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건강할 때에는 다른 부분에서 욕심을 부리게 된다. 좀더 날씬해지고 싶고 지적이고 멋있고 말솜씨도 좋고 근사한 곳에서 우아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면 오로지 '건강' 하나만 생각하게 된다. 삶이 별다른 재미도 없고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막상 죽어야한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살고 싶은데 맘대로 잘 안되는 혼동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살고 싶고, 건강하게 잘 살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깨달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지는 이십대 여성이다. 암의 재발, 그것은 처음 진단 받은 때보다 더 무서운 선고일 것이다. 스물세 살에 이미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거듭하여 완치되었는데, 4년 후 재발이라니.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그것도 스물세 살의 아가씨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책에는 마냥 어두운 내용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문장처럼 맞다싶은 말로 웃음이 나는 코드가 군데군데 포진해있다. '어째서 허벅지나 쏙 들어가주면 고마운 배에는 암이 걸리지 않는 것일까? 그럼 기꺼이 포기했을 텐데. 하지만 제발 부탁이니, 대부분 남자들이 한 번 더 쳐다보는 나의 완벽한 C컵 가슴은 그냥 두시길.' 이 소설을 읽으며 스물 일곱살의 여성이면서 때로는 대범하고, 때로는 대범함을 다 뒤덮어버리는 현실 속 여성의 모습으로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면, 아무리 잠시지만 그 일을 잊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32쪽)

얼마나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손더스 선생님은 대답한다. "4개월. 어쩌면 6개월이에요." 또한 임상시험을 선택하면 6개월이나 1년, 어쩌면 그 이상을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를 주인공 데이지의 마음과 동일시하고 느끼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믿기지 않는 현실, 그에 따른 혼란스러움, 쿨하게 생각했던 과거는 막상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때의 일일 뿐이다.

한 달 뒤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가방을 싸서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아말피 해안에 집을 빌린 뒤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와 와인을 실컷 먹을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할 정도로 야심이 컸구나 싶다. 죽게 된다 해도 절망하지 않으리라 자신만만했던 스물한 살짜리가 조금 창피하다. 그 애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레드 와인을 마시며 '카르페 디엠!'을 외치겠다고 했다. 어리석기도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으니. 하지만 그 애에게 부러운 면도 있다. 그 애한테는 최소한 계획이 있었으니까. (123쪽)

 

본격적으로 이야깃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은 스물한 살때의 계획이 아닌 현재의 계획이 생겼다는 부분에서였다. 데이지는 남편 잭의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다. 그러다가 생각에 잠긴다. 집안 일에 서툰 남편 잭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잭에게 아내가 필요할 것이기에 데이지가 아내를 찾아준다는 것이다. 과연 그녀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쿨한 그 마음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인가?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읽어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소재가 무겁기에 깊이 가라앉을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렇지만은 않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고 부담이 없다. 세세한 부분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한 달 뒤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데이지와 비슷한 철없는 답변을 하기도 했으니 더욱 남이야기같지 않음을 느끼며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콜린 오클리이다. 저널리스트로 꾸준히 기사와 에세이, 인터뷰를 기고하고 있는데, 이 소설 『비포 아이 고』는 그녀의 데뷔 소설이다. 암에 걸리고 좌절하고 가족들 모두 힘들어하며 어두운 분위기에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암의 한 단면이겠지만, 일상 속에서 너무 심각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보게 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주는 적당한 무게감에 뜨거운 한여름 밤을 잊어본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