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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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를 오늘에서야 읽는다. '책'자가 들어가는 책들을 좋아하는데 '책만 보는 바보'를 이제서야 읽는다. 왜? 왜긴 게을러서 그렇지.

 

안소영 작가님!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나면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덕무(1741-1793).;1779년 외각검서관, 1781년 내각검서관

 

'책만 보는 바보'는 1792년 12월 20일 부터 시작된다. 죽기 얼마전에 쓰기 시작했다.

 

규장각. 1776년 설치

 

"종묘 부근의 이 집으로 옮겨 온 지는 십년이 되어 가지만 '청장서옥(靑莊書屋)'이라 불리던 엤집 서재 이름은 그대로이다. 백탑 아래 동네에 살 때, 초라한 나의 집을 안쓰럽게 여긴 벗들이 저마다 가진 책을 팔아 지어 준 공부방이다. "

 

부러울 뿐이다. 청장서옥

 

정약용(1762-1836):1783 경의 진사, 1789 검열. 이덕무와 정약용은 규장각 어디선가 만났겠구나.

 

"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 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드넓고도 신비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 아직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유득공(1749~?) -1779 규장각 검서.

 

나는 책을 벗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말을 걸어오는 친구라고 할 만큼 책을 사랑하고 아낄까? 그 정도는 아니다. 아직 책에서 평정심을 얻지는 못한다. 단지 책을 붙잡아 지금의 이 시간들을 견디려고 할 뿐이다. 책이 손을 내미는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책이랑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책을 스승 삼아, 책을 붙잡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한동안 백탑을 홀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를 때에도, 탑을 바라보는 눈길 만큼은 가끔씩 밤하늘 어딘가에서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탑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을 차례로 백탑 가까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친척 집으로 셋집으로 정처없이 떠돌던 나는, 드디어 백탑 아래 보금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1766년 5월이었다. 바깥채도 따로 없고 이엉을 인 지붕마저 손질이 안 돼 엉성한 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중략

  이렇게 나는 '큰 절 동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대사동에서 탑과 함께 살게 되었다. 큰 절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불리던 이름이었다. 나처럼 탑을 아끼는 벗들과 스승이 함께 모여 산 동네였다. 1766년부터 1783년까지, 백탑 아래에서 보낸 나날들은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유득공(1749~?),이덕무(1741-1793),박지원(1737~1805),홍대용(1731-1783),백동수(1743~1816),박제가(1750~?),이서구(1754~1825)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니라, 살면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벗들도 나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눈부신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윤회매를 보며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 특히 박제가의 시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벌이 채취하기 전에는 나도 저러하였건만

  온회의 중간에는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네

 

  우리느 정말 윤회의 중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서자의 신분이라는 우리의 운명, 세운 뜻을 펴 보지도 못한 채 가슴에 품고만 살아가며 하는 이 삶도 윤회의 한 부분일까. 우리에게도 저 꽃처럼 다시 돌아갈 제자리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견뎌 내리라,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벌통에서 밀랍으로 묵묵히 견뎌야 하는 고통, 말간 액체가 될 때까지 활활 타는 불길에 온몸을 녹여야 하는 고통도 기꺼이 견뎌 내리라.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이런 이덕무가 1778년 청의 연경까지 간다. 어떠했을까? 고통을 견뎌내고 그렇게 다시 피어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검서에게 정조와의 만남은 "삶을 바꾼 만남"이 아니었을까? 

 

"운명이란 게 어디 별것인가요? 저는 나를 마음대로 하려 드는데, 나라고 저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내 반드시 풀고 말 것입니다."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이덕무는 박제가를 '서늘한 바람같으면서도 무척 여리고 고운 사람'이라고 했다. '토지'에서 누구와 비슷할까 생각해 보니 홍이가 떠올랐다. 그런데 홍이는 아니다. 홍이에게 서늘한 바람 같은 구석은 없다. 그럼 윤국이? 윤국이도 아닌 것 같고, 그럼 환이?  관수? 백정의 딸과 혼인하여 자식에 신분의 한을 대물림하는 관수가 박제가와 비슷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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