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소설 속 세상으로 쏙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봉순이 언니>,<고등어>,<사랑 후에 오는 것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가니> 등을 떠올려보면,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 느낌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그런 느낌을 떠올리며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의 경우에는 특히 스포일러로 김 새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기 때문에 제목과 작가 말고는 다른 정보는 눈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작품 <높고 푸른 사다리>의 첫 시작은 종교적인 것이기에 생각지 못했던 당황스러움이 있었다. 시작부터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예전의 몰입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강한 흡인력으로 나의 온신경을 소설 속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이번 작품 <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 청년수사 요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등장 인물들의 마음 속으로 내 마음이 겹쳐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이고, 인간적인 고뇌를 하며, 방황하는 영혼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된다. 인간으로서 감내해야할 시기적인 역사와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을 뼛속깊이 느껴보게 된다. 이런 것이 진정 소설을 읽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섬광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지상에 머문다.

 

-윌리엄 블레이크

 

 가장 먼저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로 글을 시작하는데, 이때만 해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채우리라 짐작하지는 못했다. 소희가 등장하며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만 이 책을 읽어나가던 나의 생각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 책에서는 와닿는 문장으로 잘 담아내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우주가 기우뚱했고 그리고 다른 우주가 생겨나버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154쪽) 요한 수사의 소희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절정의 문장이었다.

 

 사랑은 삶이다. 이 책을 통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사랑과 함께 동반되는 다른 감정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뇌, 의심, 혼돈, 배신, 죽음, 침묵, 미래에 대한 공포, 위선 등 사랑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사랑과 동반되는 감정이기에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심정으로 종합화된다. 결국 우리네 삶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감정을 이 책을 읽어나가며 만나게 된다.

 

 이 책의 반전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소희의 이메일이었다. 예전에 <러브레터>라는 일본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주는 느낌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마지막의 안타까움, 이미 과거의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어긋나는 운명의 처절한 아쉬움에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손에 쥐어들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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