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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lastmarx > 정치경제학 비판 참고문헌들

  2000년 가을에 나온 진보평론 5호에 정치경제학 비판과 관련한 유익한 글이 번역되어 실렸다. 제목은 <외국인 기고/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로 미하엘 하인리히(Michael Heinrich)가 작성한 글이다. 이 번역문은 305쪽부터 348쪽까지 실렸는데 인쇄물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우선 전문을 통독하고 난 뒤 특정 부분을 음미해도 좋겠다.  

  ☞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  

몇년 만에 다시 읽다가 일부 흥미로운 부분들을 노트해 본다. 강조는 내가 했다. 

  I. Karl Marx (1818-1883)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학문분류에 따르면 맑스는 철학, 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과 같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이 학문 중에서 많은 분야가 (아마 정치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당시 아직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맑스의 각 저서에서도 중첩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초기의 이같은 학제간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맑스가 쓴 글의 높은 수준이다. 그는 단순히 기존의 학문을 계승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려 했다. 여기서 맑스 저작의 기초를 이루는 비판개념은 엄청나게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즉, 이러한 여러 학문분야 내의 특정 명제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여러 학문의 뿌리에 (이 학문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특정 이론이 생겨난다)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천적-정치적 목적으로 수행해 기존 사회체제에 혁명을 일으키는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이론적, 실천적인 요청에 대해 맑스는 평생 충실했고 이같은 요청이 소위 맑스 저작의 통일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준다. 하지만 그의 이론적 비판의 중점이나 거기에 사용된 개념적 구상은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 그의 이론적 성향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끊임없는 연속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변화를 맑스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근본적 단절이라고 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맑스에 관한 문헌에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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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정치경제학비판에 관한 20세기의 문헌들
  1) 정치경제학비판의 경제학적 해석
 

  이 해석은 맑스의 Kapital을 무엇보다 다른 경제이론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밝히며 부르주아이론의 조화적인 견해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공황을 그리고 몇몇 해석에서는 붕괴까지 증명하는 전문경제학 저서와 거의 다름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추구했다는 것, 개개의 이론뿐만이 아니라 학문 전체를 비판하려 했다는 것, 부르주아적 관계가 만들어낸 상품물신숭배, 화폐물신숭배, 자본물신숭배를 폭로하려 했다는 것, 이런 점들은 다른 많은 저서에서 퇴색되어 있다. 그래서 단순한 경제학을 넘어서는 맑스 저작의 사회이론적 측면이 중요한데도 종종 불충분하게 고려되어 있을 뿐이다.

  이 해석방향은 Karl Kautsky, Karl Marx Ökonomische Lehren. Gemeinverständlich dargestellt und erläutert (1887, Bonn 1980)에서 Kapital 제1권의 대중적인 요약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엥겔스가 계기를 부여한 역사주의적 해석이 Kautsky에게는 더 많이 진행되었다. 맑스의 Kapital이 자본주의 발달사의 서술인 것처럼 보였고 형태분석은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Kapital이 마치 제1권으로 이미 거의 완결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Kapital 세 권이 모두 출판되고 나서도 대다수 노동운동권에서의 Kapital 수용은 제1권에만 (혹은 제1권의 요약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제2권과 제3권은 전문학자들만 보는 문헌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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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뿐만 아니라 시간상 다소 지체되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Louis Althusser, Das Kapital lesen (1965)은 맑스 논쟁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한다. 구조주의에 영향을 받은 Althusser는 Kapital의 “헤겔주의적”인 독서법은 물론 “역사주의적”인 독서법도 반대하고 “과학적”인 Kapital과 아직 철학적-이데올로기적인 초기저작 사이의 단절을 강조했다. Kapital의 방법론적 문제는 헤겔의 논증스타일을 다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과의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Althusser 해석의 중심개념은 “구조적 인과성”, “구조를 통한 결정”이다. 그 개념은 그에게 단지 구조를 위해서 현실적 역사주체를 퇴색시켜버린다는 비난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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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pital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1857/58년의 Grundrisse는 60년대부터 서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했다. 왜냐하면 Grundrisse에 “철학적” 초기저작 (30년대 초반부터 대단히 중요해진 1844년의 Pariser Manuskripte)과 1867년의 Kapital 사이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매개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Grundrisse가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대단히 뛰어난 연구는 Alfred Schmidt가 Der Begriff der Natur in der Lehre von Marx, Frankfurt 1962에서 내놓았다. 그는 자연변증법에 관한 엥겔스의 관념을 비판하고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출발하는 유물론의 개념을 서술했다. 하지만 Grundrisse는 Roman Rosdolsky, Zur Entstehungsgeschichte des ‘Kapital’, Frankfurt 1968의 방대한 저작의 출판으로 그 진정한 “출현”을 경험했다. 그 저작의 대부분은 Grundrisse에 관한 자세한 주석이다. 그것으로 맑스 텍스트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맑스의 기본적인 서술을 상당히 일반적으로, 개별적인 문제를 상세히 토론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맑스의 전체 텍스트가 체계적으로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연구되었다. Rosdolsky가 서론에서 Grundrisse에 중심이 되는 “자본 일반”의 범주를 강조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Kapital의 구조까지 해석한 것은 이후의 토론에서 특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나서 그 해석은 70년대에 많은 Kapital 해석에 받아들여졌다). 이 해석에 의문스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자본 일반”이라는 범주를 Kapital 전3권의 단 한군데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해석은 다른 여러 방향에서 계속 추구된 맑스 논증의 범주논리에 대한 인식을 민감하게 하였다.

  계속되는 토론에서 중심이 되는 글은 Hans-Georg Backhaus, Zur Dialektik der Wertform (1969, in: Alfred Schmidt (Hrsg.), Beiträge zur marxistischen Erkenntnistheorie, Frankfurt. 이 글은 Hans-Georg Backhaus, Dialektik der Wertform, Freiburg 1997에 재인쇄됨)과 Helmut Reichelt, 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bei Karl Marx, Frankfurt 1970이 내놓았다. 여기서는 맑스의 가치이론과 잉여가치이론을 위에서 말한 “경제학적” 해석에서와 같이 단순하게 그리고 일차적으로 상대적 가격체계와 착취를 설명해야 하는 노동량이론으로 파악하지 않고 “왜곡”에 근거한 사회양식의 복합적 설명으로 해석한다. 그에 따라 관심이 더 한층, 이전에 오히려 소홀히 다루었던 맑스의 형태분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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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분석과 함께 헤겔철학 (특히 헤겔의 Wissenschaft der Logik)과 Kapital에 있는 맑스 범주설명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이는 일부 헤겔 전문가들을 맑스연구로 이끌었고 (예를 들면 Hans Friedrich Fulda, These zur Dialektik als Darstellungsmethode im ‘Kapital’ von Marx 그리고 Michael Theunissen, Krise der Macht. Thesen zur Theorie des dialektischen Widerspruchs, 두 논문 다 Hegel-Jahrbuch 1974, Köln 1975에 있음) 또 일부 맑스주의 저자들을 일종의 “헤겔맑스주의”로 이끌었다. 이 접근방법에서 맑스와 헤겔은 이중으로 교차되었다. 즉, 정치경제학비판이 내용상으로 헤겔철학의 유물론적 진리로 해석되었다(헤겔의 “세계정신”은 맑스가 분석한 자본운동의 신비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상으로 맑스의 변증법적 설명은 헤겔의 Logik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

*주) 그래서 한때 헤겔 공부가 Kapital을 읽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결론까지 나왔고 따라서 70년대의 많은 Kapital 강좌는 헤겔의 Logik에 대한 개요로부터 시작했다. 맑스-헤겔 관계에 대한 토론이 이미 두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연구하는 시작단계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다는 점은 별도로 하더라도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이 헤겔 논리학의 “응용”이라는 주장 역시 예를 들면 이미 언급한 Louis Althusser (Das Kapital lesen, Reinbek 1972)와 Hermann Kocyba (Widerspruch und Theoriestruktur, Frankfurt 1979)의 책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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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와 80년대 초에는 두 권의 중요한 책이 맑스 정치경제학비판의 발달사를 연구했다. Winfried Schwarz, Vom ‘Rohentwurf’ zum ‘Kapital’, West-Berlin 1978은 이미 Roman Rosdolsky가 강조한 “자본 일반” 개념을, 특히 1857년부터 1872년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자신의 Kapital “구조사(構造史)”의 중심에 두었다. Fred Schrader, Restauration und Revolution, Hildesheim 1980은 Grundrisse의 전사(前史)를 맑스의 런던 연구노트에서 조사했고 Grundrisse에 있는 상품분석과 자본이론의 발전을 연구했다.

