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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카를로 로벨리, 김정훈 역,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쌤앤파커스, 2018.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죽음에 대해 논할 때 비난을 받는 건 죽음이 원자의 재배치일 뿐이라는 가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을 정의할 때 비물질적 가치를 따지게 되는데 만약 인간의 종말이 원자의 재배치일 뿐이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이나 감정, 영혼 같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호기심은 근원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하고 또 하고, 과거의 증거들을 뒤져서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데모크피토스가 원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을 해석하는데 인용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물리학이라는 것에 좀 더 다가가 보려고 한다.
책의 전반부에는 과거 철학자 혹은 과학자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의 가장 작은 입자가 뭔지 연구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들의 철학이,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철학적인 사유는 우리가 우주를 탐구하는 근간이 되고, 지구를 탐색하는 이론이 되었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한계에 이른 지구를 언젠가 떠나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면 우주의 또 다른 정착지를 찾는 근거이론이 될까?’라는 황당무개한 의문도 품게 만든다.
나처럼 수학에 울렁증을 가진 사람이 이런 책을 읽어도 될까 고민해 보는데, 천천히 차를 마시듯 음미하면 될 법한 책이다. 솔직히 여기 나온 이런저런 공식이나 도표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요한건 내가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지속되는 현재’에 매력을 느낀 거 같다. 시공간에 대한 수학이나 철학적 사유를 자세히 설명하는데 그것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설명할 때, 우리가 지속되는 현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뭐 그것은 역사와 연결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지점이다. 우리는 왜 같은 내러티브에 매혹을 느끼는지에 대한 단서라고나 할까.
양자역학적인 면에서 시공간의 개념은 장의 개념으로 발전한다는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읽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드니 빌뢰브의 영화 《컨텍트》를 떠올랐다. 거기에 등장하는 우주인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까 어떤 대화를 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함께 하는건데 어떤 일의 변화는 어떤 인물이나 사물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일은 미래 혹은 과거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것도, 과거때문에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라 지금 행복을 찾을 때 결국 상처받는 과거도 유의미해지고 두려운 미래도 개선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떤 원자들끼리의 관계가 만들어 낸 장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상호작용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엮어내는 불연속적인 기본 실체를 생각한다”라는 이야기. 좀 더 시각적으로 설명한다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공간의 모습이나 존재의 인식, 뭐 그런 것들이 내가 이해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있다는 걸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무려 이천년이 넘는 추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이 알아낸 정보는 추정이 더 많은 것 같다. 뉴턴이 고대의 발견을 수학으로 풀어내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 스티븐 호킹이 지구 너머의 세계에 대한 위대한 원고들을 남겼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라는 말이다.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책에서 골라 내 입맛에 맞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식대로 이해한 바를 설명하자면 세계를 작은 입자로 나누어도 그것들은 상호작용에 의해 변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장의 개념에서 이해해야 하다보니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가 가장 확연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우주의 이야기로 점철된다.
아뭏든 수학을 싫어하지만 이 책은 좀 더 속도를 느리게 해서 읽어야 좋다. 충분히 저자가 제시한 인물들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물리학이 그닥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물리학은 그 원리를 알아내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수학보다는 소설처럼 읽히는 물리학책.. 뭐 이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또, 책이 양장판이 아니었다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내용도 무거운데 무게까지 나가니 편하게 읽어지지 않는다. 학술서로서의 무게감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까?
감히 위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소설처럼 읽으려고 했던 나의 처음 태도를 반성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책을 읽는 의식을 치러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