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사령장관이 미드웨이 공략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는 하와이 점령을 위한 발판 마련이었다. 또한 존 스테판의 <Hawaii under the Rising Sun>에서도 일본군은 예전부터 하와이 침공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으며 1942년 9월까지도 하와이에 대한 상륙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만약 일본군이 미드웨이를 점령했다면 하와이까지 진출하는게 가능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측 가능한 조건 하에서는 당시 일본군은 절대 하와이를 점령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먼저 막강했던 미군의 하와이 방어 전력을 봐야 한다.
1942년 4월 하와이 주둔 미군 지상병력은 6만명이 넘었고 육군항공대는 8,900명이었다. 거기다가 미 육군은 빠른 시일 내 육군 지상군과 항공대 규모를 11만 5,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참고로 이 수치는 해군 전력은 제외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병력은 오아후 섬에 주둔했는데 이 섬은 기동방어전을 펼치기에 좋은 지형이었다.
반면 일본군은 하와이를 점령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3개 사단에 4만 5,000명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이건 턱 없이 적은 병력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군은 7,000km가 넘는 곳을 가로질러 이 규모의 병력을 수송할 만한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고 설령 어찌 저찌해서 섬을 점령한다고 해도 워낙 본토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라 보급을 충분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 해서 수송 선단을 확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일본군은 미군의 방어를 뚫고 상륙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군에게는 상륙작전 지원에 필요한 함포 사격이나 항공지원에 대한 교리가 없었고 오아후 섬의 크기와 미군 방어선의 깊이를 생각해보면 우회기동은 불가능하기에 정면 공격만 가능했다. 당연히 과달카날의 사례처럼 저 상황에서 정면 돌격했다간 바로 박살날테니 성공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다.
더욱이 일본군은 항공모함들로만 하와이의 제공권을 얻어야 했다. 약 2,000km나 떨어진 미드웨이에서 하와이 상륙 작전을 지원하는 일은 말도 안되니 말이다. 거기다 일본군 기동부대는 전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도 수주일 동안 적대수역에서 전투를 하며 적을 굴복시킬 수준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1942년 4월 하와이에는 275기의 작전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또 새러토가와 와스프가 작전기들을 추가로 수송해올테니 일본군은 항공모함 6척을 죄다 끌고 왔어도 하와이 주둔 미군기와 비슷한 수의 비행기들을 가지고 전투를 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하와이 해역에서 항공모함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보급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1941년 12월 이후 일본군 점령지들에 공업지대가 전무하다는 부분도 눈여겨 볼 만하다. 당장 독일만 하더라도 체코슬로바키아 공업지대와 프랑스 파리, 생나제르 조선소, 루마니아의 유전지대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일본은 태평양 지대에서 구축함 이상의 군함을 만들 수 있는 조선소가 없었다. 규슈 이남의 일본군 점령지 중 쓸 만한 드라이독은 기껏해야 싱가포르 정도가 전부였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에 획득한 자원들도 일본으로 싣고 가야만 완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거기다가 일본 본토의 공업지대는 1930년의 군비 확장 기간 동안 생산한계점에 도달해 있었고 생산잠재력이 충분한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단기간 내 설비를 확충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무리하게 확장했던 남태평양 지역은 자원 획득 관점에서 불모지였다.
출처: 조너선 파셜,앤서니 털리, <미드웨이 해전: 태평양전쟁을 결정지은 전투의 진실>, 일조각, 2019, p603~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