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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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다. 다만 21세기 서울이 아닌 한양(서울)이 경성으로 불리던 식민지 시대의 경성 맛집 이야기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식민지 경험을 수긍하는 것이 아님을 저자는 미리 밝혀두면서 오히려 경성의 맛집에 드리웠던 식민지 그늘을 주목한다. 








경성시대에도 소위 맛집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그것도 인기 메뉴를 맛보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기도 했던, 그야말로 오픈런이 있었던 유명한 식당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모두 열 곳의 맛집을 소개한다. 1부에서는 본정에 위치했던 네 곳의 음식점을 둘러보고, 2부에서는 종로에 있는 맛집 세 곳, 3부에서는 장곡천정과 황금정 특히 '조선호텔 식당'을 서술하는데 이와 함께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서 이 장소들을 언급한 당시 소설들도 살펴본다.  


본정은 식민지 시대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당시의 유명세에 비해 지금 본정의 위치를 정확이 하는 사람은 드문데, 대략 명동 부근이다. 명동에서 충무로까지 횡으로 이어진 상가가 발달한 상업 공간이었다. 식민지 시대 본정이 일본인들의 번화가였다면 종로는 조선인들의 거리였다. 지금의 종로 모습에서 한양 또는 경성의 화려한 중심가였던 종로의 옛 명성을 떠올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지만. 지금을 기준으로 장곡천정의 위치는 프라자호텔이 있는 곳, 황금정은 을지로에 해당한다. 황금정은 금융기관이 밀집되어있어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불기기도 했다고.  


​김말봉 <찔레꽃>, 이태준 <딸 삼 형제>,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염상섭 <삼대>, 이광수 <흙>, 채만식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탁류> <금의 정열>, 현진건 <적도>,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홍성유 <인생극장>, 유종석 <냉면 한 그릇>, 김낭운 <냉면>, 심훈 <불사조> 등 근현대 소설가들의 여러 소설들과 그 소설들이 연재됐던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들을 적게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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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한지 100년이 훌쩍 넘어서 지금도 영업 중인 '이문설렁탕'을 비롯해 당시 내로라하는 식당, 카페, 요릿집들이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조선호텔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선호텔이 문을 연 것은 1914년 10월이다. 그 규모(특히 부지)가 엄청난 것도 있지만 조선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로도 유명했다. 독일인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를 했으며, 건축 자재  역시 독일을 비롯한 서양에서 수입했다고 한다. 랄란데는 총독부 청사, 경성역 설계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조선호텔은 당시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유겐트 슈틸' 양식으로 지어져 이국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읽다보니 사진 자료에서 보이는 조선호텔 공연실의 호화로움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고,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왜 전부 비슷한 분위기로 연출됐는지 알만하다.   


조선호텔은 처음에 철도호텔로 개장되었다. 이는 조선호텔이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철도를 건설했던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환구단'의 자리에 식민 지배를 위한 철도호텔이 중심에 있고, 신위판을 봉안하는 부속 건물인 '황궁우'가 호텔을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되게끔 했다는 것은 일본 제국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저자는 조선호텔이 위치했던 장곡천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서 조선호텔이 위치한 공간의 의미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짚는다. 


1936년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 메뉴판을 보면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 그림이 있는데 의복이 독특하다. 개량한복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말 깜짝 놀랐던 부분은 당시 조선호텔의 방값이었다. 하루 방값이 12만원이었는데, 지금 시세로 따지면 60만에 해당한다.



