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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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4인 세대의 '지속가능한 최소생활비'가 얼마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결핍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과잉과 낭비가 없는 수준, 그래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가계부 같은 거 쓰지 않는 게으른 주부라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한번 실험해볼까,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나면서 깊은 통찰과 힌트를 얻었다. 아니 힌트라기보다 평소 내가 품고 살아온 생각과 관점이 '틀리지 않았어'라는 인증을 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저자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에 읽으면서 '비동의'의 비명이 내면에서 울려온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미로" 나의 머릿속을 들쑤셔 놓은, 마구 휘저어 생각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자극적인 책이었다.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 자족하는 삶

저자는 헨리 소로우의 <월든>에 많은 감화를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을 다 깎아내어 자신의 골수, 마지막에 남는 단 하나의 진실을 직면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카스트 제도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제도 있다면, 신라 시대 스타일로 풀어본다면 저자는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성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저자 부부가 시애틀 인근의 숲속으로 들어가 이동식 조립 주택에서 실험적인 삶을 살아간다. 벌써 7년이니 그 삶의 진정성은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는다.

시애틀의 어느 인근인지 너무 궁금하여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고 싶었으나, 알 수 없었다. 아쉽다. 시애틀에 고작 반년 있으면서 이민을 생각할 정도로 그곳은 매력있는 곳이었다. 적당한 중형 규모의 도시이면서 한 도시에 하나 있기도 쉽지 않은 글로벌 기업들이 몇 곳이나 자리잡고 있어서 도시 전체가 젊고 활력이 넘쳤다. 시애틀도 좋았지만, 인근 신도시 벨뷰는 공교육이 좋기로 유명해서 우리나라 강남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현금다발을 들고 부동산 거래를 하는 바람에 10년간 부동산 호황을 누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인근 새머미시 같은 곳은 진짜 목가적인 미국 시골 느낌도 남아 있었다. 에메랄드 시티라고 불리는 풍부한 녹음의 도시 시애틀에서 산맥 하나 넘으면 완전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 CG처럼 펼쳐지는 희한한 지형이 펼쳐졌고, 그곳에서는 과수원 같은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아서 워싱턴 체리, 워싱턴 사과 등이 유명한 것 같다.

어쨌든 저자가 한국사회의 성골, 초엘리트의 삶을 뒤로하고 가족과 함께 외진 곳에서 블랙베리를 따고, 텃밭을 가꾸며, 통밀을 직접 갈아 통밀빵을 만들고, 물건을 사는 것이 궁극에는 기후 변화로 이어지므로 중고 물품을 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체험을 통해 삶을 달관하고 즐기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토록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복잡하다. 나는 이 복잡함 그 자체를 삶의 경이로움이자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심고 따 먹고, 도시의 편리가 제공해주는 삶의 여유와 시간과 몸의 편안함도 적절히 골고루 다 즐기기로 했다. (64-65쪽)

이전에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혹은 이전에 목을 매었던 가치들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니, 참 사람의 마음이란 기묘한 것이다. 저자에게 나타난 새로운 가치들이 이 책 안에 향연처럼 펼쳐진다.

전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새로운 가치가 되어서 나타난다. (71쪽)

◎ 자연체로 살기

이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 역시 바구니를 짠 마을 사람 같은 생각이다.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는 곳으로 판단하는 것도, 변화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온전히 나만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해 살기로 했다면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세상에 무엇을 해줄 필요도, 감사하거나 보답할 이유도 없다. 그런 부담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공평해졌으니 말이다. (91-92쪽)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던 부분이다. 블로그 세상을 부유하다 보면 유행처럼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 너무나 좋은 의도이고, 이타적이며,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은 것이 그 반대보다는 낫다는 생각은 하지만, 남한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힐링을 주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나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 상황도 있으므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힐링을 주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상대는 전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녀와의 관계, 자녀 교육,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영향을 주고 가르치고,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아이에게도 배우고 젊음의 가능성에 나 자신을 열어놓기로 마음이 바뀌었다.

