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대로 가지 않는 내가 문제구나.

   

    마음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을까?        

 

 

       245.

 

      "세상을 바라보는 이 자리가 환한 것이 깨달음의 세계예요. 내가 익히고 배운 걸 중

 

      심으로 가치판단 일으키는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뀌는 거죠. 깨달음이란 현상세계

 

      가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에요."

 

       사바세계란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천재지변, 길흉화

 

       복은 언제든 찾아오고 나가지만 주인공이 중생이다 보니 고통스럽다. 중생인 우리

 

       는 무엇으로 고통받나? 고통의 주체는 마음이다. 인도인들은 마음의 형태를 관했

 

       고, 불교는 마음을 연구한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의 진정성은?  견성見性이란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원인 구명하여 번뇌를 정화시키는 것. 우리 마음속에 온갖 번뇌 망

 

       념이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원인을 제하니 실체가 없

 

       는 공 空이더라. 무어든 담을 수 있는 장이더라. 그것이 여래장如來藏이다.

 

       심즉불心卽佛.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둘이 아니다. 한 발을 내딛음으로서 깨

 

       달음이 세계로 나아간다. 즉사이도 卽事而道다. 번뇌즉보리 煩惱卽菩提,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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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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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책으로의 도피는 좋은방법이다. 지은이는 성공했다. 나도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덜 절실하겠지. '덜 읽고, 더 살고'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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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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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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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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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

  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

  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

  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안정되는 곳, 불가

  능하게 치솟은 빌딩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 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작가는 뉴욕에서 새로운 말을 배우고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미적세계, 미적 시선을 만들어 간다. 『나의 사적인 도시』에는 시장과 거리에서, 갤러리와 커피숍에서, 패션쇼와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글에서 만난 작가만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6년 동안 쓴, 일기나 다름 없는 글이다. 

 

작가는 뉴욕을 ‘늘 새로운 미학이 꿈틀거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경한 미학과 마주치고’, ‘넘칠 정도로 많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정서적 자극들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겹치고 넘치는 자극 속에서 뭔가를 찾아나가야 하는 삶이 뉴욕의 삶이고 뉴요커의 숙명이라고 했다. 뉴욕은 뭔가를 찾아내려는 욕망이 들끎는 곳이다.

 

뉴욕이라는 정글의 공기를 마시는 한, 너의 ‘야생’의 정신을 안락한 삶 속에 가두지 말지어다.

 (작가의 다른책 '뉴요커' 중에서)

 

넘치는 자극과 들끓는 욕망들 속에서 자신의 미적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악전고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작가는 악전고투보다는 뉴욕의 미학이 더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스러움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뉴욕, 작가에게 또 다른 의미의 모국이 아닐까?

 

‘나의 사적인 도시’는 작가에게는 스스로 ‘자귀 짚는’ 일이었지만, 나에겐 탐험이었다.

한 예술가의 촘촘하고 빽빽한, 그러나 조금은 느슨한 미적 세계를 탐험하는 것. 타인의 사적인 공간은 당연히 낯설다. 그러나 낯선 만큼 매혹당하기 쉽다.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인데도 뭔가에 끌리듯 읽었던 이유가 뭘까?

작가의 나른하면서도 메마르지 않는, 지적인 감수성 때문이다. 또 글에 언급된 작가와 작품도 찾아보고, 째즈도 들어보고, 세세히 쫓아갈 수는 없었지만 지도에서 작가의 동선을 그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쫓아가면서 내린 결론은 뉴욕에 간다면 구경은 조금만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구경거리에 밀려서 헤매기 싫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구경해보고 남는 시간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 시장도 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공원 나무에 기대어 사람도 구경하고...... 그런 일상적인 것을 해보고 싶은데, ‘뉴욕까지 왔는데 이거 안보고, 저거 안먹고 가도 되나’ 하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으면서 동경하게 된 것은 뉴욕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세계였다.

새로운 말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정밀하게 풀어내는 감수성,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그런 시선과 감수성이 부럽다. 부럽다고 동경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 안에서 나만의 사적인 뭔가를 찾고 싶다. 그게 나의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 줄 것 같다. 그 사적인 공간이 나를 한없이 부풀어 오르게 한다.

 

공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작가에 대한 동경을 거쳐 나의 내면으로 끝난, 지극히 사적인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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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책을 읽다가 그저께 시사회에서 본 다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떠올랐다.

  

     174쪽.

 

     "헨리 다거는 내가 맨해튼 68번가에 살 때 그 근처에 있던 포크 아트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전시였다. 처음 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방마다

     펼쳐지던 경이로운 순간을 기억한다. 다거는 정신이상자로, 정신병원을 탈출한

     후 평생 청소부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혼자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왜라는 질문은 전혀 없이 자신만의 세상을 그저 살아간 것이다(이게 바

     로 답이리라). 그가 죽고 난 다음에야 집주인이 그가 남긴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비로소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세상과 현실과 단절되어 있었고 그는 죽음으로써 비로소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모든 훌륭하고 비극적인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은 이러할

     것이다."  

 

 

     역사책을 쓰고 있던 청년 존 말루프는 책에 넣을 사진을 구하기 위해 벼룩시장 경

    매에 간다. 거기에서 구입한 가방에는 15만장 정도의 필름이 들어 있었다. 필름의

    주인은 비비안 마이어. 필름을 현상해서 전문가들에게 보였더니 극찬이 이어진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은 들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주변

    인들도 그녀가 항상 사진을 찍는걸 알았지만 사진을 본적은 없다고 한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녀가 어디에서 왔고, 가족은 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모른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유모로 일하며 이집저집

    옮겨다닐때마다 조건은 자신의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것. 그녀와 10년 이상

    알고 지냈던 아이 엄마도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 아이 엄마는 사진을 좀

    일찍 공개했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 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마지

    막으로 간병일을 그만 두었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그녀가 돌봐준 아이들이 집을 구해

    주고 집세를 내준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지도 않고 세상과 현실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지만, 시  

   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쌓아놓은 신문 때문에 나무바닥이 처질 정도

   였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미국과 유럽 여러 곳에서 전시되었고, 전시회마다 사람들

    이 몰린다.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인 죽음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진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나오게 된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삶은 죽음으로써 끝난게 아니라 죽음으로써 계속

    되고 있다.

 

     그녀와 그녀의 사진이 뒤늦게라도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기분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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