몇 가지 재밌는 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배달이다. 책의 삽화에 보면 국수나 설렁탕 배달은 쟁반을 이용했다면 중국음식점 배달은 지금과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통이었다(지금과 아주 흡사하다). 다른 또 하나는 '낙랑파라'의 사진이나 내용을 읽어보면 그곳이 예술가들의 살롱 역할을 한 장소가 아니었나싶다. 사진을 보니까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괜히 흐뭇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건물의 규모, 메뉴의 특성, 변화한 입맛, 달라진 사회 정서 등을 고려해야겠지만, 한 예로 당시에 전문 디저트 카페가 있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또한 특별한 목적 없이 거리를 걸으며 윈도우 쇼핑을 즐겼던 당시의 젊은이들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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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제목처럼 단순히 경성 맛집 투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당시 경성 중심가의 모습과 사회 계층의 구조나 생활상, 무엇보다 조금 생소한 근대의 문학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짧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매력이 가장 크다. 또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읽다보면 조금씩 씁쓸해진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했듯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얼마나 소리없이 교묘하게 조선의 일상에 침투했는지 느껴지고,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일해야 했던 당시 조선인의 위치가 어땠는지를 새삼 깨달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요즘 한창 유행인 소위 '먹방'이나 그와 관련한 콘텐츠나 프로그램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외식도 즐기는 편이 아니고 일상의 끼니는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는 게 편하다. 여행이나 답사를 갈 때도 검색하지 않는 부분 역시 현지 맛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저자가 서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 시대의 맛집을 살펴본다는 것은 곧 동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기 장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이 유행했고, 유행한 계기는 무엇이며, 변화된 식생활 문화가 미친 영향까지 짐작하다보면 당시를 살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생각지 못했던 지금의 우리를 반추하게 된다.   


재미있는 경성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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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커다란 초록 천막 1~2 세트 - 전2권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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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e Gut, Alles Gut" 
 

프롤로그에서 스탈린의 사망 소식을 시작으로 하는 소설은 그로부터 2년 전인 1951년부터 199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일리야 이사예비치 브랸스키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듯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이 교차하고 격동의 소련을 관통하면서 당시를 살아낸 그들의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그 많은 등장인물들(내가 헤아린 것만 칠십 여명이다)이 직.간접적으로, 크든 작든 일리야와 연관이 있다는 것. 또한 인물들의 관계, 사건과 갈등의 인과 과정 등이 시간의 순서가 아닌 관점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밀도감은 더해진다. 같은 시기 혹은 같은 사건을 등장 인물 각각의 관점으로 조망하며 미처 드러내지 않았던 사건의 진실과 반전들이 여러 입장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더하여 실제 사건, 허구의 인물과 실제 인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마치 소설이자 르포르타주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커다란 초록 천막>은 그야말로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권에서는 당시 소련(특히 모스크바)의 서민층과 소수 민족의 삶을 대변하는 이들이 등장하는데, 매 장章마다 쓰여진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면서 한 권의 연작소설이라고해도 무방할만큼 내용이 다채롭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소설 전반에서 전해지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예술적 지식과 소양, 그리고 감성이었다. 이러한 문학, 음악, 미술, 문화 등의 장치는 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저항과 투쟁의 정신을 보여주는 일리야, 일리야에게 인생을 던진 올가, 유대인이지만 러시아인이자 어른으로서 남고자 했던 미하, 섬세하고 유약해보이나 어쩌면 그들 중에서 가장 의리가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냐. 이외에도 각자의 뜨거운 서사를 안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사랑과 우정, 이념과 신념, 민족성과 정체성, 냉전시대의 잔혹함, 모두가 고아였던 시대의 끔찍함, 선한 믿음, 스승에 대한 존경과 제자를 향한 애정, 정의와 불의, 강요된 선택,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던 사람들과 그들이 독자에게 던지는 삶의 의미.  



읽는 내내 얼마나 마음이 들썩였는지 모른다. 일리야와 올가의 삶에 아팠다가 미하의 서사에 먹먹했고 사냐의 삶에 안도했다. 류드밀라와 주니어 '일리야'의 이야기에 안타까웠지만 코스탸의 따뜻한 마음에 울컥했다. 그와같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책을 덮으면서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양 뭉클해졌다.   


올해 읽은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516.
천재란 시나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 그치지 않고 강이나 호수에 떠다니는 쇄빙선 같아서 시대를 앞서가서 벽을 부수고 얼음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그의 뒤에 오는 온갖 크고 작은 배와 보트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야. 천재 뒤에는 가장 영리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따르고, 그들 뒤에는 군중이 따라와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발견은 상식이 돼. 평범한 사람들은 천재들의 노력과 시간의 흐름 덕분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지. 그들은 시간을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말이야." 


