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나이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나는 항상 노년의 이미지에 매력을 느껴 왔다. 늙다리와 어린 소녀.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상기시키려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범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은 자연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무자비함과 폭력, 그리고 자연의 청정함과 결백성 말이다. (11쪽)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다음은 그녀와 그의 은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파릇파릇한 식물 그림이 있는 표지, '자연을 거슬러'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진행에 살짝 당황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사랑이야 말로 지극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고, 또한 우리의 관념과 살짝 어긋난 사랑의 모습에 '자연을 거슬러'라는 표현을 할 수도 있겠다. 시적 언어로 그려낸 '부자연스러운 사랑'의 고백록이라는 점에서 내면의 강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일까? 초반에 소설 속으로 완전히 몰입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다. 하지만 세상에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경계는 누가 만들었으며, 어떻게 한정지을 수 있을까? 세상의 어느 사랑도 딱딱 떨어지는 경계에 의해 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노르웨이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에스페달은 노르웨이 문단에서 유려한 문장과 독특한 형식의 소설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분야의 엄격한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자전적 소설 또는 수필 형식의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자연을 거슬러』는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성숙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토마스 에스페달의 문학적 언어를 음미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의 삶 자체를 엿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냉혹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연을 거스르고자 하는 그의 치열한 몸짓에서 고통스러우리만치 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책날개 中)

 

 미화하여 포장한 느낌을 주는 사랑보다는 숨김없이 드러나는 솔직한 사랑 이야기가 주는 파장이 더욱 크다. 나에게는 충격이다. 사실 사랑은 이러해야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마다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으니, 그 자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지 않은 이상적인 사랑의 예찬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함이 오히려 마음에 자리잡는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려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던 것이 어느 순간, 그렇게 세세하고 솔직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기에 그의 심적상태와 상황이 오롯이 전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조금은 무겁고, 난해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경계에 대해,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 듯한 혼돈 속에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우리네 삶 속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랑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사랑과 이별, 고독과 죽음 등 삶에서 접하게 되는 감정에 대해 뼛속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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