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문해력 - 나도 쓱 읽고 싹 이해하면 바랄 게 없겠네
김선영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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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해석하는 힘" 을 일컫는다.

부분적으로 단어 하나에 모든 비중을 실어서 이해하기 보다는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찾아내고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어

내 글로 확장하는 능력까지를 문해력이라고도 본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낮추는 것은 아니다.

영어의 경우도 어휘 하나를 알면 문장 전체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그 지분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지기도 하고

우리말 단어에서도 역시 문해력을 가늠하는 데 있어서 그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어른의 문해력> 의 저자인 글밥코치는 그래서 기분만 내는 독서를 할 게 아니라

정확히 문해력 PT 5단계를 통해

각자의 문해력 체급을 파악하고 문해력을 이루는 3가지 근육을 키워서

자신의 문해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확인하기까지를 목표로

주3회 8주 완성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일명 "문해력 PT(Personal Training)"

 

누구나 문장 하나를 볼 때 쓱~ 읽고 싹~ 이해하면 참 좋겠지만...^^

(나도 그렇다.)

문장과 문맥을 수용하는 각자의 능력이 다르고

나아가 그 능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 내지는 그 가치에 대한 생각 또한 다양하다.

글밥코치의 친필 사인 속 내용처럼 어디가서나 '독서에 진심' 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내게

<어른의 문해력> 은 출간되었을 때부터 늘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는 그 무엇이었다.

내게도 '독서 소화제' 의 역할을 하는데 기여하는 책으로 남길 바라며

예스리커버를 만나게 되었다.

어떤 책이든 서문과 목차를 통해서 내가 정하는 나만의 '책의 질' 을 평가하게 되는데

서문 속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튼튼한 문해력' 을 위해서는 젓가락 두 짝처럼 '읽기와 쓰기'를 함께 가야 한다.

문해력의 중요성은 이제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고

이 책은 실질적으로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활자와 친해지기, 활자와 놀기를 권하며

문해력 부족이 결국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예스리커버 블랙래빗에디션 <어른의 문해력> 에서 말하는 문해력 향상의 3가지 토대는

어휘 근육, 독서 근육, 구성 근육을 키우는 훈련에 있다고 말한다.

보통 PT를 받으러 가면 인바디 측정부터 시작하듯이 문해력 체급 측정을 위해서

어휘 자체의 의미를 알고 적재적소에 적용할 수 있는지 (어휘 근육),

맥락이 있는 긴 글을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지 (독서 근육),

읽고 소화한 내용을 내 방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지 (구성 근육)

문해력 체급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스마트폰으로 못할 것이 없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요즘

물성을 지닌 책을 직접 들고 다니는 불편함을 최소화 시켜주는 e북을 간편하게

스마트폰 안에 넣어서 이동하며 보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스마트폰에 적혀 있는 글들은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유혹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읽는 글' 이라기 보다는 '보는 글' 에 가깝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단계로 들어갔을 때 독서의 행위가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인데

스마트폰 글은 전체를 읽지 않고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며

발췌독하는 경향이 커서 훑는 독서가 되다 보니 읽은 내용이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글자 자체보다는 맥락 파악에 더 힘을 쏟으며 읽을 때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뇌로 바꾸는 것이 문해력 PT의 목적이라고 볼 때

그 시작은 역시 '반복'이다.

스스로 스무고개 문제 내보기, 유의어와 반의어를 이용하여 문장 짓기,

문장 속에 적절한 어휘를 골라 넣기, 접사와 한자어 이해하기,

독후감이 아닌 '독전감' 써 보기, 낭독하기, 질문하며 읽기,

한 줄 핵심문장으로 요약하기, 나의 경험을 배경지식화하여 읽기 등의 방법을 통해서

어휘 근육과 독서 근육을 만들고 나서

문단 재구성하기, 맥락에 맞게 이어 쓰기, 문장 구조 베껴 쓰기,

형식을 바꿔 다시 쓰기, 비슷한 단어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질서 잡아보기의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성 근육에 필요한 트레이닝까지 받아볼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들을 후루룩 넘어갔지만 사실 이 부분이 요체이다!