518.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같아. 왜냐하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것이 존재하고, 그런 세계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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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지음,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기획 / 원더박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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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1923년에 벌어진 사건의 진실과 현재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한 간토 지방에 7.9도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10만 명에 이르렀다. 이때 조선인은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와 별개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경찰과 자경단에게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중국인은 700여 명이 사망). 물론 일본은 지금까지 진상 규명조차 거부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 정부 역시 간토 학실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며, 단독 조사도 외면했다. 심지어 추도문조차 발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잊힌 사건이 되었다.  


재일사학자 강덕상의 연구는 두 가지 쟁점을 언급한다. 진도 7.9의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일본 정부는 왜 계엄령을 발동했는가? 조선인 학살을 조장한 유언비어는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진실을 밝히려는 그의 오랜 여정 끝에 도달한 결론은, 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자경단의 예상치 못한 범죄가 아니며 수백만 이재민의 반정부투쟁을 우려한 야마모토 곤베에 내각이 직접 '조선인 습격설'을 퍼트리고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중략)






 
이 책에는 국적을 떠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간토대학살'의 사실 여부를 밝혀 과거사를 청산하고자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조선인 유골을 발굴하여 추도하는 모임'을 만든 기누타 유키에, 극우단체의 비난과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간토대학살을 조사했고 추모비를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니시자키 마사오, 일본인 목격자와 생존한 조선인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밝힌 오충공 감독, 1923역사관을 세운 김종수을 비롯해 자이니치 래퍼 FUNI, 사진작가 천승환 등 예술가와 젊은 세대들이 간토대학살 사건을 알리는 데에 연대하며 애쓰고 있다.


오충공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1923 제노사이드, 조선인 대 학살 100년의 역사 부정>(가제)이 올해 개봉될 예정이고, 9월에는 천승환 사진작가의 간토 조선인 대학살 관련 사적지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아베 정권 이후 득세한 극우 세력으로 인해 급기야 1923년 간토의 불령선인은 2013년 도쿄에서 다시 등장했었다. 역사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에 맞서는 활동을 하고 있는 가토 나오키는 과거의 학살을 사죄해야 미래에 평화가 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역사를 기억하는 데에 있어서 앞선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증언의 '기억을 이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니시자키 마사오는 자신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말하는 야마모토 스미코는 사죄가 없다면 불행은 반복되고, 자신의 활동이 조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23 간토대학살은 자서전, 일기장 등 기록으로 남은 수많은 증거와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그대로 살아있기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도 이제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적어도 역사를 바로 아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실을 바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람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크투어 안내서가 링크의 QR 코드와 함께 부록으로 실려있다.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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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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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사뮈엘 베게트와 페터 한트케가 왜 찬사를 보냈는지 알 것 같다. 독자는 독백을 하듯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화자의 뒤를 좇아 파리 곳곳을 부유한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바통. PTSD를 앓고 있으며 몽루주의 오래된 낡은 아파트의 옥탑방에 살고 있다. 그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은 후 전쟁 공로 훈장까지 받았고, 현재는 상이군인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전쟁 영웅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의 현실은 처량하기만 하다. 하지만 비록 낡고 볼품 없는 양복을 입고 있음에도 카페테리아 손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한껏 멋을 내고 화려한 사교계를 누비며 여배우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빅토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고, 골목에 줄지어 있는 상점과 주인들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꿰고 있으며, 파리의 부둣가와 리옹역이라면 손바닥 보듯 전부 알고 있다. 또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을 흥미진진해하며 관찰한다.  


빅토르는 전쟁 미망인인 뤼시와의 하룻밤 잠자리에 마치 그녀가 애인이라도 된 듯 사랑을 말하고, 거리에서 우연찮게 대화 한마디를 나눈 비야르에게 우정을 기대하고, 사업가의 단순한 호의를 과대포장하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모르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고, 생면부지의 남자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신경쓰는 사람이다.  


