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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 p.53
지금껏 살아오면서 거의 항상 내 얼굴은 진실을 감췄다. 이번 경우에는 차 안으로 도망쳐서 집에 가고 싶었다. 마이클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평상시의 실패한 상태로 복귀하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 p.94
모자를 단단히 여미고 상체를 숙인 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 속을 걷기 시작했다.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고속도로 위로 떨어졌다. 중년에 꿈을 좇는 게 잘못일까? 아빠를 감당할 수 없는 여행에 억지로 끌어들인 게 잘못일까? 계획한 시간에 맞추려고 팔을 흔들고 다리를 강제로 움직였지만 그런 움직임은 온갖 기억을 들쑤셔놓을 뿐이었다.
▶ p.118
"언제 저렇게 아이가 되셨다니? 내가 가여운 부모 노릇을 하고 있잖아."
앨리스가 불을 껐다.
"이 시기를 즐겨, 안드라.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돌아가시면 다 그리워질 거야."
나는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난 절대로 이 시기가 그립지 않을 거야."
정말로 그립지 않을까?
그저 나는 마흔다섯살의 딸이 팔십세 아버지와의 관계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부녀지간이기에 마흔다섯살이 된 딸이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단 말인가. 부녀지간의 여행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이더라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팔십세의 나이 지긋하신 아버지이기에 더더욱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건강상에 문제로 힘드실텐데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수필이다. 그러나 읽어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소설같은 느낌이 드는 수필이다. 대화가 꽤 있다보니 문뜩 소설인가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루하지않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작가가 이 책을 의식의 흐름 그대로 적어놓았기에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었고,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읽고있자니 이 책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수필도 자신의 생각을 적은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느끼기에 소녀감성이 꽤나 묻어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난 아직 사십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고 있자면 나도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나이대인가 하는 착각을 하곤 한다. 예전에 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생각보다 이십대라는게, 크게 대단한 것은 없구나.'라는 생각을 말이다. 10대 시절에 나는 20대가 된다면 참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저 20대라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할 것 같았다. 성인이니까. 그리고 10대보다는 뭔가 더 지혜롭고 더 어른에 가까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있자면 아마 삼십대에도 사십대에도 그런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10대보다는 20대에 그리고 20대보다는 30대 그리고 40대에 더욱 지혜롭고 지적이겠지만 그 나이대가 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대단한 나이는 아닐 것이다.
난 작가가 정말 아버지와 친하고 애뜻하고 따뜻한 관계이기에 아버지와 여행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않고서야 자진해서 단 둘이 여행을 가려 생각하겠는가? 가족여행도 아닌 단 둘이서만? 그리 쉽지 않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틀렸고, 그녀는 그리 애뜻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녀간의 여행을 자진해서 계획했으며 아주 큰 문제없이 잘 마치고 돌아왔다. 우여곡절도 참 많았지만 어쨌든 큰 문제없이 끝을 잘 맺었다. 이 묘한 감정을 어찌 설명할 길이 없다. 80세가 된 작가의 아버지도 가정환경이 아주 좋지는 않았으며, 45세가 된 작가 또한 아주 평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묘하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살이 다 비슷비슷하구나.' 쉽지만은 않은 세상살이지만 그렇다고 혼자만 힘들지는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되뇌이게 되었다.
누군가 딱 정해서 이 책을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가족의 따스함과 이 묘한 감정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 묘한 감정으로 인해 생각이 참 많아진다. 내가 부모님께 했던 행동, 말 등등이 생각나고 부모님이 조부모님께 했던 행동들과 말도 생각이 난다. 부모님이 왜 그러는지 이해못했던 행동들이 작게나마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내가 모르는 많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해못할 것이라도 어느정도 이해한 것처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나의 감정을, 생각을, 느낌을 겪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하고, 그리고 만약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