  Hans-Georg Backhaus의 노력은 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즉, 그는 Materialien zur Rekonstruktion der Marxschen Werttheorie (첫 3부가 1974년과 1978년 사이에 Gesellschaft. Beiträge zur Marxschen Theorie, Frankfurt의 시리즈 판으로 출판되었다. 70년대에 쓰여진 제4부는 H.-G. Backhaus, Dialektik der Wertform, Freiburg 1997에 비로소 출판됨)로 우선 “맑스” 가치이론과 “맑스주의” 가치이론의 차이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 엥겔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후자의 가치이론은 부르주아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가치이론과 “전(前)화폐적” 특징을 공유하는 (즉, 그것은 화폐이론과의 내재적 관계가 없는 가치이론이다) 반면 (가치형태분석을 핵심으로 하는) 원래의 맑스 가치이론은 바로 전(前)화폐적 가치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계획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Backhaus의 비판은 “맑스주의” 가치이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맑스의 이론 자체로 향했다. 맑스이론이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그 개념적 엄밀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맑스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쓴 1857/58년의 Grundrisse를 원래 맑스의 가장 중심적인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그 반면 나중의 저서들은 Grundrisse가 개괄한 계획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색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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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분기점을 이룬다. 1989/90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다. 그래서 교조주의적인 “맑스주의-레닌주의” 뿐만 아니라 바로 전체 맑스주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맑스주의도)가 신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물론 동구에서도 자본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승자처럼 보였다. 그에 따라 과거의 좌파 지식인들에게까지 맑스주의에 대한 후렴만 쌓여갔다. 맑스이론에 관한 토론은 - 비방하는 제스처 아니면 적어도 근본적 비판의 제스처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 표면상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고 정치적 토론과 학문적 토론에서도 더이상 커다란 관심을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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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초기 신자유주의의 전개에 관한 동시대적 관찰
생산의 정치 - 비판총서 2,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장체제
마이클 부라보이 지음, 정범진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마이클 뷰러워이

 

이 책의 지은이 마이클 뷰러워이는 2006년 현재 미국사회학회의 회장이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주제들이 외면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국의 제도권 사회학 주류에 대항하여, 그 내부에서 공공적 사회학 (public sociology)을 주창하고 있다. 이것이 학문의 성격에 대한 정치적 입장표명이라면, 방법론적으로는 “리플렉시브
(성찰적?) 에뜨노그래피 (reflexive ethnography)”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연구를, 이론적으로는 “사회학적 맑스주의 (sociological Marxism)”를 추구한다. 1985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뷰러워이가 사회학계의 거물이 되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예고한 책이었고, 이후 그는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사회학계 내부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표현된 뷰러워이의 주요관심들은 오늘날 그의 작업들 속에서도 일관적으로 관찰되어진다. 30여년을 한우물만 파는 그의 자세에 경외심을 가질 뿐이다.

 

 

중심개념

 

이 책의 중심개념은 아마도 공장체제 (factory regime) 혹은 생산체제(production regime)와 생산의 정치 (politics of production)일 것이다.  지은이는 일 (work) 혹은 노동 (labor)[어려운 말로 “노동과정” (labor process)]이 결코 정치와 이데올로기[어려운 말로 생산관계들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생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로부터 무관하게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고, 이 전제가 반영된 것이 바로 그 중심개념들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개념들이 추가된다. 그 중 중요한 하나의 개념쌍만 더 살펴보면, 그는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생산내부의 관계 (relations in production)”와 노동과 자본 사이의 “착취관계 (relations of exploitation)”를 구분한다. 여기에서 착취관계는 “생산관계 (relations of production)”의 일부이다. 생산양식은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생산내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동일한 종류의 생산내부의 관계를 서로 다른 생산양식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화는 바로 해리 브레이버만의 역작인 [노동과 독점자본]을 겨냥해서 고안된 것이다. 뷰러워이에 따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브레이버만이 탐구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안에 존재하는 노동과정이다 (그리고 뷰러워이가 보기에는 브레이버만이 말했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일반, 혹은 독점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과정 일반이란 것은 허구이다).

 

 

에뜨노그래피를 통한 비교, 다각적 비교를 통한 총체성의 구성

 

에뜨노그래피를 주요 연구방법으로 삼는 그의 경향은 이 책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이 책은 그가 미국 시카고 근처 공장에서, 헝가리의 공장에서, 또 잠비아의 구리 광산에서 실제로 일했던 체험들에 기반하고 있고, 그 체험들이 다른 이들의 참여관찰연구와 어울어져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이념형적 유형화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기반한 비교가 수행되는 통상의 연구와 달리, 유형화는 비교를 통해 구성된다 (서론의 표 참조). 샘플에 대한 분석에서 모집단 전체에 대한 추론을 유추하는 기존의 방법과 달리, 그는 미시적 컨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컨텍스트를 규정하는 총체성에 도달한다. 일반성은 개별적인 특수성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특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노동과정을 다루는 1장에서 그는 먼저 봉건제와 자본주의 하에서 서로 다른 잉여수취 방식을 비교한다. 경제외적 수단에 의존하는 봉건제에서 잉여추출은 가시적인 데에 반하여 (농노가 수확한 부분에서 영주가 가져가는 몫과 농노에게 남는 몫은 영주와 농노 모두에게 명확하다), 노동시장에서의 계약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잉여 착취는 비가시적이다 (이윤은 노동과정 외부의 시장을 통해 획득되며, 임금은 애초의 계약에 따라 일정 노동기간이 경과하면 지급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그 관계의 핵심을 은폐한다.

 

이어서, 그는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공장체제의 다양한 유형들을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구별해낸다. 그 기준은 (1) 노동과정, (2) 기업간의 시장경쟁, (3) 노동력의 재생산, (4) 국가의 개입이다. 이를 통해 경쟁 자본주의 하에서는 (1) 시장 전제 (market despotism), (2) 가부장적 전제 (patriarchal despotism), (3) 온정주의적 전제 (paternalistic despotism), (4) 기업 국가 (company state)의 유형들이 준별된다 (2장 1절 끝의 그림 참조). 또 경쟁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함에 따라, (5) 헤게모니적 체제 (hegemonic regimes)가 등장한다. 그러나 선진국 헤게모니적 공장 체제도 신흥공업국들의 등장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자본의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하여 (6) 헤게모니적 전제로 변모하게 된다. 여기에 헝가리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7) 관료적 전제, (8) 관료적 교섭 등이, 또 잠비아 등의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9) 식민적 전제 등이 추가된다.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이처럼 다각적 비교를 통해 구성된 유형들이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을 통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존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도전과 지양

 

뷰러워이는 훌륭한 리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스카치폴의 역작인 [국가와 사회혁명]을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와 대별시킴으로써 스카치폴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뷰러워이의 이 리뷰는 브레너의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 만큼이나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얼마전에는 폴라니와 그람시에 대한 뛰어난 이론적 통찰을 보여준 바도 있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내가 알고 있는 맑스주의자 중에서 이 책에 이름이 안 나온 맑스주의자는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뷰러워이는 맑스를 포함하여 그들 모두와 대결한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나의 맑스주의는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은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월러스틴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브레이버만에 대한 비판은 치밀하고 가혹한 데에 비하여, 월러스틴에 대해서는 반쯤 동조하면서도 또 브레너와 스카치폴의 월러스틴의 비판을 수용하는 밋밋한 태도를 보인다. 월러스틴이 얼버무린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얼버무린다는 느낌이다. 좀 더 나갔을 수는 없었을까… 다소 아쉽다.  

 

 

초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동시대적 관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감탄했던 점은 이 책이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던 당시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 성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특히 “헤게모니적 전제”의 등장을 서술할 때의 뷰러워이의 목소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97년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체제의 변화를 말하는 학자들의 목소리와 별 차이가 없다. 출판된지 20년이 넘어도 시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은 책

해리 브레이버만, [노동과 독점자본],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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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그리고 ‘사회이행’ 1


진보평론  제22호
이광일ꋯ정치비평 편집위원

1. 들어가며

지난 4․15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함으로써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민주노동당에 어떤 위상과 의미를 부여하든 그것을 행위주체로서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그 동안의 비판적 논의, 특히 좌파 안에서의 논의들은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도 ‘노동자계급정당’의 출현에 대한 주의설적인 기대와 맞물려 외재적으로 진행되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제도 안에 둥지를 마련함으로써 이제 진보정치세력도 이른바 운동정치와 제도정치의 관계설정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떤 정당인지, 그리고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이 과정에서 진보정치세력들이 부르주아정치를 넘어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포함된다.
첫째,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치적 경향들,’ 혹은 ‘정파들’에 대한 이해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형성과정, 즉 민주노동당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현실화되었는지, 그 궤적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은 크게는 조직, 이념의 차원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 단절하고자 했던 진보정치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지만, 작게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들이 어떻게 하나로 결합하여, 오늘과 같은 ‘동반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둘째, 민주노동당 안에 포진해 있는 각 정파의 노선과 ‘이행전략’ 등에 대한 이해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단일한 하나의 블록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재고는 제도 밖에 머물러 있는 좌파 진보정치세력들이 민주노동당과 어떠한 관점에서 어떻게 연대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세력들이 연대와 사회이행을 고민할 때, 결코 우회할 수 없는 국가의 문제, 민주주의의 위상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2. 민주노동당은 어떤 정당인가

