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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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하면 『여행의 기술』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읽겠다며 미루고 있었다. 지금껏 그저 제목만 아는 책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을 다 읽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도 천천히, 곱씹어보며 읽고 싶은 책이었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공감하게 되는 부분도 상당히 있었다. 비록 '이렇게까지?' 라고 느꼈던 부분도 많았지만.

 

 역자는 이야기한다. "참 색다르고 예민한 친구다" 우리에게 낯익은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약간은 염세적인 분위기. 알랭 드 보통은 세상을 편히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그런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묘하게도 책읽기를 통해서 그런대로 살 길을 열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325쪽)

 

 사실 이 책을 읽은 데에는 목적이 있었다. 여행에 대한 공감할 만한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좀더 관찰력 있게 주변을 살피며,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짚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읽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색다른 느낌이었다. 포장되지 않은 솔직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솔직해서 매력적이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느낌, 음식 재료의 맛을 100% 살린 요리의 느낌이다. 미사여구 필요없이 핵심을 찌르는 단순함이다. 꾸미지 않은 숭고함이 느껴진다.

 

 여행을 하면서 나도 한 번 쯤은 느껴보았지만, 그런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기 민망하다고 살짝 접어둔 것이 이야기된다. 직접 여행을 하거나 여행 서적을 볼 때면 주로 눈에 확 띄는 사건이나 좋았던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안 좋았던 기억은 묻어두고, 좋았던 기억만을 잘 편집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이 책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남들과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기에는 유별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동행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기에, 이런 것은 그냥 혼자 잠시 생각하다가 접어두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같은 느낌을 갖는 옛 문인들도 있고, 적절히 잘 선별해내어 이렇게 책으로 엮어낸 알랭 드 보통도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한 느낌마저 든다.

 

 별로 중요치 않다는 느낌에 기억에서 편집된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잘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 장으로 여행에 대한 강한 갈망을 느끼며 여행이 시작된다거나, 우리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여행의 위험, 우리가 상상하는 장소와 실제 장소와의 괴리에 대해서도 어쩜 그렇게 공감하게 되는지.

 

 여행 가이드북에 나온 그곳에 대한 설명과 실제 여행지에서 느낌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또한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별 3개짜리 데스칼사스 레알레스 수도원에 들어가기 오래 전부터 나의 반응이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평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벽화로 장식된 웅장한 계단은 위층 수도원 회랑으로 통하는데, 이곳의 예배당들은 뒤로 갈수록 화려해진다." 그 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149쪽)

 

 이 책에서 여행의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의 전 과정을 살펴보게 된다. 각 과정에는 여행 장소안내자가 있다. '안내자'는 샤를 보들레르, 귀스타브 플로베르, 윌리엄 워즈워스 등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 주제에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며, 여행 속의 여행으로 안내해주는 것이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정 부분 공감하게 되는 영역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특정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이 책을 통해 '여행'이라는 것 자체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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