하지만 자식을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키울 수가 있을까? 그 해답 역시 소로의 같은 구절에서 찾았다. 젊음에게 배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무슨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젊음 자체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 앞에 나 자신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뜻이다. (107쪽)

요즘 아이들이 줄임말을 쓰는 것이 정말 소통에 지장이 있을 만큼 거슬리기도 하고 나와 합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말을 당연히 뱉는 초4 큰애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는데, 줄여서 말해보니 그것 참, 언어의 경제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공적인 자리나 글에서 쓰는 건 절대 반대다.)

엉뜨 ~ 승용차에서 시트에 열선을 깔아 추운 겨울에 엉덩이를 뜨겁게 하는 것.

엉차 ~ 엉뜨의 반대말. 엉덩이를 차갑게 하는 것.

음쓰 ~ 음식물 쓰레기.

등등 말도 못하게 자꾸 만들어내고 자기에게는 이게 상식인 것처럼 사용하니 소통이 안 된다. 그런데 배우고 아이와의 소통에서는 써보니 뭐 괜찮다. "엄마, 음쓰 버리고 올게~~"라고 하면 얼마나 편리한가? 이렇게 애써 젊음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따라해 보기도 한다.

◎ 인생은 선택

돈과 시간 사용에 사람의 가치관이 나타난다.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 시간을 쓰는가? 그것이 결국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막연히 '돈 벌기 힘들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는 대가로 돈을 적게 벌거나, 돈을 쓰는 사람에게 맞춰 많이 벌고자 하거나,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결정하는 순간 이미 능동의 세계로 넘어간다. (127쪽)

인생의 수많은 결정 중에서 나도 기억에 남았고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선택과 결정은 초극저체중 미숙아로 태어난 큰애를 돌보기 위해 커리어, 연봉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는 삶을 택했던 34세의 결정이었다. 나름대로는 큰 결정이었다.

그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친해졌던 쌍둥이의 엄마, 아빠가 있었는데, 그쪽은 쌍둥이여서 금전적 필요도 있었고 친정 어머님이 아이들을 맡아주기로 해서였는지 계속 일을 하기로 했었다. 각자의 선택이니 다 좋은데, 꼭 내게 말했다. 아이와 함께 있어줄 수 있어서 언니가 너무 부럽다고...

그때마다 난 기분이 묘했다. 그 부부와 우리 부부는 학력, 소득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냥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목동에 살았던 그들은 서울 가장 변두리의 우리 집값보다 전세값이 비쌌다. 나는 그냥 금전을 포기하고 아이와의 시간을 택했을 뿐이지 부러움받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부럽다니, 그럼, 당신도 '선택'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가끔 우리 가족이 정기적 소득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때마다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 "시골에 있는 이동식 날림 주택으로 이사하면 당장 저희처럼 살 수 있어요. 더운 물도 나오고 비도 안 새고 따뜻해요. 애들도 시골 학교를 보내면 학원비 걱정은 하고 싶어도 못 해요. 학원이 없어요." (132쪽)

저자에게도 부럽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응 문구를 정해놨겠지 싶다. 부럽다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사건들 앞에서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 내일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아무리 본인들의 선택이라지만 정기적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마냥 즐기기만 할까? 그 선택이 초래하는 기쁨과 슬픔, 불안과 설렘 모두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집 또한 부동산 가치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공간에서의 휴식,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같은 가치로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148쪽)

아이들을 조금은 한적한 분위기에서 키우고 싶어 교외로 이사 나왔는데, 그때가 하필 서울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던 때다. 금전 감각이 없지 않지만, 물건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고, 있는 것으로 족하게 사는 편인 나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나와 성격이 상극에 가까운 우리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팔고 온 집값이 얼마나 오르고 있는지 실시간 중계를 해주었다. 정말 소외받던 지역이었는데, 우리가 뜨자마자 억 단위로 오르는 그 모습이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늘 그래왔듯이, "너의 선택은 언제나 틀리다"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니체가 주장한 초인 또한 타인들이 만들어놓은 가치 체계 자체를 따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189쪽)

그래도 나는 나대로 나답게 살아간다. 나답게 살아가며 나다운 삶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내 가족과 맛있는 거 해 먹으며 그냥 살아간다. 보란 듯이 '내가 틀리지 않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참 헛된 집착이며 얽매이는 것 자체가 노예가 되는 것이니 흘려보낸다.