1) 형성과정과 내부구성

국제노동운동사에서 정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는 특정사회의 자본주의 성숙 정도, 그것이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정치적 상황, 특히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헤게모니와 역할 정도, 그리고 노동운동의 내부 구조와 양상 등에 따라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양태로 대별할 수 있다.
일반논문/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그리고 ‘사회이행’
영․미계에서는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자정치운동을 규정지었다면, 독일과 같은 후발사회에서는 노동자정치운동이 매우 중요한 선도적 역할을 하였고 대중노조운동은 이 속에서 영향 받으며 발전하였다. 반면 라틴계는 노동자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이 오랜 동안 분리되어 존재하였다. 독일의 경우, 자본주의의 미성숙과 부르주아지계급의 헤게모니 부재는 이들을 봉건세력과 동맹하도록 강제하였으며 정치적으로 그것은 ‘비스마르크체제’로 표현되었다. 1878년에 실시된 ‘사회주의자진압법’은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이었고 따라서 국내외에서 혁명적 지식인, 활동가들에 의해 수행된 비합법운동에 의해 노동운동이 주도되었으며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물론 그와 분리될 수 없는 민주주의운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71년 빠리코뮌의 좌절이후 혁명적 정치운동과 노동자 대중운동이 분리되면서 ‘생디깔리즘’이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경과하며 진보적 노동운동이 제거된 이후 새로이 출발한 한국의 노동운동은 애초 이승만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유사국가기구로서 출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임송자, “한국노총연구”(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3); 최장집, ꡔ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ꡕ(열음사, 1986) 참조.
이후 냉전분단구조 속에서 강제된 파시스트국가권력의 물리적 억압과 통제는 노동자정치운동의 성장은 물론 대중적인 노조운동의 존재마저도 위협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대중운동은 상대적으로 반공에 대한 자기검열로부터 자유스러웠던 기독계, 그와 연계된 조직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권리신장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80년대 급진적 노동자정치운동이 출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이, 나아가 노동자계급운동이 미발전된 이유로 국가권력의 탄압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였다. 한국의 부르주아계급은 냉전분단체제 하에서 국가권력을 등에 없고 급속히 성장하였다. 이들은 지갑을 위해 ‘권위주의세력,’ 파시스트정치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정치세력들 또한 이들과 근본적으로 대립하지 않았다. 수구정치세력과 자유주의정치세력은 경제문제에서 상이한 견해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이들을 갈라놓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이광일, “한국의 민주주의와 노동정치: 급진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중심으로”(성균관대 정외과 박사학위논문, 1999) 참조.
물론 파이를 키우는데 목적을 둔 수출지상주의 정책과 분배를 고려한 정책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를 지니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갈등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이러한 정책의 차이보다 권력에의 접근가능성 문제와 연결된 정부구성방식의 문제였다.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정치적 태도를 결정지은 것은 집권을 위한 제도적인 경쟁가능성의 보장 여부였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행태는 수구정치세력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민중운동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것은 민중운동 안에서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좌파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나타났다. 70년대 ‘비판적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던 자유주의 좌파의 민중운동에 대한 헤게모니는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념, 조직에서 저열한 상황에 있던 노동자계급은 항상 이들 정치세력의 후미에 존재하며 그들의 권력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80년대는 파시스트세력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벌인 권력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노동자계급운동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바로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급진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70년대 재야 출신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적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세력은 이른바 80년대 사회변혁세력들이다. 이 가운데 현재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고 있는 세력은 수차례의 진보정당건설운동을 거치며 수구정치세력 혹은 자유주의정치세력에 동화된 부분을 제외한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 이른바 ‘노동자의힘’ 등 ‘계급적 좌파’ 또한 민주노동당에 참여치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회변혁의 시대’였던 80년대에도 진보진영은 비판적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들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표현된 대중운동 속에서 자유주의 명망가들의 영향력을 뛰어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등 비판사회과학이 소개되어 ‘비판적 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지속되었으나 대중적인 영향력의 측면에서 이들은 여전히 미약한 존재였다. 특히 87년 7-8월에 발생한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저항과 투쟁은 기존의 소규모 조직 활동에 익숙해 있던 이들 급진정치운동세력들이 대중운동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매우 제한시켰다. 이들은 다만 대중투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그것을 지원하고, 이 투쟁의 흐름을 어떻게 진보정치의 강화로 모아낼 것인가에 고민을 집중하였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엮음, [87’-88’ 정치위기와 노동운동-인노련 선집](거름, 1991); 이광일, 「민주화이행,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 그리고 헤게모니」 ꡔ진보평론ꡕ9호(2001) 등을 참조.
물론 이들의 활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감성적 수준의 성격이 강하였다. 70년대부터 사용된 ‘재야’라는 용어는 여전히 대중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80년대 민중운동은 급진운동들의 출현과 성장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변화된 현실과 무관하게 ‘비판적 자유주의’의 상표가 된 ‘재야’라는 70년대식 용어를 통해 급진운동을 포함한 대부분의 운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대중이 70년대식 ‘재야’라는 개념으로 급진적 사회운동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민중운동의 통합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국민운동본부는 물론 노동운동의 본령이 정치투쟁임을 선언한 서울노동운동연합조차도 그 내부의 정치적 입장, 철학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결코 70년대 재야운동의 뿌리와 영향으로부터 단절될 수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70년대 산업선교회 활동과 민주노조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비판적 자유주의자, 그리고 학생운동출신의 혁명적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이고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재야’로 뭉뚱그려져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투쟁이야말로 최소민주주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축으로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운동이 분리되는 첫 계기였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받아들여지자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그래 왔듯이 6.29선언에 동의하며 발 빠르게 민중운동과 결별하였다. 그 해 12월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민중운동진영은 친자유주의세력―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과 김영삼을 염두에 둔 ‘후보단일화론’으로 표현되었다―과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세력으로 이분되었다. 백기완선거대책본부(백선본)로 상징되었던 후자의 진보정치세력들은 제도 내에 독자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하였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초기에 있었던 진보정당건설운동조차도 여전히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채, 과거 ‘재야운동’의 동지라는 차원에서 그들과의 부분적인 ‘합종연합’의 형태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70년대식 재야운동세력은 ‘균열되었으나 아직 뚜렷이 분화되지 않은 민중운동’을 제도 내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영향력 아래로 견인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교회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진보정치세력에 있어 그것은 시민사회 내의 또 다른 국가였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동당은 제도 진입에 실패한 과거의 진보정당들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정치세력들과의 분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대중운동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진보정당건설운동들이 명망가 중심의 정당조직이었다고 한다면, 따라서 개인수준의 이합집산이 반복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은 87년 이후 노동대중들의 요구와 투쟁이 반영된 정치조직이라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한 97년 노동자총파업은 민주노동당 건설의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기존의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어느 정도 대표하고 있는가의 문제, 지금 민주노동당이 50%를 넘어서는 비정규노동자 등을 포함한 다수 노동자대중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적절히 대변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민주노동당은 어떠한 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80년대 중반이후 등장했던 정파들의 궤적을 고려할 때, 민주노동당은 크게 민중민주주의계열(PD)과 민족해방계열(NL)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87년 7-8월 노동자투쟁의 와중에서 결성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등에 참여했던 활동가들, 이후 가칭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세력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장석준, 「역사의 거름이 된 20년」 ꡔ내일을 여는 역사ꡕ17호(2004/가을) 참조.
이들은 90년대 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내부에서 ‘합법진보정당 건설’ 안이 부결되자 그로부터 이탈한 민중운동 명망가들과는 달리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급진노동운동의 핵심세력이었다. 애초 이들은 비합법 전위정당의 건설을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87년 6월항쟁 이후 진전된 정치적 자유화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계기로 합법정당건설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 것이 이른바 ‘신노선’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대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ꡔ진보정치의 논리ꡕ(현장문학, 1994)참조.
그리고 이들은 97년 총파업과 국민승리21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당내에서 핵심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민중민주주의계열에는 이들 이외에 급진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평등연대, 그리고 일명 ‘화요모임’으로 불렸던 ‘젊은 좌파그룹’ 등이 있다.
후자인 민족해방계열은 애초 독자적인 합법진보정당의 건설에 대해 소극이거나 반대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주노동당 건설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태도는 90년대 초 전민련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벌어졌던 합법정당건설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들이 반대 입장을 피력한 이래 지속되었다. 당시 이들의 이러한 정치적 태도는 87년에 있었던 민통련의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김철순, 「전민련 제2기 대의원대회의 역사적 의의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책 전환」, ꡔ사회주의자의 실천ꡕ(일빛, 1991), pp. 232-237 참조.
전민련의 해체 이후 일련의 부침 속에서 현재의 전국연합으로 결집되어 있는 이 세력은 민주대연합론에 근거한 ‘비판적 지지’로 92년 대선에서 자유주의 좌파와 정책연합을 이루기도 했지만, 그러한 발상과 정치적 태도는 92년 대선 패배 이후 자유주의 좌파세력이 이들과의 연합을 파기함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들 비판적 자유주의세력이 고백한 반성의 핵심은 9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연합과의 선거연합이 대선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즉 ‘급진세력’과의 선거연합이 김대중을 선호하는 ‘안정희구세력’의 지지표를 이탈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선거에서의 패배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제도 내 진입을 핵심 목표로 설정한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 확충을 위한 ‘국민정당’으로 변화욕구와 맞물리면서 전국연합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민주노동당 안에서 민족해방계열의 흐름은 정치적으로는 전국연합에 의해, 대중운동의 차원에서는 그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오랜 동안 자유주의좌파의 지지기반이었던 ‘전국농민운동총연맹’ 등에 의해 대변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정치협상에 대한 민족해방계열의 평가에 대해서는 김창현,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정치협상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 ꡔ이론과 실천ꡕ(2003/11)참조.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의 상당 부분이 이들 민족해방계열 흐름이나 이에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의 구성 주체 중 간과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들은 90년을 전후로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진보정치에 관심을 두다가 민주노동당에 결합한 구성원들이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68혁명세대’라고 불리곤 하는 이들은 80년대식 조직운동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운동이 분화하는 계기로서의 91년 5월투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91년 5월투쟁을 서구 68혁명과 비교분석한 최근의 연구는 김정한, 「대중운동과 민주화: 91년 5월투쟁과 68년 5월혁명」, ꡔ91년 5월투쟁과 한국의 민주주의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참조.
이들은 80년대에 형성된 민중민주주의 계열과 민족해방 계열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즉 이들은 한편으로 80년대 운동의 흐름에 견인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 각종 포스트주의를 흡수하면서 80년대 진보운동이 대중운동과 격리되며 증폭시켰던 자족적인 ‘이분법의 정파적 논리’를 비판하며 그것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당 내부에, 특히 지도부에 강하게 남아 있는 과거 ‘정파적 운동의 짙은 그늘’이 청산될 때 비로소 민주노동당이 도약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노동당 안에서 하나의 정파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정책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이들은 당 활동의 실질적 내용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자기인식 제고’를 통한 결속력 강화 여부에 따라 당내 영향력도 달라질 것이다. 특히 이들이 노동운동 등 민중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 가운데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는 민주노동당의 향후 정체성, 정치적 행보를 가늠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상이한 운동의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정파들,’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는 물론, 정치적 행보, 정책 수립과 그것의 우선순위 설정 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구조 자체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민주노동당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일그러뜨린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크고 작은 정책적, 정치적 사안들을 매개로 표출되고 있다.

