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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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유물론적 지식에 입각하여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막힌 배관 파이프를 뚫어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정현채 7.

 

이나 윌리엄, 쿠웬호벤(William Kouwenhoven)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심장을 압박하는 인공호흡법을 생각해 낸 사람이다.

 

버나드 라운(Bernard Lown M.D.)이라는 이름은 낯선 이름이지만 심장 제세동기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이는 많을 것이다. 버나드 라운 박사는 심장 제세동기를 만든 의사이자, 핵전쟁반지국제의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버나드 라운 박사는 개발 도상국의 의사들이 최신 의술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단체의 의장을 역임했다. 버나드 박사는 1985년 노벨평화상 외에도 명예로운 다수의 상을 받았다. 이상은 버나드 라운 박사를 소개한 책 날개의 내용이다. 도서를 읽어보니 저자의 화려한 수상 내역보다 그가 치유자로서 얼마나 위대한 길을 걸었는지에 대한 감동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는 현대 의학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데 비해 의사의 사명감이나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치유보다는 의료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혹은 더 큰 이득을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해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치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심리상태와 병증과의 관계를 기술한 부분이었다. 불만으로 가득한 주변환경이나 가족관계가 병을 만들어 오는데 심지어 뮌하우젠 증후군처럼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큰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실제 그러한 증상을 드러내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사가 진정한 치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병에 관한 증상 너머 한 인간과 그의 생애에 깊게 관심을 가져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 과학적인 진단 외에도 환자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얼마전 피부염 증상이 있어서 몇달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의사가 피부염의 원인이 스트레스성이라고 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거의 6개월을 염증으로 고생하고 약을 먹어도 그때 증상만 괜찮고 약을 끊으면 다시 증상이 나타났다.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 이상 뭘 더 내려놔야 하는가 싶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말이다. 피부염 증상은 약으로 좋아지고 있지만 이번엔 소화계통까지 문제가 생겨 고생을 하고 있다. 책대로라면 내과를 간다고 해서 내 증상이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근본적인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야 진짜 치유의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치유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하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살펴야 한다. 고통과 두려움에 싸인 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의사는 개인적 특수성 속으로 편입해 들어갈 수 있다” (15)

 

버나드 박사는 치유에 이르는 길도 이지만, 사람의 심리상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이라고 지적한다. 의사의 한 마디는 환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단어가 되기도 하다는 것을 몇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준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면 불필요한 검사 없이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쉽다고 말한다. 의사가 긍정으로 가득한 격려를 환자에게 해 줬을 때 수명이 얼마 안남은 환자가 기적처럼 생존하는 사례도 여럿 있다. 반면에 가벼운 증상의 환자가 의사의 말에 급격하게 병색이 안좋아서 사망에 이르는 사례도 있었다. 왜 그럴까. 그건 의사라는 지위는 생명에 대한 권위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의사뿐이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는 청와대 청원이 마치 유행처럼 된 듯하다. 심지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조차 청와대에 민원을 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을 위해 원칙을 지키기보다 억울한 사례로 얼룩진 경우가 많이 알려져서였을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차별을 거쳐 왔던가. 이제 겨우 원칙이 통하는 사회로 가려고 하는 과도기에 있는 우리 사회. 그래서 병원에 가거나 송사가 있을 때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정보와 힘이 없는 위치에서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 아니던가.

 

의학적 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환자가 안고 있는 임상적 문제들을 신체 기관별로가 아니라 환자라는 한 인간 전체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368.)


최근 다녀온 병원에서 의사를 만난 시간은 2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만날 의사들이 나와 좀 더 시간을 보내주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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