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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계급의 출현 -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지음, 이규현 옮김, 김지윤 외 해설 / 이음 / 2022년 6월
평점 :
망설이거나 눈치보지 않는 <녹색 계급의 출현> 첫 문장은
시작부터 본론으로 진입하는 강렬함이 있다.
"생태주의가 그저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정치를 조직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볼 여지를 던지는 질문인 것인가 처음에는 생각했다가
읽으면서 차차 생태화를 추구하는 지구생활자 모두가
스스로 녹색 계급임을 인식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기 위한 저자 라투르와 슐츠의 다급한 호소로 들리기 시작했다.
과거 자유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와 같은 사상투쟁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에 의해 성공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를 짚으면서
생태운동의 현주소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태주의에 관심을 보이지만
대중 결집, 대중 봉기라는 조직적인 움직임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와 제도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이렇다할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갈등 이슈에 매몰되어 제자리 걸음을 할 시간이 없다.
시간은 '생태주의 문화의 편' 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태주의에 대하여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다" 고 규정하면서
생산에 집착하는 근대화의 파괴적 삶의 조건들을 인식하고
나아가 근대화에서 생태화로 전환, 실천할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태주의는 기득권층과의 갈등을 야기한다는
구조적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찰이
앞으로 펼쳐질 저자의 주장을 신뢰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사회 계급에 대해 탐구한 내용에는
사회생활이라는 경쟁 속에서 인간 개인은
자신의 취향과 우월성에 맞는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더 나은 상징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내몰린 개개인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이다.
이로 인해 계급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자신의 정체성 인식하기를 멈춰서는 안 되겠다.
"녹색 계급" 은 거주할 수 있는 지구 환경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생산, 번영, 발전은 곧 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생산을 제한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옛 지도층이 부과한 위계질서에 저항하려 하고,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자 소유자라는 근대적인 사상에서 벗어나서
탈인간중심주의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생명체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구 차원의 거주 가능성 문제를 떠맡는 계급이 바로 "녹색 계급" 인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타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녹색 계급이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주변인, 비주류에 속한다는 미지근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들의 입장을 똑바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다소 급진적이라 해도 조직적으로 정치력을 모아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생산 중심의 사고방식,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점점
지구에서의 거주 가능성을 앗아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스스로를 "녹색 계급"이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정치적 자각을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본문 뒤에 따르는 역자 후기와 한국의 녹색 계급을 위한 부록으로
녹색 계급을 위한 가이드와 실천을 위한 메모 3가지는
라투르와 슐츠, 두 저자의 문제의식과 변화를 갈망하는 호소에
독자의 공감과 이해를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개인적으로 역자 후기를 포함한 4개의 해설이
본 저자의 주장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들었고
특히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종 교수의 해설에서
라투르와 슐츠의 녹색 계급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문제 의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해설에서 언급한 김홍종 교수의 <은둔기계> 도 찾아서 읽어볼 요량이다.
우리는 현재 인간이 지구에 행한 폭력이 가히 파괴적인 세상,
자기성찰이 실종된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보다 더 빨리 문제인식을 하고 행동하는 기후활동가, 환경운동가들이 주변에 있지만
이제는 지구보다 나를 위해, 내 미래를 위해 지구를 보호하는 데
모두가 행동하는 "녹색 계급" 으로 거듭나야 한다.
개개인의 행동이 효과적이려면
개인을 넘어 기업 차원의 변화, 그리고 국가 차원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계급 의식을 키워내어 세력 결집을 이루기 위해
라투르와 슐츠가 제시한 방법들을 공유하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인류가 지구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심지어는 파국이 도래하는 것을 자초하는 인류세에 걸쳐 있는 지금,
인간의 생존이 꿀벌의 생존이나 북극곰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게 들려온다.
이미 우리는 최근에도 뉴스를 통해 꿀벌들의 실종을 대면하고 있지 않은가.
<녹색 계급의 출현> 마지막 해설을 맡은 김홍종 교수의 문제 인식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인류세적 주체는 파국 앞에서 만들어지고,
파국 앞에서 서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고 전진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좋은 미래를 박탈당했음을 통감하는 자들이다.
이 박탈감, 좌절감, 파국에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
......
기후 파국 앞에서 사회적 정체성이 깨지고 파열될 때,
인간은 비로소 파국 앞의 생명이라는 공통 기반이 드러난다.
원전 참사 앞에서 나는 고사리나 개,
물고기나 흙과 구별되지 않는 한 지구적 존재다.
뱃속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득 채운 채 죽은 알바트로스다.
특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상이 파괴되고,
우리는 알바트로스와 동일한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로
스스로를 인식한다.
즉, 우리가 알바트로스다. 내가 알바트로스다.
아니 저 알바트로스가 나다.
파국주의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세계의 접합점을 찾아가는 것이
생태화의 과정에 핵심적인 행동 양식이다.
생태주의를 위한 효율적인 실천 방안들을 76개의 단상 메모로 담아
진지하고도 호소력 있게 풀어가고 있는 <녹색 계급의 출현> 은
2022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 에 선정되기도 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좋은 책인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완독하고 난 지금 영영 이 책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녹색 계급으로서 살아갈 나의 과거와 미래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카야 인터내셔널의 "슬기로운 지구생활 북클럽" 기자단으로도 활동중이어서
지구환경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더 나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고민하는 바,
"녹색 계급" 이라는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갖고 가면서
적극적으로 연대의 힘을 구축해 나갈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리를 먹여살리는 세계와 연결하는 것"
생산의 외부로 행동의 지평을 늘리는 것이 녹색 계급의 책무라고 말한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존이라는 이슈가
사적이고 이기적인 과제가 아니라
공통적 과제라는 인식을 함께 해야 한다.
"비인간과 인간 모두 함께 생존하는 것" 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이 무시했던 비인간 생명체들의 높이로
인간을 스스로 강등시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현재 자신의 생을 뛰어넘어 후대 자손들이 거주 가능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나아가 인류세의 단축을 위해 나부터
잠재적으로 다수파라는 믿음을 갖고
"녹색 계급"이라는 정치적 자각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지구를 위한 정치적 인간" 이 되기를 자처하고자 한다.
슬기로운 지구생활 북클럽 멤버들에게 이미 책 추천도 끝마쳤다.
보잘것 없는 이 <녹색 계급의 출현> 책리뷰가
자신 또한 "녹색 계급" 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기쁠 것 같다.
초록색 바탕지에 조금 더 진한 초록색 글자로 쓰여져서
읽는 내내 안정감을 느꼈던 것도
독특해서 좋았고 녹색 계급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적 느낌도 좋았다. ㅎㅎㅎ
모쪼록 읽을만한 책이라는 판단에 이르기를!
동네 도서관에 없다면 <녹색 계급의 출현> 을 희망도서로 신청하는 것도
녹색 계급의 실천 방안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