2) 민주노동당의 ‘정치노선들’

민주노동당 안에 존재하는 정치노선은 80년대 급진운동들이 제시한 정치노선의 수용과 재구성의 결과이며 이러한 정치 지향들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심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분단 상황, 그리고 그 동안 진전된 자유주의적 정치개방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진보정치세력들은 그 동안 공통적인 과제들과 씨름해 왔는데,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첫째, 자본주의체제 밖에 대안은 존재하는가, 둘째, 만일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노동자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대안 체제로 제시하고, 이를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자 해방을 목표로 하였던 사회주의 이념과 전통을 계승하되, 역사적으로 현존하였던 사회주의가 지녔던 비민주성과 관료적 억압 그리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령」 참조. 그 동안 민주노동당 강령에 대한 비판은 채만수, 「민주노동당 강령비판」, ꡔ진보평론ꡕ3(2000/); 정병기, 「민주노동당, 민중당인가 노동자당인가」(www.another0415.net) 등을 참조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대안사회의 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체제가 극복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강령의 선언적 수준에 머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당 안에 존재하는 상이한 정치적 발상과 실천에 있다. 또한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각 정파, 집단들의 조심스러운 ‘긴장과 협력’의 과정을 매개로 정체성의 형성과정에 있기 때문에 강령을 통해 현실에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그 현실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 내의 공식, 비공식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노선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먼저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기본적으로 사적소유와 시장으로 상징되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 모순을 해소 내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유팔무, 「사회민주주의를 솔직하게 주장하자」,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참조.
주로 국가의 사후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삼는 사민주의 우파가 그 전형이다. 물론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주목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에 시선을 돌리는 ‘사민주의 좌파’ 또한 존재할 수 있으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이처럼 사민주의 노선은 이윤추구의 장으로서의 시장의 원리를 승인하며, 그로부터 야기되는 모순을 ‘중립자로서의 국가’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집권을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 세력의 규모를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실현가능한 정책대안 제시를 통한 대중적 지지 제고, 그를 통한 집권이라는 ‘실용주의 논리’를 강조하면서 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면 거둘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한 이 노선은 그 의식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지구적 수준에서 지배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모토,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안팎은 없다”라는 담론과 ‘미래의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나약하지 않다.
사민주의노선은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역사적 생명력을 다했다고 평가되는 일국단위 프로젝트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 낭만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노선은 종속적 파시즘체제를 매개로 한 유혈적 테일러리즘 아래에서, 사회복지는 차치하고, 먹고 살 자유마저 부정당하였던, 그리고 IMF위기를 계기로 ‘무제한의 시장자유’가 강제되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노선은 이러한 사민주의 노선을 비판한다. 이들은 사민주의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과 북유럽 등지에서 사민당 혹은 노동당의 이름으로 추구되었던 계급타협주의-수정자본주의 정치노선을 통칭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김현우,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알레르기를 넘어 나아가자」, ꡔ이론과 실천ꡕ(2002/10), pp. 118-119.
이들에게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선택지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 물질적 관계에 의한 인간의 질곡을 해소하고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보장하는, 그리고 인류와 생태계의 존속을 보장하는 유일한 이념, 체제, 깃발,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우, 위의 글, p. 119.

사회주의노선은 사민주의와 달리 자본주의국가와 이윤추구의 장으로 기능하는 시장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병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사적소유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필수적이다. 물론 이것이 전면적 국유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해방의 새 세상을 가능케 하는 이념과 체제가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민주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핵심이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및 자유의 확대심화, 기층의 직접민주주의의 확장 및 자주관리적 거점의 분산과 확대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근저에서 변혁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들 사회주의그룹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플란차스(N. Poulantzas)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니코스 플란차스,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 백의, 1994. 참조.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과거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흐름 위에서 제기된 것이라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해방 계열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래에서 보이듯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와 사적소유에 대한 자신들의 궁극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당 강령에 동의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 또한 자본주의를 극복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적소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가운데 ‘2단계 변혁론’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2단계의 사회변혁은 1단계 변혁의 잔여범주로 간주되고 있는 듯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적 소유를 절대시하고 사회주의에 대해 극도로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기존의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다르게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그 자체는 인정하되 그것이 갖는 반역사성,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철폐를 내세우는 사회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사회주의와 협력과 공존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진보적 민주주의는 부르주아민주주의와 구별 대립되는 개념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철폐와 사회주의적 소유의 전면화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사회주의이념과 다르며,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와 공통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적소유를 절대화하고 부르주아적 개인주의를 기초로 삼고 있는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달리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고 민중의 이익의 견지에서 그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보며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에 대해 반대하고 사회적 집단의 단합과 단결을 중요시하고 이 힘에 기초하여 사회적 진보를 추구하려 한다.” 김윤철, 「민주노동당 ‘집권전략논쟁’-이념 및 조직노선논쟁을 중심으로」, ꡔ역사비평ꡕ(2004/가을), p. 70에서 재인용.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입장이 이른바 민족문제(모순)와 맞물리면서 과거 민족해방그룹의 논리가 고스란히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상 스스로가 비판했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민족모순이 들어서게 되면서 그것의 해결이 모든 모순의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낯익은 인식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 이르면, 다음에서 보이듯 ‘진보적 민주주의’는 ‘(반미)자주’와 동일시된다.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민족자주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사회 발전의 가장 주된 적은 바로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사회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주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윤철, 위의 글, p. 71에서 재인용


