스BIZ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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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련 책은 호기심에서 한번 훑어보곤 한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의 속사정과 배경지식을 새로 깨닫기도 하고, 관심없이 지나치던 것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한다.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지 않고 일본에 가본 지도 8년 이상이 지났으니 나 나름의 업데이트 및 보수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사회, 커뮤니티는 살아 움직이고 생장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새로 생겨나고 변화하고 쇠퇴한다. 언어를 다룰 때 그 사회에 대한 지식은 윤활유가 된다. 비록 가끔씩 하는 프리랜서 일이지만 늘 공부를 통해 지식을 구축해 내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얼핏 얼핏 듣고 보던 일본에 대해 분석적인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48명의 소녀들의 아이돌 그룹인 AKB48은 90년대 유행했던 모닝구 무스메의 대를 잇는 차세대 그룹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주 철저한 마케팅 전략으로 레코드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리고 삼촌팬 (혹은 오타쿠)들을 몰고다니는 인적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디를 사면 악수를 할 수 있는 '악수권'과 인기 멤버를 선출할 수 있는 '총선거권'이 동봉되어 있어 한 사람이 수십 장을 사기도 한다고 한다. 참신하긴 하지만 팬서비스 차원이 아닌 돈으로 환산되는 악수권, 총선거권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 주고 샀는데 응하지 않느냐는 범죄성 있는 팬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일본의 어떤 부분은 무척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무섭고 이질감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이런 부분이다.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데 사람을 함정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어떤 치밀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공감되는 꼭지는 많은 블로거들이 포스팅하는 일본 편의점의 진화이다. 우리나라 편의점도 많이 특색을 갖게 되어 PB 상품을 비교하거나 도시락, 아이스크림 등을 올리는 포스팅 등이 많이 늘었는데 일본 편의점 디저트 등 포스팅은 압도적인 것 같다. 이제는 단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거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구매약자인 고령자들, 재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있어 편의점은 단지 물건 사는 곳 이상으로 생존권과 결부된 곳이 되고 있다. 예전에 읽은 《편의점 난민 (미번역)》에서도 보다 심층적으로 데이타와 함께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책에서는 부제를 '소매점에서 생명줄로'라고 달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큰 시사점을 주는 것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주오 택시의 임대 거절이었다. 낯선 외국에서 아무래도 택시를 타고 움직이게 되는데 지역에서 거대 택시회사인 주오 택시는 잠시 한철 있다 떠날 관광객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계속 함께해온 지역 주민 특히, 병원에 가야하는 고령자나 장애인 등의 수송을 위해 엄청난 이익이 굴러 들어올 기회를 포기했다. 다른 택시회사들이 반사이익을 봤지만 올림픽이 끝난 이후 주오 택시의 이익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우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어떠했나? 숙박시설이나 음식점들이 한철 살고 떠날 메뚜기처럼 바가지 세례에 국민의 빈축을 사고 말았던 것과 극명히 대조된다.

한 챕터 한 챕터가 하나의 문화 분석 리포트가 될 정도로 예리하고 일단은 글을 시원시원하게 막힘없이 잘 쓰는 달필 작가님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상을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닌 학구적인 관심과 관찰력, 분석력을 지닌 분이며 착안점이나 발상, 시사점 도출도 무척 뛰어난 것 같다.

옥의 티가 될지 댐을 터뜨려버리는 작은 구멍이 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신기한 일본 풍경으로 저자에겐 자전거 앞뒤로 애들을 싣고 다니는 '가냘픈' 일본여성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자전거가 얼마나 에너지 친화적인 운송수단임을 강조하며 한국 엄마들은 의기양양하게 애들을 자동차로 옮겨준다고 비꼬았다.

일본에서는 자전거가 단지 레저의 수단이 아닌 생활 이동수단으로서 큰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내게도 신기했다. 그러나 각 나라의 관습과 생활의 역사가 있는 건데 그런 걸로 한국 여자들을 디스하다니, 시각의 편협함과 왜곡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일단 가냘프지 않아서 미안하다. 운전도 못하고, 자전거도 서투른 나는 장 보는 것도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도보와 버스, 전철로 땀 뻘뻘 흘리며 하고 다니지만 차로 생활의 편의를 누리는 여성들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보험료를 거의 세금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올리면 보험사가 죽어라 욕먹는다. 이익 구조상 자동차보험으로는 거의 이익이 나지 않는다. 일본이나 미국은 보험사는 엄연히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보험료가 3백만 원 이 넘기도 한다. 보험료가 비싸서, 혹은 대출로 단독주택을 마련하고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서 차를 굴릴 수 없어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안전 면에서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서 아슬아슬 달리며 경적 울리며 지나가는 그네들의 모습이 좋지도 않았다. 게다가 앞뒤로 애들을 앉혀서 타고 가는 건 보는 사람도 위태롭게 느껴지는데 그렇게 하는 게 좋은 건가? 안쓰러운 거 아닌가?

또한, 언제 어디서 한국 엄마들이 아이들을 의기양양하게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 주는 걸 보셨나 궁금하다. 웬만한 유치원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초등학교는 도보권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한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스스로 도보나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학원과 학원 사이를 이동할 때 자동차로 옮겨주는 게 그리 잘못인가?

그리고 일본 전통 상점가를 살리기 위해 걸어놓은 여자 가슴골 사진과 비키니 하의를 입은 여자 하체 포스터와 함께 '좋은 살 있다' 이런 문구를 창의적이라고 실어 놓으셨던데 사회 전체적인 외설적이고 저급하며 여성에 대한 인식이 미개인 수준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창의인가? 여성의 신체를 빗대어 노골적인 사진과 함께 올려놓는 그 상점가의 수준이란... 그저 혀를 차고 넘어갈 일인지...

위에 지적한 몇 챕터를 빼주셨다면 나의 인생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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