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lastmarx > 정치경제학 비판 참고문헌들

  2000년 가을에 나온 진보평론 5호에 정치경제학 비판과 관련한 유익한 글이 번역되어 실렸다. 제목은 <외국인 기고/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로 미하엘 하인리히(Michael Heinrich)가 작성한 글이다. 이 번역문은 305쪽부터 348쪽까지 실렸는데 인쇄물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우선 전문을 통독하고 난 뒤 특정 부분을 음미해도 좋겠다.  

  ☞ 정치경제학비판 관련 참고문헌 목록 및 해설  

몇년 만에 다시 읽다가 일부 흥미로운 부분들을 노트해 본다. 강조는 내가 했다. 

  I. Karl Marx (1818-1883)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학문분류에 따르면 맑스는 철학, 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과 같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글을 남겼다. 이 학문 중에서 많은 분야가 (아마 정치학이나 사회학과 같은) 당시 아직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맑스의 각 저서에서도 중첩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초기의 이같은 학제간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맑스가 쓴 글의 높은 수준이다. 그는 단순히 기존의 학문을 계승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비판하려 했다. 여기서 맑스 저작의 기초를 이루는 비판개념은 엄청나게 큰 부담을 지게 된다. 즉, 이러한 여러 학문분야 내의 특정 명제나 이론을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여러 학문의 뿌리에 (이 학문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특정 이론이 생겨난다)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천적-정치적 목적으로 수행해 기존 사회체제에 혁명을 일으키는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이론적, 실천적인 요청에 대해 맑스는 평생 충실했고 이같은 요청이 소위 맑스 저작의 통일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준다. 하지만 그의 이론적 비판의 중점이나 거기에 사용된 개념적 구상은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 그의 이론적 성향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끊임없는 연속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변화를 맑스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근본적 단절이라고 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맑스에 관한 문헌에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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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정치경제학비판에 관한 20세기의 문헌들
  1) 정치경제학비판의 경제학적 해석
 

  이 해석은 맑스의 Kapital을 무엇보다 다른 경제이론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밝히며 부르주아이론의 조화적인 견해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공황을 그리고 몇몇 해석에서는 붕괴까지 증명하는 전문경제학 저서와 거의 다름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추구했다는 것, 개개의 이론뿐만이 아니라 학문 전체를 비판하려 했다는 것, 부르주아적 관계가 만들어낸 상품물신숭배, 화폐물신숭배, 자본물신숭배를 폭로하려 했다는 것, 이런 점들은 다른 많은 저서에서 퇴색되어 있다. 그래서 단순한 경제학을 넘어서는 맑스 저작의 사회이론적 측면이 중요한데도 종종 불충분하게 고려되어 있을 뿐이다.

  이 해석방향은 Karl Kautsky, Karl Marx Ökonomische Lehren. Gemeinverständlich dargestellt und erläutert (1887, Bonn 1980)에서 Kapital 제1권의 대중적인 요약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엥겔스가 계기를 부여한 역사주의적 해석이 Kautsky에게는 더 많이 진행되었다. 맑스의 Kapital이 자본주의 발달사의 서술인 것처럼 보였고 형태분석은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Kapital이 마치 제1권으로 이미 거의 완결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Kapital 세 권이 모두 출판되고 나서도 대다수 노동운동권에서의 Kapital 수용은 제1권에만 (혹은 제1권의 요약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제2권과 제3권은 전문학자들만 보는 문헌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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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뿐만 아니라 시간상 다소 지체되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Louis Althusser, Das Kapital lesen (1965)은 맑스 논쟁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한다. 구조주의에 영향을 받은 Althusser는 Kapital의 “헤겔주의적”인 독서법은 물론 “역사주의적”인 독서법도 반대하고 “과학적”인 Kapital과 아직 철학적-이데올로기적인 초기저작 사이의 단절을 강조했다. Kapital의 방법론적 문제는 헤겔의 논증스타일을 다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과의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Althusser 해석의 중심개념은 “구조적 인과성”, “구조를 통한 결정”이다. 그 개념은 그에게 단지 구조를 위해서 현실적 역사주체를 퇴색시켜버린다는 비난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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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pital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1857/58년의 Grundrisse는 60년대부터 서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했다. 왜냐하면 Grundrisse에 “철학적” 초기저작 (30년대 초반부터 대단히 중요해진 1844년의 Pariser Manuskripte)과 1867년의 Kapital 사이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매개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Grundrisse가 중요한 역할을 한 최초의 대단히 뛰어난 연구는 Alfred Schmidt가 Der Begriff der Natur in der Lehre von Marx, Frankfurt 1962에서 내놓았다. 그는 자연변증법에 관한 엥겔스의 관념을 비판하고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출발하는 유물론의 개념을 서술했다. 하지만 Grundrisse는 Roman Rosdolsky, Zur Entstehungsgeschichte des ‘Kapital’, Frankfurt 1968의 방대한 저작의 출판으로 그 진정한 “출현”을 경험했다. 그 저작의 대부분은 Grundrisse에 관한 자세한 주석이다. 그것으로 맑스 텍스트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맑스의 기본적인 서술을 상당히 일반적으로, 개별적인 문제를 상세히 토론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맑스의 전체 텍스트가 체계적으로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연구되었다. Rosdolsky가 서론에서 Grundrisse에 중심이 되는 “자본 일반”의 범주를 강조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Kapital의 구조까지 해석한 것은 이후의 토론에서 특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나서 그 해석은 70년대에 많은 Kapital 해석에 받아들여졌다). 이 해석에 의문스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자본 일반”이라는 범주를 Kapital 전3권의 단 한군데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해석은 다른 여러 방향에서 계속 추구된 맑스 논증의 범주논리에 대한 인식을 민감하게 하였다.