이런 맥락에서 노자간의 모순, 시장의 전횡, 특히 지금 그 모순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 등은 이들에게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들에게는 노자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 갈등보다는 민족 사이의 모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무장한 세계화’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음에도 이들은 양자의 내면화된 관계에 주목하기보다 정치․군사 측면에서 민족적인 측면을 주로 부각시킨다. 이라크파병과 같은 대외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 또한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가 ‘불균등발전을 동반한 민족문제―(신)제국주의는 그 전형이다―의 끊임없는 재생산 과정이었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본주의세계체제 안에서 민족모순은 지양될 수 없음에도 민족모순을 강조하며 그것의 극복을 당면의 핵심과제로 설정한다는 것은 곧 기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것을 해소시키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체제 아래에서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심국가’로 진입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가장 강력한 ‘(민족)국가주의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과 실천의 경향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세력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상당한 조직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80년대 중반이후 등장한 이 세력은 민족모순에 규정된 ‘생산력 미발전론’을 내세우며 부르주아적 사회관계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는 민족해방그룹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 혹은 그것의 변형인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종속자본주의론은 물론이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한국사회를 규정하며 민족민주혁명론을 제시했던 제헌의회그룹(이른바 CA) 등의 주장에도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이른바 좌파 내 ‘근대화론의 옹호자들’이었다. 따라서 사회정치적으로 그 영향력이 미약했던 이들이 종속적 파시스트지배체제와 결합된 자본의 무한착취를 비판하며 집권을 노리던 ‘민중지향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아래 포섭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추동한 과거 ‘자유주의 좌파’의 그 ‘진보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비판적 자유주의 세력은 브레튼․우즈체제 아래서 상대적으로 인정된 국민국가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국제합의’를 매개로 자신의 위상과 행동반경을 구할 수 있었다. 이른바 ‘수출동맹’이든, ‘분배동맹’이든 그것은 상대적이지만 국민국가의 자율적 역할을 인정하는 전후 자본주의세계체제에 규정되어 있었고 이것은 서구의 복지국가,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수입대체 민중주의’, 그리고 동아시아의 ‘개발독재’가 작동할 수 있었던 구조적 틀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광일, 「성장, 발전주의 지배담론의 신화와 딜레마: ‘발전주의 국가’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로」, ꡔ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과 민주주의 동학ꡕ(함께 읽는 책, 2003) 참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신체제의 ‘수출지향적 헤게모니전략’과 적대적 대북경쟁전략에 대항한 이들의 ‘대중경제론’과 ‘연합제통일 방안’이 더 의미를 지닐 수 있었고, 진보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제고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이 과정은 자유주의 좌파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발현을 완화시키는 안전판 구실을 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성장한 ‘자유주의 좌파’가 해소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3당합당과 DJP연합을 통한 두 번의 권력분점, 국민통합21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철회로 성사된 뜻하지 않은 최초의 독자집권을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광일,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화: ‘민주주의’의 축소와 ‘국가물신’의 심화」, ꡔ정치비평ꡕ(2003/하반기), pp. 90-95.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노무현정권으로 상징되는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수구정치세력의 차이는 외견상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크지 않다. 이들 양 세력이 현재 대중의 삶을 규정하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무장된 세계화 등을 둘러싼 의제보다 ‘과거사 문제’에 더욱 매달리고 갈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기저에는 현재 자신들이 노출하고 있는 보수성을 감추고자 하는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노림수가 깔려 있다. 즉, 이들은 ‘개혁과 수구’라는 정치적 대립선을 재생산시킬 수 있을 때,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무장한 세계화로부터 파생된 문제는 이들의 주의설적 해결의지의 표현과는 무관한, 그들의 ‘계급적 경계’(class boundary)를 넘어서는 문제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민주노동당 내 민족해방 계열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깊게 내재되어 있던 과거의 관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최근 국가보안법 등 각종 개혁입법의 추진을 둘러싸고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공조하려는 이들의 정치적 발상과 행보 속에 드리워져 있다. 특히 민족해방계열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폐지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행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을 자극하는 것이 원내 각 당의 세력분포를 반영한 현실론인데, 향후 선거라는 정치공학적인 측면을 고려해보더라도,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정치세력과의 차별성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불감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세력이 민주노동당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현실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들 세력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반파시즘투쟁과 자유주의정치세력으로부터의 조직, 이념의 자립을 위한 좌파진보운동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민주노동당의 노선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 흐름이 서로 경쟁하며 부침하는 가운데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압도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 방향은 당 내부의 긴장관계는 물론 좌파진보운동과 노동자, 대중투쟁의 향배에 의해 일정하게 조건지워질 것이다.

3) 민주노동당의 ‘이행 전략들’

만일 자본주의체제의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이행의 경로’를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문제는 지난 80년대 변혁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한국사회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가 충분히 논의되고 실천되기도 전, 구동구권의 붕괴와 맞물려 한국의 진보운동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행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버렸다. 역사 속에서 현실화된 바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암울한 그늘은 이행의 문제를 우회하게 만들면서, 결국 진보정치의 빈곤을 조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이행의 문제는 정치노선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사민주의와 민족해방계열의 흐름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선, 국제운동사의 경험에서 볼 때, 사민주의는 선거로 집권을 하고 그것을 통해 자본주의가 지니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른바 양적인 개혁의 축적을 통해 그것을 완화, 해소시키고자 한다. 이 점에서 혹자는 이들에게 이행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1959년 독일 사민당이 고데스베르크강령(Godesberg Programm)을 채택한 이래 사민주의자들은 오랜 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와 그를 위한 양적 개혁을 주창해 왔으며 민주노동당 내의 사민주의 경향 또한 이러한 범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독일사민당의 이념, 정책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논의는 정병기, 「의회진출 초기, 독일사민당의 이념과 정책변화」, ꡔ진보평론ꡕ21(2004/가을) 참조.

이 노선은 당의 역할을 구체적 정책대안의 제시로 협소화시키는 발상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당의 기술관료화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향후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지향과 관련, 사회주의그룹이 주목하는 ‘사회운동적 정당론’에 대한 비판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즉 ‘사회운동적 정당론’이 ‘조합주의 대중투쟁’에 대한 보좌역을 수행하면서 제도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과 그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압력과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팔무, 앞의 글, p. 17.
하지만, 복지국가의 한 축이었던 사민주의야말로 조합주의의 상징이었고 바로 그러한 조직의 화석화가 새로운 사회운동 출현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평가는 적실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사민주의의 화석화는 이른바 포드주의 복지국가체제에서의 조합주의 노동운동의 위기로 표현되었고, 이른바 68혁명을 계기로 ‘신사회운동’이 출현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사민주의의 딜레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조차 그 어떤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정치를 제도화된 행위로 축소시키면서 그것을 노동자, 대중의 외부에 자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파국을 거칠지도 모르는 ‘이행의 과정,’ 그 현실 가능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바라는 ‘평화적 이행’조차도, 아니 사민주의적인 정책조차도 바로 그 노동자계급정치, 대중정치와 분리되어서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한다.
민족해방계열은 이행의 문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은 아직 사회주의를 전면화시킬 단계가 아니기에, 특히 미국과의 관계로 대표되는 민족간의 모순이 해소되지 않은 채,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단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전민족의 단결’에 중점을 둘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당에 대한 이들의 다음과 같은 인식에 잘 나타나 있다.

“민족민주정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사회주의적 이념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도 일부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성격으로 보나 당면 변혁의 임무로 볼 때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그 반대로 이른 바 개혁적 국민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지 않고 일반민주주의 과제나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강령을 내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 자주, 민주, 통일은 이미 시대의 대세로 되었다.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은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과 사대매국과 민족분열을 지향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갈 것이 분명하다.” 정대연, 「‘민족민주정당’ 건설에 주체적으로 나서자」(2002) 참조.


민족해방그룹은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외견상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1단계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이후 2단계의 변혁과정을 거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1단계의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민족민주정당의 조직과 ‘전민항쟁’이 이야기되고 있으나, 2단계 변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경로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행의 과정에서 변혁의 주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국가에 대한 문제,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모순의 극복 문제, 그리고 ‘이행의 동력’ 문제 등은 수면 아래 잠복되어 있다. 이러한 발상의 현실부정합성은 이미 지난 시기 수많은 논쟁을 통해 확인되었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것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들이 행사하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그룹 또한 사민주의그룹이나 민족해방그룹과 확연히 구분되는 명확한 이행의 경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민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체제 내 양적인 개혁 혹은 민족해방계열의 ‘2단계 변혁론’과 비교할 때, 구체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혁명과 개혁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운동정치와 제도정치의 관계를 조망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자본의 시장 지배를 통제하고 해체하는 문제를 매개로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제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대강 살펴보면, 사민주의가 주장하듯 개혁에 의한 양적 축적은 변혁이라는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는 ‘이중권력’의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과 시장의 통제는 현실적으로 국가권력 장악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따라서 국가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본이 강제하는 모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성두현, 「민주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정종권, 「새로운 사회주의-민중의 참여와 조직화」, ꡔ이론과 실천ꡕ(2002/8)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글로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당면투쟁이 동시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특징적인 것은 붕괴한 국가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파생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특히 역사적인 ‘프롤레타리아독재’이후 심화된 관료주의와 국가소멸이 아닌 대중에 대한 국가의 자립화로 나아간 과정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국가를 매개로 하는 정치가 초래할 필연적 한계에 대한 인식을 매개하면서 운동정치의 강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중권력’의 조성은 레닌주의적 이행전략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되지 않는다. 즉 이들은 국가를 변혁 과정에서 조성될 ‘또 하나의 대중권력’에 외재적으로 대립하며 존재하는 사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레닌주의적 이행전략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에게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한 운동정치는 오히려 사회관계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긴장과 모순을 국가 속에 투영시키면서 국가의 관료화와 자립화를 방지하는 핵심 열쇠로 이해되고 있다. 이 때 이들에게는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 또한 이 과정을 매개하고 촉진하는 하나의 투쟁장소이다. 이현우, 앞의 글, p. 125 참조.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행논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 문제가 단지 ‘사민주의 정책’과 ‘사회주의 정책’을 결합시키는 문제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발상을 잘 보여주는 예는 최병천, 「한국사회, 사민주의와 사회주의 처방 ‘둘 다’ 필요하다」, ꡔ이론과 실천ꡕ(2004/7) 참조.
물론 대중의 삶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 대안은 끊임없이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정책이 기계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민주의의 실패’는 이미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이행이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다가올지 선험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중에 대한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중정치를 우회해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제도정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정책의 누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발상은 사회주의를 사민주의 정책의 누적된 그 무엇으로 파악하는, 더 나아가 결국 그것을 특정한 하나의 모델로 설정, 대체하고자 하는 ‘사민주의 발상’의 동어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역사를 뒤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구사회주의체제의 붕괴이후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단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수준에서 대중권력의 총화로 구현되어야 할 ‘프롤레타리아트독재’가 그 노동자대중을 지배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냉정한 비판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다시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드러낸 모습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 문제의식이 제기하고 있는 본질적 의미 때문이다. 물론 많은 논의에서 지적되었듯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이 노동자계급 등 대중에 대한 독재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연 자본주의국가는 중립적인가, 그리하여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은 여전히 우회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차원에서 그 동안 ‘이중권력’의 조성과 기존 국가의 해체, ‘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통한 이행전략에 대해 ‘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된 다양한 비판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논평들은 주로 역사적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한계와 오류를 비판하는 것에만 머물렀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안에서 제기되는 이행과 관련된 발상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다양한 정파들이 ‘긴장과 협조관계’ 속에 상존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이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발상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런 진단을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자기형성 중인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가 민주노동당 내부의 긴장관계를 넘어서는, 전체 좌파진보정치의 현실과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주목해 볼 발상은 ‘사회주의그룹’이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다. 따라서 이를 매개로 당 내외 좌파진보진영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논의에서 자본주의사회관계를 포함한 기존의 비대칭적, 억압적 관계들을 문제시하는 발상들, 운동들의 참여를 미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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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lastmarx > [펌] 끔찍스러운 진보경제학계의 ‘사회학과 정치학’

