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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한겨레출판 서포터즈 하니포터3기로서 만난 두 번째 책, <내밀 예찬>.
6월에 신청한 도서였는데 6월 말에 출간되어 이제서야 만났다.
다른 책보다 기다림이 더 지루했다.
김지선 작가만큼이나 나 또한 "내밀함" 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가만히, 자신이 원하는 정도와 방식으로
지켜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내밀함이 있다.
취향은 옮고 그름이 아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공간의 밀도는 낮아졌고
관계의 점도는 떨어졌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함께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예전에 비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지배적인 집단주의의 관성 속에서
'자기 자신' 으로, 자유의지대로 사는 일은 힘겨운 미션이 되어간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유난스러워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만의 특질은 시대의 트렌드가 어떠하든
영원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밀함에 대한 정의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연약함, 부적응, 예민함 이라는 관련 키워드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함을 뜻하는 "내밀함" 이라는 정의를 놓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 사회적인 인간들의 양상, 소소한 일상에 대한 단상들을
무겁지 않으면서도 얕지 않게 풀어 간다.
자신을 내향인이라 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점심이탈자' 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내 얘긴가 싶은 동질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점심이탈자' 는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자나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 개개인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나 또한 '자발적 은둔' 을 즐기는 사람이어서
조직 생활을 했었더라면 점심이탈자가 되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처럼 '점심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를
속으로만 했을 것 같다.....
한국의 조직 사회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곧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로 이어진다.
내향인에게 실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덕목은 그래서 '용기' 가 아닐까 싶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객관적인 관점을 짚어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저자가 겪었던 감정들을 가감없이 드러내어
독자와 내면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내향인의 대화 방식은 적당한 거리와 속도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그 템포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독자일 때에 더 농밀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을 파악하며 친밀해 지고자 방법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을 타입으로 구분하려 한다.
지금은 옛 것이 되어버린 혈액형에서부터
지금은 MBTI 를 많이 물어보기도 하는데
해리포터 기숙사 테스트도 있다는 건 저자를 통해 처음 들었다.^^
어떤 집단 안에 개개인을 끼워 넣어서
나름의 판단을 해보려 하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규정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자기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상대방의 판단에서 오는 오류가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내가 만든 틀에 상대방을 끼워 맞추기 보다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부터
서로의 세계는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지선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상당히 많은 지점에서
똑같이 내향인이라는 접점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누락의 말하기를 하는 이야기에서는
같은 내향인이지만 나와는 또 다른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비슷하면서 동시에 다르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때마다
그 아름다운 '장소' 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 숨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열에 여덣은 후자가 이기고,
결국 나라는 존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던 것이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저자의 이 단상이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은
나의 경험과 겹쳐기 때문이기도 했다.
직원 눈치보지 않고 몇 시간이고 차 한 잔에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내게 또 다른 독서의 장이다.
기계적인 친절함을 내내 접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려가 묻어나는 직원의 한 마디를 늘 기억한다.
주문하려고 앞에 서는데 먼저 나오는 한 마디,
"돌체 블랙 밀크티요?"
스타벅스에서 내가 주문하는 메뉴 중 8할은 돌체 블랙 밀크티.
그걸 아는 직원분이 나를 향해 나름의 사적인 표현을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냥한 관심을 받은 나는
형식적으로 응대하던 모드에 '얼음 땡' 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태도가
무례하지 않고 세심하다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환대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 거리를 좁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서적 거리두기마저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보이지 않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원히 서로를 향해 무심하게 산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자유의지로 신체와 영혼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
홀로 있는 시간을 해독제로 여기는 사람들.
정신을 스트레칭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사람들.
진지함을 존중하는 사람들.
자아와 농밀한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
고밀도 환경에 취약한 사람들.
어설픈 욕망과 거리를 두는 사람들.
내밀함으로 뭉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이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향인에게 이와 같은 모습이 없지는 않은 것처럼.
우리는 어느 정도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외향적이기도 하니까.
이 책의 제목이 <내밀 예찬> 이긴 하지만
굴욕적이고 모욕적이거나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참 공평하기도 하지.....;;
그럴 때 모두에게 적용해도 좋을 팁 하나를 이번 기회에 기억해 두려 한다.
세상을 향한 소심한 거부라고 해도 좋다.
일순간에 모든 것이 차단된 시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 방법은
어쩔 수 없다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능동적인 자세이다.
자발적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잠시 단절하는 비행기 모드 는
모두에게 회복하는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다.
매년 2월 제주도 여행갈 때마다 비행기 모드를 켰었는데
앞으로는 육지에서도 필요하면 좀 써먹어봐야겠다 ㅋㅋㅋ
이러한 내밀함이 곧 나의 힘으로 작용해서
매일 규칙적인 삶에 리듬감을 주기도 하고
나의 본성을 거슬러가며 애쓰는 일에도 동력이 되어줄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