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쓸 생각은 없다. 캐릭터 설정부터 플롯, 전체적인 줄거리 등 신경쓸 것도 많은 데다가 무엇보다 쓰다보면 내가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잊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소설가는 타고 나야 한다고.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을 읽다보니 알겠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히 전업작가나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순식간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서 결과물을 내보이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쓴 초고를 봤는데 토할 것 같다면 그건 소설가의 일거리, 즉 생각할 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건 뱃살이 생기거나 방이 더러워지는 일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 우주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란 뜻이다. 뱃살이 나왔다고 난 원래 배불뚝이로 태어난 것이라며 절규하거나, 방이 더러워졌다고 왜 나는 사는 방마다 더러워지느냐고 좌절하는 사람만큼이나 이상한 게 처음 쓴 문장이 엉망이라고 재능을 한탄하는 사람들이다. 단번에 명작을 쓰고 싶다면, 시간이 갈수록 방이 깨끗해지는 우주에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77쪽)

그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재능은 필요하겠지만, 상당부분 노력이 병행되어야 결과물이 나오는 것인데, 그저 당연히 잘쓰는 사람들로만 여겼던 나의 생각을 바꿔본다.

 

이 책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집어들었고,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어서 별 기대없이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쓰는 일에 관심이 없었으며, 소설가에 대해서도 딱히 호기심이 일지는 않았지만, '그래, 소설가의 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 번 들어나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제목이나 책의 두께로 짐작해볼 때 그냥 가볍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던져주리라 짐작했다. 처음에는 나의 그런 짐작이 맞다고 생각되었다. 앞부분은 딱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소설가 김연수가 읽겠다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디에선가 그 책을 언급한 것이 떠오르며 색다를 것이 없었고, 외숙모가 시인이 된 이야기도 그냥 평범했다.

 

나른한 오후에 졸음이 올 듯 말 듯한 상태로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잠에서 확 깨는 순간이 온다. 그저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다가 어느 순간 훅 치고 들어온다. 소설을 쓰는 데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설을 읽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적인 큰 틀에서 소설을 바라보는 데에 꽤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적절히 웃음 코드가 섞여있는 책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등단을 하기 전에, 그리고 등단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내가 착각한 것은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로 시작하는 글을 보다보면, '소설가'와 '소설 쓰는 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웃어가며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읽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바라보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되라고 하는 작법책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초고를 '토고'라 말한다. 나중에 다시 보면 구토를 유발한다는 뜻도 있고, 토할 때까지, 토가 나와도 계속 쓰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지 않던가!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글은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펄펄 끓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바꾸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무언가를 쓰고, 그렇게 쓰인 '토고'를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고치고 치우는 일이다. 이 책은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캐릭터와 플롯 구성을 하며 그럴 듯한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막상 문장으로 써놓고 보니 자신은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서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도 한 번 소설 쓰는 일에 대해 소설가의 일을 들여다보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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