말 한마디, 일상의 행동 하나도 나의 생각과 나의 선택의 표현이다. 이렇게 표현된 것은 글이든 그림이든 음식이든 세상 전체를 바꾸는 의미가 된다. (205쪽)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진짜로 듣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을 멈춰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시간,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삶에 이어져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해서 마치 영원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처럼 나의 조급한 시간표를 온전히 잊을 때 비로소 타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220쪽)

아이들이 곁에서 조잘거려 주는 것도 한때라는 말을 되새기며 이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말을 경청해야겠다. 이 시간이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것은 자본주의와는 동떨어진 듯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은 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수혜를 누리기에 그 또한 가능한 삶의 방식이며 얼굴을 모르는 생산자들과 연대가 되어 있다는 의미하는 것 같다.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 삶의 기록으로 한국의 독자인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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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이창봉 지음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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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관용표현을 저자의 미국 생활 경험 및 학습, 티칭 경험들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풀어내어 아주 재미있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황 속에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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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이창봉 지음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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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어의 은유 표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은유란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구체적이고 익숙한 표현으로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목표 영역을 비유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뒷표지)

그런데, 한국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말하면 이디엄 책이다. 이디엄인데, 그 이디엄이 결국은 미국 문화(이 책에서는 주로 영국식 표현은 다루지 않는다)라는 컨텍스트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저자의 미국 생활 경험 및 학습, 티칭 경험들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풀어내어 아주 재미있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황 속에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이다.

1부 미국 문화의 뿌리와 정체성

제1장 그리스도교 신앙

제2장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제3장 미국의 폭력성과 공격성

제4장 자동차와 자립정신

2부 미국의 일상 문화

제5장 미국의 의복 문화와 패션

제6장 미국의 음식 문화

제7장 미국의 음주 문화

제8장 미국의 주거 문화

3부 미국 사회의 특성

제9장 미국의 교통과 여행

제10장 미국의 법치주의와 범죄 문제

예를 들어, 전화위복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디엄으로 blessing in disguise라는 표현이 있는데, 말 그대로 (불행으로) 가장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실직을 했는데, 실직을 계기로 창업하여 엄청난 대박을 쳤다면 그 실직은 blessing in disguise가 된다. 이 표현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개신교(청교도)들의 기독교 신앙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Come to think of it, losing that job was really a blessing in disguise for me. I met a wonderful boss like you at a new job and then we were able to establish a promising business venture together.

또 음식을 활용한 이디엄으로써 wake up and smell the coffee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심으로써 카페인을 혈관에 인젝션하여 정신을 깨듯이 그 의미가 발전하여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Laura.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The world is a very cruel place. Stop acting like a teenager.

(로라. 꿈에서 깨어나서 정신 좀 차려. 세상은 매우 냉정한 곳이야. 10대처럼 구는 건 그만하라고.)

또, not one's cup of tea는 정말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인데, "취향이 아니다, 즐기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Thank you for the tickets, but going to a concert is not my cup of tea.

(표 고마워요. 하지만 콘서트 가는 건 제가 별로 즐기질 않아서요.)

또, 웃기는 것이 호떡집 불났다는 의미로 쓸 수 있는 표현도 있다. sell like hotcakes이다.

The new SUV model we have just launched is now selling like hotcakes.

