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지음 / 새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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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오하라가 아니라 오아라? 먼저 이 책의 제목『스칼렛 오아라』에 시선이 갔다. 스칼렛 오하라,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매혹적인 여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그것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이중생활, 그 불온한 욕망의 이중주

"가난한 소설가는 디올백을 사랑하면 안 되나요?"

돈에 쪼들리는 현실의 돌파구로 낮에는 소설가, 밤에는 오피스걸의 이중 생활을 선택한 오아라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데에서 이 소설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데에 충분했다.

 

이 책의 작가는 이승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십여 년 간 다수의 잡지사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며 소설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선의 취향』이 당선됐고, 장편소설『런던의 안식월』로 제1회 'K-오서 어워즈'를 수상했다.『런던의 안식월』의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성석제로부터 '자기 연민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구인 성찰과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문학과 미래>의 담당 편집자 김순옥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등단작보다 그다음 작품이 더 중요한 건 아시죠." 오아라가 보낸 작품이 새롭지가 않단다. 갓 등단한 신인 작가다운 뭔가가 없다나.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에는 희열을 느꼈지만 이미 희뿌연 신기루가 돼버리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답답한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현실도 만만치 않다. 엄마가 있는 요양병원에서 병원비가 밀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뇌졸중으로 요양 병원 중증 격리병동에 누워계신다. 열심히 글을 쓰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세를 공제한 신춘문예 당선 상금 291만 원은 세 달 만에 바닥이나고 만 것이다. 처절한 현실 속에서 소설 속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계속 우중충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아라에게는 미모와 필력을 겸비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꿈이 있다. 낮에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고 밤에는 스칼렛이 되어 고객을 상대하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스칼렛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오아라가 밥을 먹고 글을 쓸 수 있으니까.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오아라의 인터뷰는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이미지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진실은 과거나 현재이고 거짓은 바람이 담긴 미래였다. 100퍼센트 진실도, 100퍼센트 거짓도 없었다. 모든 명제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지 그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251쪽)

 

 

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조각들이 저자의 글솜씨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울하지만은 않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등단작가이면서 차기작을 내지 못한 돈이 궁한 오아라, 짝사랑하는 사람 따로 동거하는 사람 따로 있는 <문학과 미래> 편집자 김순옥, 스폰을 받지만 스칼렛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스폰서를 자처하는 호스트바 마담출신 노아…. 등장 인물들이 개성넘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또한 답답한 현실과 명품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느낌을 받았다. '오묘한 감흥과 상대적 박탈감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의 에너지'라는 표현이 맞아떨어지는 소설이다. 등장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감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모두들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 그런 이들이 연결되어 큰 틀에서 하나의 세상으로 내비쳐질 때, 소설이 되고 우리네 인생의 단편으로 펼쳐진다.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삶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내 삶과 이어지는 일은 늘 예기치 못한 이유로, 의외의 순간에 일어난다. (87쪽)

 

 

사랑도 글도 욕망인가. 한 순간의 꿈, 헛된 욕망인 것인가. 욕망이 간절해지는 만큼 엄습해오는 불안과 두려움의 크기도 증폭된다는 오아라의 말에, 등단작이 곧 마지막 작품이 되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별반 변화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오아라의 생각에, 욕망은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바라본다. 거머리같이 악착같은.

인간의 삶이 굴러가는 양상은 늘 머물거나 떠나거나의 반복일 뿐이다. (231쪽)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을 보게 된다. 사는 것 자체가 막장인거, 미심쩍지만 막장이 맞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전해듣는 느낌이다. 얼핏 보면 가볍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웃다가도 씁쓸한 뒤끝이 있고, 구질구질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되는 소설이다. 과연 오하라의 선택은? 마지막까지 읽어보지 않으면 오아라의 다음 행보를 알 수 없다는 것도 끝까지 독자를 이끌고 가는 힘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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