빅토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과 관심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빅토르의 희망은,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전부 들어주는 것뿐이다(그 반대가 아니고). 웃음, 기쁨, 눈물, 슬픔, 그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우정과 사랑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라는 말에서 빅토르의 처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ㅡ 


그런데 빅토르가 원한 건 정말 관심과 사랑뿐이었을까?
순수하게 빅토르의 말을 믿어주기에 뭔가 불편한 구석들이 있다. 빅토르는 대화보다는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원한다. 상대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가 필요로하는 친구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불행하고 가난하고 착한 사람. 빅토르는 부자가 되어 관심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기를 꿈꾸지만, 애초에 그는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불행해질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불행에 익숙해져 행복은 자기의 몫이 아닌 그저 동경의 대상이라고 치부한다. 그래서 행복에 겨운 인간의 방을 함부로 방문할 용기조차 없다. 


또한 살면서 가져보지 못한 권력에 대한 로망도 크다. 50프랑을 빌려달라는 비야르의 부탁에 빅토르는 비로소 그와의 사이에 있는 벽이 허물어졌다고 생각하면서 흔쾌히 돈을 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돈을 주기 전까지 비야르의 애를 태우는 것을 즐긴다. 이와 비슷한 모습은 느뇌를 비롯해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빅토르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어쩌면 그는 상황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르는 남자의 자살을 만류하기 위해 그에게 돈 10프랑을 건네고 저녁밥까지 사먹이는 행동도 인간애적인 측면보다는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빅토르는 몇 년 동안 살아왔던 옥탑방을 빼야할 처지에 놓인다. 그의 판단은 이렇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주로 노동자들이 산다. 그들에게 노동은 신성하다. 그래서 이유야 어떻든 빅토르처럼 연금을 받으며 무위도식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하지만 빅토르는 그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고기, 유흥, 고가의 옷을 단념한 그를 마주칠 때마다 자신들의 구속된 생활을 자각해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와 가난에 구애받지 않는 빅토르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빅토르의 얼토당토 않은 이 말에, 나는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다.


소설 후반부에 흥미로운 부분이 두 군데에서 발견된다. 하나는 빅토르가 분노에 찬 라카즈 씨한테 모욕을 당하고 경고를 받은 뒤 오열을 터뜨린 후 자신이 억지로 계속해서 울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 가수인 블량셰와 밤을 보낸 후 새벽이 되자 두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그 방을 빨리 떠나고 싶어하며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어쩌면 빅토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관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고통을 통해 살아있음과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닐까. 늘 동경해왔던 관심 혹은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그는 이상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한 건 아닐런지. 특히 자조하듯 말하는 마지막 문단은 역설적으로 읽힌다. 우리는, 적어도 얼마만큼씩은 약한 존재이지 않은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던 빅토르가 관심을 구걸하는 자신의 처지를 거지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동정할 수 밖에 없다(빅토르는 얼마나 타인의 동정을 바랐는가). 


ㅡ 


인간이 살아있는 한 절대 떨쳐낼 수 없는 고독, 자유와 구속, 삶의 이유와 존재 가치 등을 망상증 환자에 가까운 한 남자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24년에 발간됐다. 어쩌면 빅토르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는하나 큰 피해와 정치 상황을 봤을 때 전후 직후 상실감을 안고 살아갔을 모든 젊은이들의 초상이 아닐까.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하게 친구를 찾는 빅토르의 모습은 희망과 미래를 찾고자하는 (당시의)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투영한 건 아닐지. 


다 읽고나니 책의 표지가 이해된다. 
친구보다는 동료라는 단어가 더 익숙해지고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만이 친구가 되어버린 표지 속 남자의 모습에서 나는 밖을 바라보고 일렬로 늘어서 있는 편의점 의자가 떠올랐다. 언제부터 우리는 외로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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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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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선사시대 네안데르탈인을 시작으로 바빌론과 성경, 서유럽과 지중해, 로마 제국, 바이킹, 중앙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동(남)아시아, 유대인(시온주의), 유럽 난민 및 민족 분리, 국외 거주자 또는 이주노동자로 이어지는 인류의 대이동을 다룬다.  