(우리가 막 출시한 새 SUV 모델이 지금 날개 돋친 듯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장마다 미국 문화와 엮기도 하고, 저자의 재미있는 체험이라는 스토리 속에서 재미있게 이디엄을 익힐 수 있다. 반드시 이디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큰 의미로 관용 표현으로 보고 여기 나온 예문 정도는 아예 외워 버리면 스피킹 능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이디엄을 쓸 때는 주의하여 확실하게 쓰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우스갯소리고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외국인이 했다는 실수 중에 아래와 같은 말들을 했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어머나, 세계에." (--> 어머나, 세상에.)

"유리창이 멸망했군요." (--> 유리창이 깨졌군요.)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언어 학습의 진리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세계와 세상은 유의어라고 할 수 있지만, 용법이 엄연히 다르다. 이처럼 정확히 알고 쓰지 않거나 아니면 일상 생활 회화 능력이 아주 기초 수준인데, 이디엄만 청산유수같이 쓰면 그것도 살짝 언밸런스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무난한 표현들을 쓰되 편안한 상대와 함게 이디엄을 시도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글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이런 배경들과 이디엄을 함께 공부해 두고, 우리 아이에게도 이디엄을 가르치는 편이다. 영어의 두뇌 구조를 가지지 못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렇게 스토리텔링과 해설이 뛰어난 책들을 보면서 익히면 문해력이 크게 느는 것을 경험한다.

급해서, 급하게 몰아쳐서 하는 공부보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책으로 평소에 급하지 않을 때 공부해 두는 것이 급할 때 위력을 발휘하며 잠재력이 된다고 믿는다. 스티븐 코비의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인 셈이다. 세상은 배반해도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도 공부하고, 50대, 60대, 70대에도 끊임없이 절차탁마할 생각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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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나를 만나다 - 나와 함께, 나답게, 나를 위해
김건숙 지음 / 바이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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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빛살무늬 님'이라고 굳이 부른다. 발음하기 어려운 한글 음절을 한자리에 모아둔 듯이 부르기 힘들지만, 굳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우리 특유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어서이다.


'언니'라는 친밀함의 호칭으로 품으로 확 달려드는 듯한 거리감도 내겐 익숙지 않고, '선생님', '작가님'이라는 격식 있고 '양팔 벌리기'만큼의 소원한 거리도 아닌, 소중함과 친밀함과 존경을 담은 '빛살무늬 님'이면 충분적절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빛살무늬 님은 자아를 찾는 여행을 4가지 챕터로 구성하였다.


chapter 1 제주에서 '나'와 첫 대면하다

chapter 2 숲에서 나를 만나다

chapter 3 오후 세 시에 나를 만나다

chapter 4 내 몸에서 나를 만나다


chapter 1 제주에서 '나'와 첫 대면하다

<구덩이>라는 단 한 권의 그림책을 들고 '제주'라는 저자의 구덩이로 들어간다. 제주도의 '이글루'라는 숙소로 가서 책을 읽고 걷고 또 걷는 시간을 통해 누군가의 딸, 한 남자의 아내, 두 딸의 엄마이라는 페르소나를 벗고 헐벗은, 진정한 날것의 자아를 마주한다.


chapter 2 숲에서 나를 만나다

저자가 자연을 사랑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전 지구를 강타하고 두려움을 드리우며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저자는 또 하나의 자아 찾기를 숲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사시사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비우는 동시에 꽉꽉 채운다.


몸의 자극으로 얻는 즐거움도 다른 것들과 견줄 만큼 크다는 것을 숲을 다니면서 알았다. 심장까지 부풀어져 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이 있으니 자연의 변화이다. 날이 따스해지면서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작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삐죽 나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허리를 구부려 눈을 맞추다 보면 생명의 경외감에 젖는다.

"잊지 마세요, 새순을 내는 여린 나무들이 있다는 것도요." (68쪽)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대단한 명예, 부, 지위도 아닐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이 자살하지 않고 옥중에서 버틸 힘을 주었던 것이 손바닥만 한 햇볕이었으며, 장영희 교수님이 모든 유학 과정을 끝내고 어서 가족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때 논문을 도둑맞아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것도 햇살이었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찡한 이야기다. 그 햇살을 얼마나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숲에서 나뭇잎들 사이로 뻗어오는 햇살은 그 비현실적인 신비감에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저자도 아마 그런 시간들을 산에서 가졌으리라.


