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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말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6월
평점 :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이다. 그의 말은 멋 있지만, 그 멋은 공허하다. 세상에 공허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의 말은 공허하다.
피카르트는 언어가 선험적이라고 말한다. 이미 언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언어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언어를 배우려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 근거는 증명될 수 없는 근거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지탱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언어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 언어 안에는 인간이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지탱해주는 존재가 있다."(21면)
인간이 언어에 기대어 있고, 그렇게 언어에 기대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라는 생각은 사실 얼마나 가소로운가? 언어가 선험적이고 그 선험성에 인간이 기대어 있고, 그 선험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말인데 이 말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의 모든 주장에는 언어가 선험적이라는 전제가 놓여 있고, 이것이 없다면 그의 주장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즉 피카르트는 지금 순환논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언어가 어떻게 선험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언어가 선험적이라면 그 선험성 언어는 완전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러하다면 언어는 무한대가 아니라 유한한 것인가?
아이들은 선험적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배운다. '이것'과 '저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사용하면서 양자 간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이것'에 이미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것'과 관계를 맺으면서 의미가 형성된다. 즉 하나의 단어에 그 단어의 뜻을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다른 단어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언어는 무한해진다. 언어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합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많으며 그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언어들과 또다시 언어가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언어는 끊임없이 생성된다. 마치 빅뱅이후 우주가 여전히 팽창하는 것처럼 언어 역시 원시시대 인간으로부터 언어가 갑자기 출현한 이후부터 언어는 끝없이 생성되어오고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무한하다. 어디에 선험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언어가 선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 5만 년 전부터 사용해 온 언어의 아득한 역사를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선험성이 있다는 것은 단어에 고유한 뜻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어디에 그런 것이 있단 말인가? 단어에 뜻은 없다. 고유명사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고유명사는 어떤 뜻도 담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지시적 기능만 할 뿐이다. 지시대상을 토대로 단어의 뜻이 생성된다.그래서 단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언어의 사막에 버려져 있다. 이 언어가 다른 언어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이그드라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