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코로나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싱숭생숭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나마 시름을 잊는다. 책이 있어서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특히 요즘은 여행을 하면 안되고 할 수 없는 시기이기에 여행을 더 갈망한다. 이럴 때에는 여행에세이로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에세이를 읽으며 직접 가본 곳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면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 이 책『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이다. 비까지 오는 날,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만, 상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의 저자는 김윤성. 22년간 창원시청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30여 개국 100여개 도시를 여행했다. 지금도 여전히 일하며 여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여행에서 삶의 은유를 찾아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듯이, 자기만의 은유를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꼭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모든 것에서 은유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비생산적인 은유를 비웃는 이 시대에 꼭 삶의 은유를 찾아야 한다. (207쪽)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며 어느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짚어본다. 이 책에 담긴 글의 제목은 오슬로행 완행열차, 17세 구도자 히치하이커 소녀, 이십 년 동안 조용히 앉아 있고 싶은 마을, 사랑을 주문하는 도시, 가난한 시인의 노란 꿈, 하이파이브하는 고양이, 우울이 낳은 사유의 흔적, 과거를 파먹고 사는 사람들, 오래된 상처와 마주하다, 우유니 사막의 별들이 키우는 아이, 일상 중독자의 여행법, 우리 안의 작은 팔레트 등이다. 아이슬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영국, 독일, 이태리, 볼리비아, 몽골, 일본, 캐나다 등에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나고 보니 나는 여행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움직이며 다니기 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혼자 사색에 잠기기를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났던 것일까. 어쩌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서 낯선 상황에 던져진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주었던 것 아닐까. 프롤로그를 보며 저자의 생각과 내 마음의 교차점을 만나고 나니, 한껏 이 책에 빠져든다. 저자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다른 이의 여행 이야기를 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요즘의 나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내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지도 한 장을 들고 수없이 많은 도시를 헤맸다. 하지만 일상이 우리에게 주는 무덤덤한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남의 일상을 지켜볼 뿐이었다. 남의 일상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을과 밤을 보았다. 그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 조금씩 아주 주관적이었던 내 일상이 점점 객관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남의 일상을 바라보다가 내 일상도 변해갔고, 예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되어갔다. 이제 그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다. 수없이 걸었던 이야기, 떠나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 철저히 외로웠던 이야기들을. 그렇게 쏟아 붓고 나면 텅 빈 나를 데리고 아직도 시작되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다. (9쪽_프롤로그 中)

 


그 순간 내 여행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행은 기대만큼 아름답거나 근사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보다 훨씬 비루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가끔 오늘처럼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여행에서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이 한 풍경을 목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풍경을. (133쪽)


이 책에는 20년 여행고수가 겪은 22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슬로 행 급행열차를 놓쳐서 완행열차를 타게 된 이야기부터 펼쳐진다. 여행은 그렇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 여행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계획이 틀어지거나 생각지 못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틈틈이 여행을 떠났던 저자의 이야기에 시선을 집중해본다. 왜 여행을 하는가, 어떻게 여행을 하는가, 다른 이들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와 함께 그에 대한 사색이 잘 녹아들어서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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