내 책상 위에는 지금 세 권의 책이 있다.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2005, 책갈피), 그리고 김수행, 김공회의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 (2005, 서울대학교 출판부). 이 페이퍼는 위 책의 내용들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그냥 방금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을 다 읽고 서평을 쓸까 하다가, 서평에 쓰기도 뭐한 문제고  하지만,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 서평에서 말이 꼬이지 않을 것 같아 따로 몇 자 적어두기로 한다.

 

10명의 경제학자들을 선정해서 다루는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의 저자들은 논란거리를 피하기 위해 애초부터 이 10명의 선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 수 접고 시작한다(iv). 그러나 이 열 명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통해 종속심화-독점강화 테제를 들고나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윤소영이 들어 있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품은 이가 비단 나 뿐이었을까?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은 이 의구심을 심증으로, 그리고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한국경제]는 이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윤소영-김수행

 

윤소영은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과천연구실의 어떤 대학원생이 김수행 교수에게 박사논문을 제출했는데, 논문 주제의 유일한 전공자였던 정운영 교수를 김수행 교수가 기피했다는 일화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전통이 단절된 것이 반드시 부르주아 경제학 탓인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안병직 교수에 이어 김수행 교수도 만만찮은 기여를 했거든요. 진보경제학계의 사회학과 정치학은 정말 끔찍스럽습니다” (윤소영 2006: 105). 이 때까지만 해도 이게 앞서도 몇번 나온 김수행 교수에 대한 지은이의 유감 표명(65, 81)의 연장이려니 했다. 그러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정운영 선생 추도문을 보면서 이 끔찍한 사회학과 정치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403쪽에서 지은이가 언급한 [민중언론 참세상]에 실린 김수행 교수의 글("이 못난 사람아! 왜 먼저 죽어!")은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중앙일보로 옮긴 뒤 정운영 교수의 논조를 못 마땅해 하는 나였지만, 정운영 교수들 두고 당신은 경제학자보다는 신문기자에 더 적성과 소질이 맞다고 계속 생각해왔다는 그 이상한 추도사는 나를 아연실색케 하였다. 정운영 교수와의 옛 정이나, 글솜씨나 감수성에 대한 칭찬, 변절에 대한 책망, 그리고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원망 등이 뒤엉켜 있는 이 글의 형편없는 글솜씨는 충격이 컸거나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좋게 생각한다 해도 글에는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뭔지 모르겠으나, 김수행 교수가 정운영 교수에 대해 어떤 미안함이나 컴플렉스 같은 것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여간 김수행 교수의 이 글에 충격을 받은 윤소영 교수는 [밥자유평등평화] (http://bob.jinbo.net)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김수행 교수처럼 정 선생을 추모한답시고 변절 운운하는 것은 김 교수의 생각(저는 김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이나 두 분의 관계(자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정 선생은 저널리스트일 따름이라는 단정은 명예훼손급의 망언입니다)를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짓입니다.

 

게시판의 또 다른 글에서 윤소영 교수는 김수행 교수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었는 지모르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은 김수행 교수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그가 언제 입장 같은 게 있었냐는 윤소영 교수의 댓글은 김수행 교수의 추도사 만큼이나 뒤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 숨겨져 있는 무언가의 일단은 윤소영의 이 책에서도 나온다. 지은이에 따르면, 서사연 해산 이후, 이전의 한신경제과학연구소와 비슷한 성격의 연구소를 만들려는 흐름이 있었으나, 연구소 창립이 구체화되는 단계에서 김수행 교수가 참여를 거부하고, 다른 교수들(정운영, 김기원, 정성진, 김성구)도 시큰둥해 하자, 자신 혼자 과천연구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65). 물론 이것말고 다른 일들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정리하면, 김수행은 윤소영을 무시하고, 윤소영은 김수행을 물어뜯는다.

 

 

윤소영-정성진

 

김수행, 김공회의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맨 마지막에 정성진을 다룬다 (122-137). 그 정성진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윤소영 교수에 대한 유감을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성진 2005: 221-222).

 

짜골로프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선전하는 데 앞장섰던 윤소영도 얼마전부터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으로 개종했다. 비록 문제점투성이의 일국적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이기는 하지만, 이는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윤소영 (2004)은 이 같은 자신의 이론적 입장의 수정 혹은 변화와 관련된 자기비판이나 해명 대신, 엉뚱하게도 지난 10여년 이상 소련을 일관되게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해온 나와 트로츠키주의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의 오류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윤소영은 이미 14년 전부터 소련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소개해온 나의 글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정성진 교수는 마치 클리프 그룹이 국가자본주의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이는 무지의 소치일 따름이라는 등으로 비난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실 호도이고 역사의 날조다. 게다가 윤소영 (2002)의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뒤죽박죽의 이론적 기회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잡식재단하면서 자신의 무지콤플렉스, ‘트로츠키주의 알레르기를 달래는 것은 자유이지만, 스탈린주의와 반공주의의 폭압과 개량주의의 포섭에 맞서 노동자계급 자기 해방에 헌신해 온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멋대로 왜곡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사실 정성진의 이러한 분노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에서도 윤소영은 정성진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 그룹 다함께에 대해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인다. 윤소영에 따르면, 트로츠키주의의 부활은 남한이나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다소 특이한 현상이며, 이들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알리바이정말 기가 막히는 태도란다 (39).  더 나아가 윤소영은 정성진을 다음과 같이 약올린다. 아래에는 다함께라고 나오지만, 이는 사실 정성진이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발표한 후에 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그러나 다함께 같은 데서는 적대감이 더욱 심해졌는지 논쟁을 해보자고 덤벼들곤 하지요. 그런데 미안하지만 저는 그런 논쟁은 사절입니다. 완전히 시간 낭비일 따름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논쟁에는 동지적인 신뢰나 적어도 정직성과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데, 다함께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다함께는 아주 특이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다함께를 보면 한 손에는 코란 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지하드에 나서는 이슬람 시아파 전사가 생각날 정도이지요. 게다가 제가 듣기로 다함께는 노동자의 힘과 만나도 늘 그렇게 으르렁댄다고 합니다. 무슨 시아파가 수니파와 싸우는 것 같아요. 제 말이 정 의심스러우시다면, [이론] 4호에 소개된 캘리니코스의 만델 비판을 한번 읽어보세요. 어떻게 같은 트로츠키주의자에게도 그렇게 적대적일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윤소영 2006: 344).

 

정성진이 보는 윤소영은 은폐된 스탈린주의자이며, 사실을 호도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이론적 기회주의자이며, “무지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넘이다. 반면, 윤소영에게 정성진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오리발이나 내밀면서, 동지적 신뢰는 커녕 정직성과 분별력도 없고, 지들끼리도 껀수 잡아 싸우는 데 바쁜 한심하면서 질까지 안 좋은 넘이다. 정성진은 윤소영 한 번 걸리기만 해보라며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고, 윤소영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하는 식으로 실실 쪼개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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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다. 윤소영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정성진은 바로 김수행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윤소영의 모습이다. “본래 남성이란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윤소영의 말(363)은 우리나라에서 난다긴다 하는 이 좌파경제학자들 김수행, 윤소영, 정성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왜 자기가 거기 들어가야 하느냐고 하며 억울해 할까? 그 밴댕이 소갈딱지들 갖고 사회성격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기는 상당 기간 동안은 힘들 것 같다. 우울한 현실이다.

 

사실 이 세 경제학자들은 남한의 좌파 경제학자들이 21세기에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각기 다른 전형들이다. 김수행 교수의 경우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본]의 국역자이다. 일단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비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제일 처음 접하게 되는 이름이고, 행여 그 부분을 전공으로 삼을라치면 거쳐야할 큰 스승의 위치에 있다.

