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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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

  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

  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

  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안정되는 곳, 불가

  능하게 치솟은 빌딩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 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작가는 뉴욕에서 새로운 말을 배우고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미적세계, 미적 시선을 만들어 간다. 『나의 사적인 도시』에는 시장과 거리에서, 갤러리와 커피숍에서, 패션쇼와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글에서 만난 작가만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6년 동안 쓴, 일기나 다름 없는 글이다. 

 

작가는 뉴욕을 ‘늘 새로운 미학이 꿈틀거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경한 미학과 마주치고’, ‘넘칠 정도로 많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정서적 자극들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겹치고 넘치는 자극 속에서 뭔가를 찾아나가야 하는 삶이 뉴욕의 삶이고 뉴요커의 숙명이라고 했다. 뉴욕은 뭔가를 찾아내려는 욕망이 들끎는 곳이다.

 

뉴욕이라는 정글의 공기를 마시는 한, 너의 ‘야생’의 정신을 안락한 삶 속에 가두지 말지어다.

 (작가의 다른책 '뉴요커' 중에서)

 

넘치는 자극과 들끓는 욕망들 속에서 자신의 미적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악전고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작가는 악전고투보다는 뉴욕의 미학이 더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스러움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뉴욕, 작가에게 또 다른 의미의 모국이 아닐까?

 

‘나의 사적인 도시’는 작가에게는 스스로 ‘자귀 짚는’ 일이었지만, 나에겐 탐험이었다.

한 예술가의 촘촘하고 빽빽한, 그러나 조금은 느슨한 미적 세계를 탐험하는 것. 타인의 사적인 공간은 당연히 낯설다. 그러나 낯선 만큼 매혹당하기 쉽다.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인데도 뭔가에 끌리듯 읽었던 이유가 뭘까?

작가의 나른하면서도 메마르지 않는, 지적인 감수성 때문이다. 또 글에 언급된 작가와 작품도 찾아보고, 째즈도 들어보고, 세세히 쫓아갈 수는 없었지만 지도에서 작가의 동선을 그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쫓아가면서 내린 결론은 뉴욕에 간다면 구경은 조금만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구경거리에 밀려서 헤매기 싫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구경해보고 남는 시간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 시장도 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공원 나무에 기대어 사람도 구경하고...... 그런 일상적인 것을 해보고 싶은데, ‘뉴욕까지 왔는데 이거 안보고, 저거 안먹고 가도 되나’ 하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으면서 동경하게 된 것은 뉴욕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세계였다.

새로운 말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정밀하게 풀어내는 감수성,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그런 시선과 감수성이 부럽다. 부럽다고 동경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 안에서 나만의 사적인 뭔가를 찾고 싶다. 그게 나의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 줄 것 같다. 그 사적인 공간이 나를 한없이 부풀어 오르게 한다.

 

공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작가에 대한 동경을 거쳐 나의 내면으로 끝난, 지극히 사적인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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