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 교환의 세계 -하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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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 세계의 시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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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 일월총서 71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자동 옮김 / 일월서각 / 198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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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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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말은 포근하다. 엄마라는 말의 의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단 한번의 입 벙긋이면 충분하다. 생김새부터가 안정감이 드는 ‘ㅁ’이라는 받침이 두번 겹쳐 충돌해 나오는 엄마의 발음은 어쩜 아빠의 딱딱함과 다른지. 엄마라는 편안하고 안정감있는 단어는 엄마라는 대상이 지닌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엄마’는 저명한 언어학자 쏘쉬르가 확립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이 틀렸음을 알려주는 예인가. 아니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는 쏘쉬르가 옳았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준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태어날 때는 누구의 딸이었고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사랑을 꿈꾸는 소녀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우리에게 개인으로서의 엄마는 사라진다. 오직 엄마라는 통념적 위치에 한 인간을 재단해버린다. 마치 엄마라는 기표는 태생적으로 헌신의 기의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엄마는 특수한 시대와 특정한 공간에서만 사회적 배치에 따라 특정한 기의가 결정된 것뿐이다. 작가는 그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엄마를 그 위치에서 지워버린다. 소설의 첫 문단은 단 하나의 잔인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10면)

텅빈 기표에 이제 새로운 기의들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그리하여 주인기표를 차지하던 엄마가 사라지고 그 밑에 들끓던 새로운 의미들이 마구 그 구멍으로 쏟아져나온다. 그런 새로운 배설물을 아들과 딸 그리고 아빠가 토해낸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이 강요했던 엄마 주인기표에 억압되어 있던 존재의 배설물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엄마를 새롭게 기억하기 시작한다.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외삼촌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엄마가 외삼촌을 향해 오빠! 반가운 콧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아, 엄마에게도 오빠가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36면)

특히 결혼했음에도 다른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은 ‘소녀’라는 소설 속 반(?)사실적 엄마의 본명과 정확이 들어맞는다. ‘대녀’에 이은 ‘소녀’라는 가부장적 작명법에 따라 이름붙였다는 부연장치로서 사실주의의 함량을 높이려는 듯 보이지만, 소녀는 본디 사회가 규정해버리기 힘든 폭발적 존재이지 않나. 그렇게 엄마는 마치 멋모르게 세상을 향해 내지를 수 있는 열정의 소녀이다.

그렇듯 소녀의 순수한 열정은 딱히 별다른 사회적 관점에서 쓸모없는 한 남자에 대한 애뜻함으로 남아 있다. 엄마의 고단한 삶을 지탱했던 버팀목은 국가가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자식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소녀로 기억하는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236면)

따라서 후반부 큰아들의 깨달음은 비단 그의 깨달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기억하고 규정해놓은 엄마를 복합적 인간으로서 이해하는 작가의 깨달음일 가능성이 높다. 즉 잃어버려서야 깨닫게 되는 엄마의 소중함에 머무는 차원을 넘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엄마의 일생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인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272면)

그러나 기표와 기의의 냉혹한 자의성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작가 스스로 힘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엄마의 실종이란 극적 사건이 더 강력한 가부장적 ‘엄마성’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변주곡에 불과한 것이었나. 어쨌든 탈주했던 엄마의 기표는 그 심연의 무서운 아가리를 벌리며 무수한 의미들은 산출했으나 엄마는 재탄생하기보다 기존의 가부장적 상상력에 편안히 머물러 버린다. 잔인한 엄마의 실종은 결국 희생과 헌신의 엄마의 복귀로 끝나버린다.

“장미 묵주를 찾아 사람들 사이를 바삐 빠져나가던 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년이 넘는 나날을 저 높은 천장의 들보에 매달려 작업을 했단 말인가. 거대한 벽화는 그동안 책 속에서 봐오던 것과는 달리 그 크기부터 압도해왔다. 이 작업을 마쳤을 때 얼굴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천지창조 아래 서 있는 너의 얼굴 위로 작업자의 고통과 열정이 물처럼 쏟아져내렸다.”(277~78면)

엄마는 천지창조를 위해 헌신하는 작업자의 고통과 열정의 존재가 되어버린다. 위대한 작품인 자식을 만들기 위해 사년이 아닌 수십년의 희생을 천장의 들보에 매달리 위태로운 작업을 하다가 결국 얼굴이 돌아갈 정도의 작품 속 엄마가 뇌졸중을 견디듯 그 고된 작업의 현장을 작가는 마지막 엄마를 기억하는 장소로 서술한다. 더군다나 “엄마를 부탁해”라며 슬프게 되뇌는 엔딩장면도 어쩜 이토록 복고적인지.

“숨을 거둔 아들의 겨드랑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의 손가락들이 길게 뻗어나와 너의 빰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 여기에 찾아온 것은 이 피에타상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 그러나 막상 투명한 유리 저편 대좌에 앉아 창세기 이래 인류의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팔로 끌어안고 있는 여인상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는지도. (···)너는 성당 입구까지 걸어나와 긴 회랑과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광장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281~82면)

결국 엄마의 실종은 성모라는 고귀한 전통적 엄마의 귀환으로 마무리된다. 복고풍으로 끝난 대서사시가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신경숙의 소설은 작금의 한국소설에서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새로움을 독특한 소재나 독자와 소통은 개의치 않는 문체적 일탈에서 찾으려 애쓰는 현실에서, 너무도 진부한 엄마라는 소재를 화법의 변화만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이토록 새롭고도 슬픈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 불리기 충분하다.

소설 속 엄마의 비현실적 이름인 ‘소녀’와 소설의 스토리에 오묘한 일관성을 확보하게끔 도와주는 ‘파란 슬리퍼’는 단순한 사실주의를 넘어선 리얼리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사회와 고립된 고결함을 추구하는 순수문학과 사회적 메시지만 담으려는 사회문학의 이분법을 넘어선 ‘스며들면서 명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낸 다음의 부분은 읽으면서 왠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나는 처음 보았네. 최루탄을 맞고 죽었다는 겨우 스무살밖에 안되었다는 그 젊은이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내가 몇번이나 물어봐서 네가 몇번이나 일러줬는데도 가물가물하고나. 그 젊은이가 누구였기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게냐? 어찌 그리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꼬. 내가 너를 따라서 시청 앞까지 그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동안 혹여 너를 놓칠까봐 네 손을 찾아 꼭 붙잡고 또 붙잡고 하는 걸 보고 네가 그랬재.”(220면)

고로, 책의 뒷표지에 삽입된 문학평론가 백낙청의 평가는 단지 광고효과를 위한 추어올림이기보다 너무도 적확한 평가다.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의 작품 중에서도 확실히 성공작이지만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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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비전 1 - 서구 정치사상사에서의 지속과 혁신 정치와 비전 1
셸던 월린 지음, 공진성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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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을 것 같다. 답답한 한국 제도정치 하에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모두들 고민하는 현재. 꼭 필독할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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