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흔, 붙잡아주는 화두
이지형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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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불혹이라고 한다. 마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머리말에 적힌 저자의 글을 보고 동시대에 살아가는 마흔 부근의 사람들이 공감을 많이 할 것이다. '마흔, 불혹이 망상임을 깨닫는 나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휩싸여(과거), 불확실한 전망을 두려워하고(미래), 발 디딜 곳 마땅찮은 처지를 한탄하며(현재) 흔들린다. (6쪽)' 이 책은 삶에 지친 사람들, 흔들릴 때 단단히 붙잡아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라고 하며, 화두들을 새롭게 분류하고 요즘 입맛에 맞게 풀이한 책이다.

 

요즘의 내 마음에 부합하는 책이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나를 붙들어매고 싶었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곁가지의 흔들림에만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꽉 틀어쥐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애정을 갖고 관리할 것들만 추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공허한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게 된다. 마음의 번뇌를 리셋하며 복잡한 마음의 곁가지를 쳐내고 단순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니 이제는 화두 하나 붙잡아두고 생각을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금 이 책의 선택은 적절했다.

 

이 책에는 총 12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옛사람들의 다양한 선문답을 훑어보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그에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었다.

보름달 밝게 뜬 어느 밤, 암두가 친구인 설봉, 흠산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암두가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을 기습적으로 가리키더니 동료들의 반응을 구한다. 흠산이 나선다.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게 마련이지!"

설봉이 뒤따른다.

"물이 맑으면 달이 사라지지!"

암두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물그릇을 발로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27쪽)

'판을 엎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라는 제목의 글 첫머리에 나오는 선문답이다. 두 사람을 통해 한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극단의 시각이 제시되었다면 판을 깔아놓은 암두는 물그릇을 확 차버리면서 스스로 판을 깨버린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분법을 깨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 것이다. 이에 이어 알렉산드로의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화라든가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를 언급하며 프레임을 바꾸는 일에 대해 논한다.

 

선문답을 차근차근 읽으며 지금의 나에게 강하게 와닿은 부분이 무엇인가 살펴보니,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에 있었다.

한 스님이 조주를 찾아와 물었다.

"저는 일체를 버리고 텅 비운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내려놓게 放下着!"

"네? 무얼 내려놓으란 말씀입니까?"

조주가 다시 말했다.

"그럼, 짊어지고 가든가 着得去!" (113쪽)

"방하착!"과 "착득거!"라는 두 마디의 말은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마저도, 짊어지고 갈 또 다른 짐들을 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자의 질문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짤막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읽는 것보다는 조금씩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문답은 궁서체로 담겨있으니 좀더 곱씹으며 천천히 읽는 것을 추천한다. '곁가지 다 쳐내고 딱 하나만 붙들고 살자!'는 표지의 글처럼 복잡한 마음 상태를 정리하고, 정리한 마음마저 한 차례 걸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에 어떤 것을 담고 지내야할지 보이게 된다. "방하착!"과 "착득거!"를 조용히 읇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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