저자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독자로서 동의하고 설득될 때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의 이로움이기 때문이다.

읽고 이해하는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쓰는 단계로 나아가며

더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긴 하지만

이는 모두 일상 전반에 걸쳐서 사람들과 더 유연하게 소통하는 기술을

장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맥락을 읽는 것은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은 아니다.

문해력은 이렇게 글밥코치의 PT처럼 훈련과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고로 누구나 문해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문해력 향상이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라는 의문이 있다면

여기서 인간의 욕구를 언급하고 가야겠다.

끊임없이 타자의 이해와 인정을 받고 싶은 존재가 인간이고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바램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원하는 1인으로서 글밥코치의 문해력 PT를 일상 생활에 적용, 실천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자신감을 키우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은 다시 안정권으로 들어왔지만 작년 후반 근거없이 스스로 위축되어 추락했던 내 자신감을

다시 끌어올리기까지 참 힘든 여정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후회없이 노력하는 것이었고

나의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서서히 궤도에 안착한 나를 다시 만났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를만큼 흔들리는 나 자신이라 여겨진다면

<어른의 문해력> 이 제시한 주3회 8주 완성 프로그램을 속는셈 치고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진행하는 중에 이미 기존의 생활 패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될 테니.


 

<어른의 문해력> 에서 알려준 여러 방법들 중에서

나는 '요점을 정리해서 말하는 습관' 에 귀가 솔깃해진다.

메타인지를 가늠할 때의 기준은 타자에게 설명을 할 수 있고 없음에 있다고 볼 때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와 같은 말을 글밥코치도 하고 있으니

이젠 확신을 갖고 실천해보려 한다.

두괄식으로 중요한 내용, 즉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

나의 메시지를 타자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기 시작하면

화자인 나도, 청자인 타자도 대화에 집중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될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읽고 쓰기는 행위를 계속하면서

글밥 코치의 문해력 PT 프로그램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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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혼란 -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당신을 위해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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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문제는 무기력이다>, <문제는 저항력이다> 에 이어서

마음의 문제를 다룬 박경숙 인지과학자의 세 번째 책 <어른이라는 혼란>

와이즈베리에서 출간되었다.

흐름상 세 번째 책 제목도 <문제는 혼란이다> 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적 무질서와 혼란으로 인해 표류하는 이들과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와 출판사의 영역이니 이쯤에서 넘어가는 걸로.^^





"문제는 엔트로피다!" 에서 엔트로피가 뭔지

지극히 문과형인 나로선 이것에 대한 궁금증부터 해소해야

이 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의부터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이 용어를 활용하고 있는지

저자가 다행히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학창시절에 언뜻 과학 시간에 배운 것도 같은데

세부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나오는 용어였는지는 2부가 되어서야 밝혀진다.

딱 분자식 배울 때 본 것 같은 저 엔트로피의 밀집도와 질서도를 보니

지금까지 읽었던 게 무슨 말인지 더 알아듣게 되기도 했고.

그렇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에서 나온 말로 '무질서의 정도', '에너지의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엔트로피를 인지심리학적으로 의미 변환을 해보면

엔트로피 증가시 불확실성과 무질서함이 높아진다.

의식과 감정이 무질서함은 곧 혼란스러워 진다는 것이고

의식의 수준이 낮아지면서 집중과 몰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마음의 문제로 확장되어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됨으로써

자연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한 것.

반대로 엔트로피가 낮으면 확실함이 크고 질서가 잡혀 있어서

안정적인 의식 수준을 가질 수 있는 관계로

에너지를 하나에 집중해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 달성이 가능해질 확률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핵심은 이러한 엔트로피의 증가와 감소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그것에 휩쓸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

저자 또한 살아오면서 무기력, 저항, 혼란의 시기를 거쳐왔고

현재는 그로 인해 '성장'의 개념과는 또 다르게 새로운 삶으로의 '진화'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음의 문제로부터 자기구원할 수 있는,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도 만날 수 있다.