 

물론 윤소영 교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의 학생은 일류이지만, 교수는 이류일 뿐이고, 비봉판 [자본]은 대학원생들 도움을 받아 개역을 했다고는 하지만, 북한판을 남한말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소영 교수는 80년 광주항쟁을 전후하여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이래, 자신의 입장을 갖고 PD론을 정초했으며, 절친했던 선배인 이병천이 중진국론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또 발전국가론으로 널뛰기를 하고 있을 때, 알튀세르-발리바르 계열의 마르크스주의의 한 길을 걸어왔다. 한신대라는 좌파 대학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현실 운동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과천연구실을 꾸리고 있다. 그는 87년 이후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실에 나오는 후학들이 행여 선거에 참여하여 민주노동당이라도 찍을까봐) 과천연구실 MT 출발을 선거당일 아침 6시에 했다는 얘기를 저서에서 자랑스럽게 한다.

 

이런 윤소영은 정성진 교수에게는 파렴치한 스탈린주의자일 뿐이다. 정성진 교수 또한 경상대라는 좌파 대학 경제학과에 자리잡고 있고, 교수라는 점잖은 직책에도 불구하고 다함께라는 정치조직에 투신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동시에, 남한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를 위해 학진의 후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반년간 학술지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이들 말고도 다른 전형들을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 연구소의 장상환, 참여연대나 대안연대에서 활동하는 교수들, 그리고 재야의 채만수 등등...

 

밖에서 보기엔 그 물이 그 물이고, 우리 힘 한 번 합해서 뭐 한 번 해봐야 하는데... 꼰대들이라 완전 콩가루다. 뭐 거창하게 단결투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고 제대로 된 토론문화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모두들 상대방만을 탓하고, 자기가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아니면 이제 연세들이 드셔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선생들 밑에 있는 대학원생들은 어떨까? 그 사회도 줄을 서야 할텐데... "나는 바담풍 하더라도 너는 바람풍 해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또 이 양반들이 쓴 책을 사볼 어린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은 또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역시 우리 윤소영... 역시 우리 정성진... 이럴까? 또 그런다고 한들 공부하는 양반들인데, 그게 또 자기한테는 무슨 득이 되겠는가?

 

안 그래요?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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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그리고 ‘사회이행’ 2

3. 좌파연대의 장벽: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라는 이분법’

좌파, 진보의 기준을 자본주의의 극복과 그 대안의 고민이라는 문제로 축소시킨다면, 민주노동당은 분명 좌파진보정당이다.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은, ‘계급연합적인 성격’ 또한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안에 ‘급진민족주의그룹’이 영향력 있는 당내 구성주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정당’을 지향하는 이들은 ‘노농동맹’을 이야기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양상이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노동자대중운동이 민주노동당의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민족민주전선에 복무하는 ‘전술 단위의 합법정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정대연, 앞의 글 참조.
이 점에서 이들은 일부 급진좌파그룹과 상통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처럼 아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민주노동당에 주목하는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 좌파진보정치세력들의 연대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긴장관계들을 넘어 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관계설정 문제이다. 부르주아정치 혹은 법에서 전자는 ‘공적인 것’으로, 후자는 ‘사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이들에게 정치는 제도정치로 특권화되고 운동정치는 이익집단의 사적 행위 정도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개입은 오직 선거라는 주기적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싸고 좌파 내에서 전개된 논쟁 또한 이 틀을 넘어서 나가지 못하였다.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데, 부르주아정치(법)가 주조해 놓은 ‘공적행위로서의 정치’와 ‘사적 행위로서의 이익표출 활동’이라는 이분법의 틀을 비록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라는 개념으로 변형시키고 후자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면 실제 부르주아정치가 목표로 하는 동일한 정치적 효과는 여전히 산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게를 두든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진보정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는 한, 진보정치는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이분법적 발상의 현실부정합성은 사회관계의 ‘미시적인 부분’으로 확장시키는 순간,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운동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급진적 지식인, 혹은 활동가들 또한 학교 등 기존 제도의 틀에 이미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람시와 알튀세의 논의에서 제시된 바 있다. A.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1), pp. 261; 루이 알튀세, ꡔ아미엥에서의 주장ꡕ(솔, 1991), pp. 88-94 참조.

물론 그 동안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은 직간접적인 논의와 실천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접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외견상 그것은 첫째,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소,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 둘째,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연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의 논의는 「토론: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과 좌파정치의 방향」, ꡔ진보평론ꡕ21(2004/가을) 참조. 하지만 이 토론조차도 제도정치의 한계, 당과 사회운동과의 관계 등을 둘러싼 기존의 상이한 인식을 확인하고 권고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사회당, 그리고 ‘노동자의힘’ 등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 정치세력들 모두는 자본주의가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재생산하는 근원적 힘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또한 그것의 현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무장한 세계화’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의 고통은 심화되고 있는데, ‘연대의 정치’는 의미 있는 행동으로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이에 관한 좌파의 성찰은 홍석만, 「전진하지 않는 자는 발밑을 잃는다」(미디어 참세상, 2004.4.26); 김세균, 「노동자정치운동,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좌파연대를 위하여 토론회 발제문」(미디어 참세상, 2004.6.18) 참조.

그렇다면 왜 이러한 지루한 양상이 반복되는가. 첫 번째 이유로 지적해야 할 것은 진보정치세력, 특히 그 리더들이 진보정치의 목적을 실천 속에서 내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정치세력들이 수행하는 진보정치는 그것이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해방, 나아가 인간해방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단지 그러한 영역의 구분은 부르주아정치, 법의 구분일 뿐이다. 연대의 정치 또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노동자, 대중들의 현실을 자기 문제로 공유하고 운동의 내포와 외연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제도정치, 운동정치 나아가 그 양자 사이의 연대의 정치는 그 어느 것도 노동자, 대중 위에 군림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사회당 그리고 ‘노동자의힘’ 등은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면서도, 실천의 수준에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를 대립시키는 이분법의 틀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은 당 외부에서 제기되는 급진적 비판에 대해 ‘근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며 선거 시기 대중이 던질 표의 향방에 주로 경사되어 왔다. 제도 밖의 ‘노동자의힘’ 또한 자신들이 벌이는 사고와 활동 자체를 도덕적 우위를 지닌 ‘진보정치의 진수’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사회당은 제도와 비제도의 중간에서, 더욱 정확히 말하면 ‘제도의 형식으로 비제도의 정치내용’을 담으려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 왔다. 그 결과 스스로 좌파, 진보정치세력의 일원이라고 자임하면서도 이들은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인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수구정치세력들의 ‘희화된 좌파논쟁’을 그저 옆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좌파진보정치의 현존재와 관련하여 이 기이한(grotesque) 논쟁은 좌파진보진영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히 미약하다는 것, 아직도 이들이 부르주아정치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반증해 주었다. 최근 노무현정권, 혹은 그 정책에 대해 ‘좌파정권,’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천박한 논쟁과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정치가 보수(신)자유주의자들과 수구파시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운동정치’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노출하고 있는 ‘정치적 고립화’이다. 운동정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대중의지의 직접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의지를 걸러내는(screening) 제도정치보다 근원적이다. 제도정치는 이미 부르주아의 헤게모니가 역사적으로 선점, 각인되어 있는 상대적 자율성을 지닌 영역으로, 진보정치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그 영향력을 축소시켜나가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운동정치는 제도 밖에서 조성되는 갈등과 모순을 제도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그 틀의 재구성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도정치를 운동정치의 외부에 놔두는 것이야 말로 양자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정치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좌파 운동정치는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행할 만큼의 조직적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 제도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지니는 한계에 그 책임을 돌림으로써 빈약한 정치력을 스스로 위무하고자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계급정당’이 아닌 제도 내의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로부터 노출하는 한계 때문에 그것을 진보정치의 외부에 두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뒤돌아 볼 때, 민주노동당 또한 체제 내로 포섭되고 관료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향을 ‘과두화의 철칙’으로 규정한 고전적 연구는 로베르트 미헬스, ꡔ정당사회학: 근대민주주의의 과두적 경향에 관한 연구ꡕ(한길사, 2002) 참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보정치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계급정당’의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노동자의힘’ 또한 이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도 내의 대중정당임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이 많은 한계를 노출함에도, 그것이 좌파진보정당으로 존재하는 한, 진보정치의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좌파운동정치의 핵심은 제도 외부의 긴장과 모순, 갈등을 민주노동당 내부에 어떻게 투영시키고 그것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내용적 변화, 나아가 제도정치 전체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추동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에 있다. 민주노동당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내부 정치세력들의 다양한 발상과 행태, 특히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지향이라는 발상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도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을 외재적인 것으로 놓아두지 않으려면, 그리하여 그것을 노동자, 대중의 삶에 기여하도록 만들려면, 무엇보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를 경계지우고 그것을 넘어설 수 없는 본질적 대립구도로 강제하고자 하는 부르주아정치(법)의 굴레와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다차원의 연대를 통해 대중이 민주노동당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강화시키고 그 위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좌파계급운동’의 블록화 또한 이러한 과정과 분리되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박성인, 「사회주의 정치진영(계급적 좌파)의 혁신과 연대를 위해」, ꡔ진보평론ꡕ21(2004/가을) 참조.

