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소설 중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이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수차례 살인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이야기다. 나의 상상을 초월하고 혼돈 속에 빠지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끝의 느낌이 강렬해서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김영하라는 소설가에 대해 궁금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소설을 읽고나서였다.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고, 소설에서 받은 느낌만 못해서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김영하의 산문집인 이 책 『보다』는 읽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흔한 글이 아니라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볼 수 있는 책이어서 느낌이 좋았다. 흔한 일상 속에서 날카롭게 잡아내는 소재, 그 소재를 풀어내는 맛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내가 본 책에서도, 내가 본 영화에서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그 해석에 일리가 있음을 느끼며 공감하게 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단순히 첫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서연은 제 욕망을 타인의 욕망으로 바꾸려는 여자다. 그래서 늘 자기를 속인다. 옛 남자를 찾아간 이유는 오직 아버지에게 집을 지어주려는 효심의 발로이고 옛 남자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려는 것은 오직 그 남자의 패션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73쪽)

서연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여기며, 진짜 욕망은 타인의 욕망으로 은폐돼 있다는 설명을 보며, 아무래도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는 제목의 글도 인상적이다. 점을 보러 갔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머리를 길게 땋은 도령의 신통한 점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도령을 만난 지 십 년 쯤 지났을 때, 문득 그가 다시 보고 싶어서 알아봤더니, 다 쓰러져가는 한옥에 있던 그의 점집은 초역세권 대로변의 빌딩으로 옮긴 상태였고, 예약은 이미 삼 년 치가 다 차 있다고 했다. 1989년에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되리라.'고 단언한 사람은 오직 그 도령만이었다니, 그 점괘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서 소설가가 된 것인지, 정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밖에 '시간 도둑, 미래의 영화를 표절하다, 홈쇼핑과 택배의 명절 추석' 등 슬쩍 읽어나가다가 눈길이 머무는 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그가 언급해주어서 세상사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내가 보았던 영화나 책을 다시 의미를 짚어내며 끄집어내어 주고, 세상 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공감하고 감탄하며 읽어나가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보다'라는 제목답게 그가 보는 세상이 내 시선을 끌게 되었다. 표지의 그림처럼 안경을 덧대주는 책이다. 내가 보는 세상에 새로운 안경을 씌워준다.

 

'보다'라고 이름붙인 이 책에 이어 '읽다'와 '말하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약 석 달 간격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책과 독서에 대한 산문들이 '읽다'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 쓴 글들이 '말하다'로 묶일 것이다. (저자의 말 中)

소설보다도 물흐르듯이 편안하게 풀어내는 에세이에 끌리게 되는 작가가 있는데,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영하가 그렇다. 소설과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 좀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같은 면모다. 그의 소설은 읽기 머뭇거려지는 부분이 있지만, 에세이는 찾아 읽고 싶어진다. 곧 나오는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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