  계속되는 토론에서 중심이 되는 글은 Hans-Georg Backhaus, Zur Dialektik der Wertform (1969, in: Alfred Schmidt (Hrsg.), Beiträge zur marxistischen Erkenntnistheorie, Frankfurt. 이 글은 Hans-Georg Backhaus, Dialektik der Wertform, Freiburg 1997에 재인쇄됨)과 Helmut Reichelt, 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bei Karl Marx, Frankfurt 1970이 내놓았다. 여기서는 맑스의 가치이론과 잉여가치이론을 위에서 말한 “경제학적” 해석에서와 같이 단순하게 그리고 일차적으로 상대적 가격체계와 착취를 설명해야 하는 노동량이론으로 파악하지 않고 “왜곡”에 근거한 사회양식의 복합적 설명으로 해석한다. 그에 따라 관심이 더 한층, 이전에 오히려 소홀히 다루었던 맑스의 형태분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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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분석과 함께 헤겔철학 (특히 헤겔의 Wissenschaft der Logik)과 Kapital에 있는 맑스 범주설명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이는 일부 헤겔 전문가들을 맑스연구로 이끌었고 (예를 들면 Hans Friedrich Fulda, These zur Dialektik als Darstellungsmethode im ‘Kapital’ von Marx 그리고 Michael Theunissen, Krise der Macht. Thesen zur Theorie des dialektischen Widerspruchs, 두 논문 다 Hegel-Jahrbuch 1974, Köln 1975에 있음) 또 일부 맑스주의 저자들을 일종의 “헤겔맑스주의”로 이끌었다. 이 접근방법에서 맑스와 헤겔은 이중으로 교차되었다. 즉, 정치경제학비판이 내용상으로 헤겔철학의 유물론적 진리로 해석되었다(헤겔의 “세계정신”은 맑스가 분석한 자본운동의 신비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상으로 맑스의 변증법적 설명은 헤겔의 Logik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

*주) 그래서 한때 헤겔 공부가 Kapital을 읽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결론까지 나왔고 따라서 70년대의 많은 Kapital 강좌는 헤겔의 Logik에 대한 개요로부터 시작했다. 맑스-헤겔 관계에 대한 토론이 이미 두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연구하는 시작단계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다는 점은 별도로 하더라도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이 헤겔 논리학의 “응용”이라는 주장 역시 예를 들면 이미 언급한 Louis Althusser (Das Kapital lesen, Reinbek 1972)와 Hermann Kocyba (Widerspruch und Theoriestruktur, Frankfurt 1979)의 책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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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와 80년대 초에는 두 권의 중요한 책이 맑스 정치경제학비판의 발달사를 연구했다. Winfried Schwarz, Vom ‘Rohentwurf’ zum ‘Kapital’, West-Berlin 1978은 이미 Roman Rosdolsky가 강조한 “자본 일반” 개념을, 특히 1857년부터 1872년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자신의 Kapital “구조사(構造史)”의 중심에 두었다. Fred Schrader, Restauration und Revolution, Hildesheim 1980은 Grundrisse의 전사(前史)를 맑스의 런던 연구노트에서 조사했고 Grundrisse에 있는 상품분석과 자본이론의 발전을 연구했다.

  Hans-Georg Backhaus의 노력은 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즉, 그는 Materialien zur Rekonstruktion der Marxschen Werttheorie (첫 3부가 1974년과 1978년 사이에 Gesellschaft. Beiträge zur Marxschen Theorie, Frankfurt의 시리즈 판으로 출판되었다. 70년대에 쓰여진 제4부는 H.-G. Backhaus, Dialektik der Wertform, Freiburg 1997에 비로소 출판됨)로 우선 “맑스” 가치이론과 “맑스주의” 가치이론의 차이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 엥겔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후자의 가치이론은 부르주아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가치이론과 “전(前)화폐적” 특징을 공유하는 (즉, 그것은 화폐이론과의 내재적 관계가 없는 가치이론이다) 반면 (가치형태분석을 핵심으로 하는) 원래의 맑스 가치이론은 바로 전(前)화폐적 가치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계획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Backhaus의 비판은 “맑스주의” 가치이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맑스의 이론 자체로 향했다. 맑스이론이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그 개념적 엄밀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맑스가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쓴 1857/58년의 Grundrisse를 원래 맑스의 가장 중심적인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그 반면 나중의 저서들은 Grundrisse가 개괄한 계획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색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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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분기점을 이룬다. 1989/90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다. 그래서 교조주의적인 “맑스주의-레닌주의” 뿐만 아니라 바로 전체 맑스주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했던 맑스주의도)가 신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물론 동구에서도 자본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승자처럼 보였다. 그에 따라 과거의 좌파 지식인들에게까지 맑스주의에 대한 후렴만 쌓여갔다. 맑스이론에 관한 토론은 - 비방하는 제스처 아니면 적어도 근본적 비판의 제스처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 표면상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고 정치적 토론과 학문적 토론에서도 더이상 커다란 관심을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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