이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로서 국가, 국경, 여권, 이민 쿼터, 장벽, 비자 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깊고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 이민은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이 주제를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 우리는 고정된 국적과 주거지를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혹은 인간의 한 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지만 인류는 지난 역사에서 아주 많이 이주를 반복해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주를 인류 역사의 중심으로 복귀시키고 이주민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재설정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동시에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기들을 정착 사회, 이주, 민족 이동, 유동적 사회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한다.  


ㅡ  


이주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 현대인들의 DNA 중 1~4퍼센트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여겨지는 민족들이 사실은 사피엔스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공유하고 있는 혈연관계인 것이다. 유일한 예외로 네안데르탈 유전자를 갖지 않은 민족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같은 혈통을 계속 이어 온 종의 후손들로, 이들은 인류가 별도 종으로 등장한 아프리카 대륙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 사피엔스, 그리고 선사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기타 아종을 포함한 전 인류의 출발점은 아프리카였고,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은 엄청났다.  


인류는 왜 이토록 엄청난 이주를 했을까? 기후 변화, 자원 부족, 영토 분쟁 등 여러 지역적 이유들이 결합되어 있을 테지만, 그런 이유만을 적용하기에는 육지 포유류 중 쥐를 제외하면 다른 어떤 동물도 그렇게 온 지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이거나 유전적으로 이동 욕구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더불어 우리는 어느 민족의 순수 혈통을 잃는 것 아닌 그 민족의 문화를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기원전 5세기에 쓰여진 문헌들을 보면 아테네에서의 외국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현대 사회에서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특정 장소에 속해 있는 고대 세계를 지어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결국 유목민의 후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모두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본향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20세기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세계대전을 거친 후 점차 커져 현재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이 1950년대 이전에는 백인 일색이었고 단일 문화였다는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정착주의, 인종적 순수성, 민족국가라는 세 가지를 미화시키면서 1950년대 이전의 유럽 역사가 개작되었고 유색인종을 위한 역사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수십 년이 지난 이제서야 점차 복원되고 있다.  


이주에 관련된 언어들은 국가와 국경 개념, 인종과 인종차별주의와 연관 되고, 이주민이 떠나온 나라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들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 달라지고, 태도에도 전혀 일관성이 없다. 거주민들과의 동화와 그들만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을 동시에 주문한다. 또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떠나온 국적과 인종뿐임에도 찬사 혹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이민은 정치, 경제에 적극적이면서 제멋대로 이용된다. 이민은 여러 국가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역삼각형으로 바뀌어가는 인구 분포, 인구 노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전쟁(내전) 및 기후 난민 발생 등 이주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정주주의를 추구함으로써 과거와의 연속성, 이주의 정상성과 상호 연결성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지적하는데, 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이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짚는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인류는 이주를 반복해왔다.길가메시의 신화에서 보여지듯 이주는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삶의 선택이었다. 이주의 역사를 되짚음으로써 인종, 성별, 민족, 종교 등 현재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과 혼란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때까지 잘 알려지고 지배적인 방식에서의 이주가 아닌, 이주가 정상적인 활동이며 인간 조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프리즘을 제공하고자 한다.  


정체성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저자의 말처럼 단 하나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것은 때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주민으로서의 역사와 공동 혈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복수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같은 인간 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떠할지, 저자는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주는 매우 복잡한 개념으로 명확한 경계가 있는 단순한 정의에 맞춰지지 않는다. 거리, 기간, 목적 등에 따라 용어가 달라지고, 무엇보다 특정 개인이 이민자가 된 정확한 시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에 의문을 표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찾고, 그것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한다고 전한다. 기록물은 대체로 정주한 사람들이 정주한 사람들을 위해 저술했으며 과거에 대한 특정 관점을 제공했는데, 여기에서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그러지 못했으니 그 공백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인종주의를 시작으로 각 분야에 파생된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가 생성되는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서술하는데, 이 책의 재밌는 점은 각 장마다 끝에 따라오는 '저자 노트'에 있다. 저자는 자신과 딸의 침을 DNA 검사를 신청해 그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의 계획과 서술 방향, 구성, 사료를 접할수록 생기는 딜레마,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의견 등을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했는데, 노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이주'라는 관점으로 들여다본 역사서로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채우지 않은 현재의 '이주'에 대한 담론은 독자인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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