세 번째 이유는 민주노동당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를 극복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자신들의 강령에서 선언하고 있다. 미래의 목표인 강령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이 직면했던 딜레마이다. 진보정당은 미래를 꿈꾸는 정당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진보정치에서는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단지 현실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축적인 현실 속에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래와의 간격’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가 진보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다. 독일 사민당은 그 괴리를 1959년 고데스베르크강령을 통해 해소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실현가능한 정책’의 제시라는 구호가 전면에 부각되었으며 결국 당의 목표인 집권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스스로 그렇게 대표하고자 했던 기층 노동자와 대중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과정이었다. 현재 독일 사민당은 ‘자본질서극복 계급정당’에서 ‘자본질서유지 국민정당’으로 전환하였다고 평가된다. 정병기, 앞의 글, pp. 63-64 참조.

지금 민주노동당도 강령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그리고 상이한 발상과 행태를 보이는 당 내 정치세력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17대 선거를 통해 10명의 의원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은 집권의 청사진을 제출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왜 집권하고자 하는가이다. 그리고 그 동력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이다. 민주노동당은 지금 10명의 의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의원수가 힘의 상징인 제도정치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의원수는 상징적인 정치적 효과 이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이것은 지금처럼 당과 원내로 이원화된 활동구조의 적절한 운영을 통해, 더 세련되고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등의 개발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원내 소수파의 한계를, 대중을 겨냥한 직접적인 ‘장외투쟁’을 통해 극복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소, 극복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특정한 정치적 국면에서 구사한 ‘선택적 장외투쟁’이 아니라, 따라서 그 성과를 대중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권으로 삼는 그런 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바로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 속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정치를 구사해야 한다. 선거공학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본령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진정 진보정당임을 보이고자 한다면, 수권정당을 넘어 대안정당으로 역할을 하고 싶다면, 부르주아정치가 ‘이익정치’로 왜소화시켜 놓은, 다양한 사회관계들의 긴장과 모순에 근거한 ‘운동정치’를 복권시키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의원 10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며 더 많은 의원을 획득하기 위한 가장 올바른 접근법이다. 거기에 부르주아정치가 ‘제도와 비제도’를 나누기 위해 그어 놓은 완고한 경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에서 지금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불투명하다. 실제 이들에게 운동의 정치는 매우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는 듯하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세력과의 포괄적 연대는 정책 마련을 위한 영역으로 협소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연대의 파트너는 민주노총과 ‘진보적 시민운동’으로 좁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서 급진진보정치세력, 진보적인 민중운동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좌파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딜레마이다.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지금 민주노동당 내부의 상이한 주체들이 냉정히 뒤돌아보아야 할 문제이다.


4. 나아가는 글: 다시 국가, 민주주의 문제로

이제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국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논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간단히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문제들은 진보정치의 가장 핵심적 사안들임에도 그 동안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어 왔으며 그 결과 80년대 이후 진보운동의 논의와 실천을 매개로 복원된 ‘국가론,’ 민주주의론은 지금 그 수준이 어떻든 논쟁의 목록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간과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과 달리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심화는 이 문제를 더욱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글로벌 신자유주의는 기존 국민국가의 계급성을 지구적 수준에서 질적으로 균질화시키고, 공간적으로 확장시키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적대적 공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글로벌 신자유주의에 규정된 기존 국민국가의 무게중심이 기존의 자국내 자본을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유동하는 자본을 자국의 영토 내에 고정시키는 것으로 이동함으로써 더욱 촉진되고 있다. 존 할러웨이, 「지구적 자본과 국민국가」, ꡔ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ꡕ(갈무리, 1999), p. 189.
그 과정은 그 동안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투쟁을 통해 유지되었던 삶의 조건들, 제도적인 틀조차도 무화시키고 정치적으로 노동자, 대중을 개별화시키며 최소한의 의사결정구조에서조차 배제시키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서구 복지국가의 해체는 이러한 상황의 극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국가, 민주주의 문제는 좌파진보정치의 대중적 헤게모니의 확보를 위해 더 이상 우회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익숙한 질문에 다시 대답하고 고민해야 한다.
첫째, 국가는 노동자, 대중이 맺고 있는 다양한 사회관계의 외부에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는 그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총자본으로서의 부르주아국가’라는 점을 최종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분명 국가는 노자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다양한 사회관계들의 응집된 표현이다. 물론 거기에는 역사특수적인 것으로서의 부르주아의 이해가 선점, 각인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국가가 이 관계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사회관계에 ‘외재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부르주아정치학, 그 법이 오랜 동안 노동자계급, 대중에게 강제한 발상이었다. 그것을 대표하는 발상들이 바로 다양한 종류의 ‘계약국가론,’ 다원주의국가론임은 주지하는 대로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발상을 넘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르주아의 이해를 강화하는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물론 이것이 제도정치를 특권화시키는 이유로 기능해서는 안된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부르주아사회체제가 그람시적 의미의 ‘확장된 국가(extended state)’ 혹은 ‘통합국가(integral state)’를 매개로 재생산된다면, 그것에 대항한 진보정치 역시 통합정치(integral politics)를 통해 그것을 돌파할 수밖에 없다. A. Gramsci, Ibid., pp. 262-263 참조.
부르주아정치는 역사적으로 형태분리된 근대 국가와 시민사회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체제가 실제로 재생산됨에도 그러한 형태분리를 내용적인 수준으로까지 절대화시킨다는 점에서 항상 모순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유주의적 발상은 정치사회와 경제활동이 포함되는 시민사회를 구분하고 국가가 거기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른바 자유방임조차도 법률적, 강압적 수단들에 의해 유도되고 유지되는 국가조절의 형태라는 점은 이러한 발상의 이데올로기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는 실제 ‘하나’(one)이며 동일한 것(the same)이라는 주장의 의미를 음미해야 한다. A. Gramsci, Ibid., pp. 160-161 참조.
진보정치는 바로 이 모순적 상황을 지양해야 하는데,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통합만이 그것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게중심의 이동은 있을 수 있으나 사회변화를 위한 ‘기동전’과 ‘진지전’ 또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국가를 자본주의사회관계, 거기에 내재되어 작동하는 노동자계급투쟁, 대중투쟁과 분리된 사물(the thing)로 규정하면서 ‘국가의 역사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민주의는 결국 당을 기술관료 중심의 조직으로 만들고, 기층민주주의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이행을 위한 국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사라져버린다. 플란차스는 사민주의의 국가주의가 기층민주주의 및 민중주도권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탈린주의와 깊은 공범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니코스 플란차스, 앞의 책, p. 331.

둘째, 그렇다면 사회이행과 관련하여 민주주의는 어떤 성격과 위상을 지니는가. 이미 지적하였듯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의 실현을 위한 자발적, 목적의식적 수단을 강구하는 모든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피지배계급 운동 그 자체와 같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규정에 대해 인민주의적 민주주의의 계보의 선상에 있는 쁘띠부르주아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즉, 계급사회에서 현존할 수 없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채만수, 「(소)부르주아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운동의 독자성」 참조.

그것이 관념적이라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을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부르주아민주주의), 아니면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라는 틀로 인식할 것인가. 하지만 문제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이든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이든 그 모든 것은 노동자계급투쟁, 대중투쟁의 성과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배체제가 확립된 이후에 그들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어떤 민주주의이건 그것은 대중투쟁의 결과이며,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대중투쟁의 외부에 내버려둘 수 없다. 따라서 운동의 결과인 선거조차도 그것이 오랜 대중 투쟁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지배계급들의 것인 양 내버려둘 수 없다. 제도로서의 선거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을 민주주의와 동일시하고 거기에 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대중투쟁을 종속시키며 그것을 사회모순을 감추는 기제로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규정, 그것을 위한 운동은 기존 자본주의체제에서의 민주주의의 확장은 물론,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그리고 역사적인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 보이듯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노동자, 대중으로부터의 ‘권력의 자립화’를 예방할 논리적, 실천적 기제로 된다. 그것은 대중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모아진 힘은 진보정치세력이 취할 행위의 지적, 도덕적 우위를 보증해 주는 기본동력이다. 따라서 제도 안팎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관철될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은 비록 시공간적으로 불균등하게, 때로는 중첩되면서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겠지만, 억제될 수 없는 진보정치의 토대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것은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해방, 인간해방의 목표를 위한 핵심논리이자 실천의 수단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그 운동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과 그것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운동이라고 규정할 때,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칠레 인민연합의 좌절이 반증하듯이 과연 기존의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이 이행의 과정에 합의하고, 평화롭게 놓아둘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미리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이라는 민주주의 개념이 사회이행의 와중에 나타날 수 있는, 선험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길고 지루한 긴장의 시간 혹은 파국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부르주아지는 결코 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가올 수도 있는 그 파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는 없으나,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을 위한 대중의 자발적, 목적의식적 수단들이 진보정치 내부에서 더욱 일관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사회관계들 그 자체이며 고립된 하나의 제도, 하나의 모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 시기에 실천적 수준에서 국가와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민주노동당 안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 이행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현실적 이유는 제도 밖의 운동정치와 민주노동당 내부에 사민주의노선과 민족해방계열 노선이 주요한 행위주체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국적 틀에 갇힌 완고한 국가주의자들이라는 현재적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의 자본주의체제를 넘어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래의 보수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이들과 어떻게 이론적, 실천적으로 대결할 것인가. 좌파진보정치세력들이 현 시기에 고민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물론 이들과의 대결은 신자유주의가 좌파진보정치운동에 강제하는 지구적 수준의 조건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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