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의 스케치북
존 버거 글.그림, 김현우.진태원 옮김 / 열화당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자 생각한 것은 표지에서 보게 되는 드로잉의 역할이 컸다. 펜에 물을 묻혀 쓱쓱 그려낸 듯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들어 드로잉에 대한 열정이 시들어가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며 그 열정을 되살리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이 책은 나에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 존 버거에 대해 읽으면서 놀랐다. 1926년 런던 태생으로,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소개한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가 살면서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 해오고 있고, 저서도 다양하고 많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나보다.

 

 이 책을 읽고자 펼쳐들었는데, 저자의 말이 색다르게 담겨있다.

 

이 사랑스러운 파슬리 드로잉은

오직 이 책의 한국어판을 위한 작품입니다. - 존 버거

 

미소짓게 되는 서문이었다. 한국어판 서문을 대신하여, 존 버거가 글과 함께 보내온 드로잉이라고 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 눈에 들어오는 서문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했다. 지금껏 드로잉책은 드로잉 관련 기법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담겨있거나, 여행 혹은 일상 속의 사색이 드로잉과 함께 구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과 드로잉의 만남이었다. 드로잉과 스피노자, 그 조합이 글도 그림도 마음에 들어오게 한다. 꽤 괜찮다는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존 버거는 영역본 <윤리학>을 인용하고 있고, 번역가는 라틴어판에서 직접 인용하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다른 한글 번역판을 이용하거나, 적어도 존 버거의 영역본을 그대로 번역해도 되었을텐데, 노력이 대단하다. 기존의 번역판을 따르기보다는 좀더 <윤리학>의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새로 시도해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 옮긴이 두 사람의 공통의 생각이었다.(180쪽) 그들의 노력 덕분에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면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존 버거의 이야기도, 스피노자의 <윤리학>도, 드로잉과 함께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종합적으로 내 마음에 파고든다. 철학과 드로잉,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따로, 글 따로가 아니라, 글에서 주는 느낌을 드로잉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고, 드로잉을 한 작품을 두고 거기에 부합하는 글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생동감 넘치는 힘을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