작은 새순들, 꽃마리처럼 낮은 곳에 피어서 고개를 굳이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눈을 맞출 수 있는 작은 풀꽃들을 경외감을 품고 바라보는 저자, 집게를 사서 쓰레기를 줍고 다니는 저자의 인간적이고 애정 넘치는 모습에는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진지하고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으니 바로 트로트 가수 '덕질'에 관한 것들이었다. 설마 빛살무늬 님이 이렇게 늦바람(?)이 나셔서 한창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트로트 가수 중 장민호라는 아이돌 출신 가수를 엄청나게 덕질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 바람이다. 늦바람이 났는데 저자는 새바람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기도 하고, 또 삶의 활력이 되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 싶었다. 조금씩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고, 인상 찌뿌릴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은 중년의 삶에 이런 삶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도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80년대 후반, 혜성같이 등장했던 '이상은'을 격하게 사랑했었고, 고등학생 때는 고3 되기 전 마지막 콘서트라고 생각하고 '김종서' 콘서트에 갔었던 것을 끝으로 덕질은 멈췄다. 그런데, 최근 다시 피아니스트 '조성진' 덕질을 시작했다. 물론 나야 게으르고 열정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어디까지나 유튜브 덕질이다. 하지만, 덕질이 그야말로 삶의 활력을 주긴 한다. 조성진 씨가 인터뷰에서 '신라면을 '알 덴테'로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을 우울할 때마다 되새기며 혼자 웃는다. '꼬들꼬들' vs '알 덴테'이다. 장민호 씨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그림책까지 만드는 그 열정에는 내 어찌 당하랴마는 덕질의 기쁨이라는 것은 공감한다.


chapter 3 오후 세 시에 나를 만나다


오후 세 시에는 저자가 가정의 서재에서 어려서부터 깊이 읽었던 책들과 삶을 돌아보며 적은 글들이다. 저자처럼 이제는 중년이 된 반려견 밀키의 모습에 자발적으로 얽매이는 삶을 선택한 저자의 모습이 코끝이 시큰했다.


이렇게 조종당하고 통제를 당해도 나는 기꺼이 밀키에게 얽매여 사는 삶을 선택한다. 자발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하니까. (180쪽)


반려견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속내까지는 몰랐다. 이것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책은 저자와의 대화라고들 하는데,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더 깊은 우물 속 같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렌즈 같다. 어려서 읽었던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열망, 그림책을 읽는 마음 등을 잔잔하게 이야기해준다.


chapter 4 내 몸에서 나를 만나다


저자는 50대 중반, 이제는 조금 삶의 속도를 늦추고 몸과 대화하고 몸을 돌보는 삶을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누려도 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학교 때 잠 안 오는 약을 먹으며 공부할 정도의 열정, 판소리, 그림책, 사진 등을 향한 못 말리는 열심, 하루 1권의 책을 1년, 즉 365일 읽으며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던 삶의 속도를 살짝 늦추고 몸과 대화하며 몸과 동행하며 숲을 걸으며 노년의 삶을 향해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둥대는 시간, 그리고 자나 깨나 죽음 생각, 나이듦에 대한 인정과 긍정, 맨발로 걷기 등 50대는 물론, 5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같은 40대도 대리 체험하며 미리 인생의 중후반을 준비하는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걷는 것을 정말 좋아하여 '걷기 예찬'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제주를 걷고, 숲을 걷고, 책 속을 걷고, 몸 속을 걸으며 이렇게 멋진 한 권의 책을 내신 빛살무늬 님께 박수를 보낸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나이와 차이를 초월한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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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아이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 내로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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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그린 허구의 서사가 위안이 되고 치열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준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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