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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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 아닌 짧은 글 속에 우주를 담은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시'이다. 2015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시를 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느낌이기에 시 읽는 맛이 더욱 좋다. 옛시절에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마음은 어땠는지 '한시'를 통해 알 수 있다.

 

한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새해 계획으로 한시를 읽어보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민선생님이 평역한 우리 한시 삼백수라니! 이 책으로 한시를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번역투가 아닌 살아 숨쉬는 한시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원하는 때에 읽는 한 권의 책이 희열을 주고,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책장에 꽂아두고 마음이 동하는 때에 한 수 한 수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우리 한시 삼백수를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한시는 5언절구를 작가 연대순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생몰이 분명치 않을 경우, 역대 시선집의 연대순 배열을 참고하여 배치하였다. 7언절구 편에 이어 5언절구 편 3백수를 엮어낸 것인데, 저자는 "앞서 7언시에 비해 글자 수는 줄었는데 평설은 대체로 더 길어졌다. 시인이 말을 아꼈기 때문에 감상자가 채워야 할 빈 여백이 그만큼 넓어진 탓이다."라고 밝힌다. 적당한 분량의 평설이 가미되어 한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어느 정도의 설명이 더해져야 그 분위기를 알 수 있고, 그래야 조금이나마 더 마음에 와닿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한시는 을지문덕 장군이 쓴 지족(知足)에서부터 시작한다. 살수대첩 당시 고규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인데, 그냥 읽으면 밋밋하지만 행간을 알면 그렇지도 않다고 설명한다. 서로 간에 《도덕경》을 읽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이 있기에 전후 상황과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흰 구름>은 불일암의 인운 스님께 이달(1539-1612)이 지어준 시다. 스님의 이름에 구름 운(雲)자가 있어서 구름으로 장난을 쳤다. 스님이 꼼짝 않고 좌선삼매에 들어있는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흰 구름

                                이달

 

흰 구름 가운데 절이 있는데

그 구름 스님은 쓸지 않는다

손님 와야 비로소 문은 여리고

골짝마다 송화만 늙어가누나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듯해도, 그 장면을 떠올려보니 픽 웃음이 나는 시가 있다. 순한 흰둥이 개 한 마리가 마당에 있는 풍경이다. 낯선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늘어지게 꽃그늘 아래 배 깔고 자다가 눈 한 번 뜨더니 다시 감는다. 개수염에 복사꽃이 걸리든 말든 달콤한 잠에 취해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버린 봄날의 어느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꽃잎

 

                       황오

 

우리 집의 흰둥이 개

손님 봐도 짖지 않네.

복사꽃 밑 잠을 자니

개수염에 꽃 걸렸네.

 

그밖에도 삼백수의 한시가 담겨있으니, 그 양이 정말 많다. 마음에 드는 시는 표시해놓았다가 다음에 또 읽어보기로 한다. 그 때 내 마음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 책의 장점은 시대 순으로 5언 절구 우리 한시를 쭉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만 담겨있다면 약간 밋밋할 수 있지만, 정민 선생님의 평역으로 읽는 맛을 더한다. 책을 펼쳐들면 왼쪽에는 시, 오른쪽에는 해설이 담겨있다. 왼쪽 위에는 한시의 해석이 먼저 담겨있고, 그 밑에는 원문과 한글 독음이 달려있다. 한시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것이고, 자료인용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찾아보기 좋은 책이다. 이 책 한 권이면 한시삼매경에 빠지기에 더더욱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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