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는 한국사를 배우는 중·고등학생들에 권하고 싶다.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하여 배울 때, 실학의 시작과 전개, 실학의 의미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조 시대를 아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에서 홍대용의 말을 읽다보면 과학이 사상과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정확히 말하면 지동설이 다시 실학자들의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담헌 선생이 ‘지구(地球)’란 말을 하였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이는 듯했다. 땅은 그저 ‘지(地)’라는 한 마디로 충분하다. 그런데 둥근 ‘원(圓)’도 아니고 ‘구 (球)’라는 말을 붙이다니, 그것은 공이란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땅이 빙글빙글 도는 공처 럼 둥글단 말인가. 게다가 선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돌 고 있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러웠다.
“땅은 끝없이 아득하고 평평하기에, 높고 낮은 산과 들, 사람을 비롯한 온갖 만물이 그 위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처럼 둥글다면 위태로워 어떻게 제 몸을 지탱하겠 는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한 고을, 기껏해야 한 나라 안의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마당에서 내 집을 바라볼 때와 높은 산 위에서 내려다 볼 때가 다르지 않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저 하늘 아득한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네.”
“자네들은 월식을 본 적이 있는가?”
“예, 반듯한 선처럼 곧게 가려지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움켜쥐듯 점점 둥글게 먹어들어 갔습니다. 아, 정말, 완전히 가려진 검은 그림자는 달과 꼭 같았습니다!”
유득공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걸 보면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월식은 바로 지구의 거울이라네. 월식을 보고도 지구가 둥근 줄 모른다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겠는가”
이 세상의 중심은 나
우리를 한동한 바라보던 선생은, 다시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셨다.
“자네, 아까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면 우리가 아래쪽일 수도 있다고 했지?”
“예…….”
“공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어, 어디가 가운데라 할 수도 없지.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동쪽 변두리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겠으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우리는 서양 사람이라 부르지만, 그들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동양 사람이겠고. 그러니 자기만이 중심이라 자만할 것도, 변두리라 기죽을 것도 없다네. 다같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그 순간 우리들의 가슴에는 큰 물결이 일렁였다. 박제가의 짙은 눈썹은 더욱 꿈틀거렸다. 하늘, 땅, 지구의 일은 워낙 실감이 안 나 어리둥절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뿌듯한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동쪽의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를 낮추며 살아왔다. 세상의 으뜸이며 가운데는 오직 중국뿐이었다. 나라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처럼, 중국 역시 자신들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중국을 사모하는 작은 나라들은 중국의 제도를 따르고,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중국의 학문이 전부인 양 여겼다.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중국 것이면 충분하였다.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의 문장마저 중국의 것을 따르지 않으면 비난을 받았다. 내 나라 산천과 내 나라 백성의 풍습을 노래한 글은 변두리풍이라 하여 하찮게 여기고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나 저 실 뭉치 위의 매듭을 중국이라 생각하면, 그 자리가 언제나 가운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공처럼 둥근 지구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신이 으뜸이며 가운데라 우길 수가 없다. 선생의 말씀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떠한 나라든지 가운데가 될 수 있고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서자들은 변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나는 자꾸만 실 뭉치를 굴려 보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담헌 선생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모습에 대해서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변두리 자그마한 나라에 산다 하여 큰 나라의 눈치만 보지 말고, 피어날 길 없는 신세라 하여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실 뭉치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선 여기가 세계의 중심이고,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은 조선에 애정을 갖고 탐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즉 세상의 중심이라고 우월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 대국을 향해 있던 눈을 이 땅으로 돌려 이 땅을 연구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번졌을 것이다.
“이덕무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의 산천은 중국과 다르고, 말과 풍습도 다르다. 신라와 고려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은 아직도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 많이 남아 있다. 옛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남의 것을 그대로 빌려 오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눈여겨보기만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시로 표현할 수 있다. 이덕무의 시가 바로 그렇다. 조선의 노래라할 만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음식은 손이나 기껏해야 입으로 잡는 것이며,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모두 다리여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동물인 코끼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비좁은 틀에 거대한 코끼리의 몸을 구겨 넣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다리가 다섯 개인 하마라든가,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별나게 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볼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라는 선생의 말씀에, 나와 벗들이 벅찬 마음으로 따른 것은 당연했다. 우리들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루한 선입견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니던가. 할 수만 있다면 신분의 굴레가 씌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서고 싶었다.
배움의 자세는 이래야한다. 배우기로 마음 먹은 이상, 자기를 깨끗이 비우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받아들여 익히다보면 취사선택이 될 것이다.
물음 1. 1778년 이덕무는 심념조 대감의 수행원으로, 박제가는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 라 연경에 가게 된다. 그리고 1779년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리수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된다. 홍대용이 정조에게 말해서 이들이 청나라게 가게 된 것으로 나온다. 서얼이 이들이 어떻게 뽑혔을까?
정조는 자신의 개혁 정치를 강력하게 뒷받침할 새로운 인재를 원했다. 그래서 서얼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발탁했을 것이다. 이들은 길을 열어준 정조에게 충성을 다짐했을 것이다. 서얼들의 등용은 개혁 정치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가는 정조를 기득권 세력들은 더욱 싫어했을 것이고.
물음 2. 홍대용은 새로운 과학 사상을 어떻게 접했을까?
김태준의 ‘홍대용’(한길사) 읽을 것!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이들은 세상에 절망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벗들과 교류하면서 막막한 날들을 보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책읽고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을텐데. 그렇다면 버텼다는게 어울리는 말일까? 막막한 앞날이라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개고랑으로 던져버릴 수 없는 삶이라면 값지게 보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부. 공부를 하다보면 인정도 받고 싶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아니며 자신들의 현실이 더욱 비참해 질 것이다. 막연한 앞날에 희미한 희망을 꿈꾸면서 자신을 단련시킨다는 것은 그네를 타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조라는 임금과 변화되는 시기를 만나 천국(?)을 맛보게 된다. 어떠했을까? 그리고 검서관이 된다. 이들에게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많은 서얼들은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정조 이후 서얼들의 앞날은 다시 막막해졌을 것이다.
이들은 잠시나마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없었다. 정조가 오래 살았다면 이들이 국가 운영에 참여해서 뜻을 펼칠 수 있었을까?
안소영 작가는 이덕무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판단한 이덕무의 분위기를 한껏, 아주 자연스럽게 살려 놓았다. 그리고 당시 실학자들의 생각과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쉽게 표현했다.
나는 아직 감히 책을 비판하면서 받아들일 능력은 없다. 그냥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읽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