효과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공은 이제 독자에게로 넘어가는거지!


마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좋은 예와 나쁜 예들을

먼저 살다 간 유명인들의 삶의 흔적들로 보여 주고 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통해

엔트로피 법칙과의 연관성을 풀어놓은 부분이 재미있었다.

욕망만 따르다 몰락한 오스카 와일드는

정의나 선보다 아름다움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던 유미주의자였다.

이미 결혼하고 두 아들이 있음에도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가 있는 예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풍기문란죄를 저지른,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던 작가로 워낙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좋아하는 작가인데 마음이 가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당시 보수적이고 위선적이었던 영국 사회의 민낯을 감추려고

오스카 와일드라는 한 개인에게 모두 떠넘겼다는 생각에

이 작가에게 대한 연민이 적지 않은 건 인정한다.

이번에 <어른이라는 혼란> 을 만나면서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이런 나의 관점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지금까지 그의 인간적인 패배와 파국의 원인을 쾌락만 쫓으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과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당시 사회에 두었다면

이번에 엔트로피 자연법칙에 근거한 인지심리학적 측면으로 본 이후로 오스카 와일드의 죄라면

자유를 조절하지 못함으로써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했고

'혼란스러워 지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용되는 모든 것이 다 유익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면 그래도 삶에 대한 희망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은 쓸모를 못 느끼게 되고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되어 결국은 파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싶다.

그 마음의 문제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잘 다루기만 하면 기존의 삶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몇 가지 유용한 방법들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초인은 자신이 가졌던 이념과 방법, 사고와 행동을 계속 넘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니체는 신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 강요했던 순종적 마인드로부터 벗어나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의심하고 변화시키는 탁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지점도 이와 비슷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무기력, 저항, 혼란이 다 있어서

니체가 말한 인간 정신의 변화 단계로 대입하자면

우리 안에 낙타, 사자, 어린아이가 공존한다고 달리 말할 수 있다.

늘 관심이 많았던 니체와 분석심리학자 칼 융, 신화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을 빌려와서

더 풍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덕분에 술술 읽었다.

저자가 낙타의 대표적인 상징성으로 제시하고 있는 무기력

외부의 힘이 나를 강제로 만든다.

사자가 의미하는 저항이라는 상징성은 나의 내부의 힘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그것이 나를 강하게 하기도 하지만

분노나 자존심에 휘둘리다 보면 자신의 의도에 반항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자기 자신을 멈춰 세울 수도 있다.

어린아이로 대입해서 말하는 혼란은 그저 순수하고 자유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울 가능성도 안고 있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삶을 인간의 직업에 빗대어 제시한 것도 나름 신선한 접근이었다.

대신 짐을 지는 낙타의 삶에 직장인을, 자기 자신을 위한 사냥을 하는 사자는 1인 기업,

마음속 즐거움과 호기심은 갖고 가면서 의무는 지지 않는 어린아이는 예술가로 보고 있다.

이 의견에 대해서 동의하시는지....?^^





혼란의 터널에서 다시 의식의 질서를 찾으려면

중요한 건 '자각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조건으로 한계를 정하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다.

그런 다음에는 최우선 목표에 집중하는 데 있어서 방해의 소지가 있는

덜 중요한 목표들을 거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덜 중요한 목표들이 최우선 목표에 써야 하는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엔트로피를 높여 혼란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힘을 빼는 것과 내면화 되기까지 훈련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재편할 수 있도록

운명에 떨지 말고 자신의 강점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소명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가장 잘하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 앞에 놓인 저항들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도달하여 자각을 경험한다면

기존의 삶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인생의 후반기에는 니체가 말한 초인에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처럼 나 또한 조심스레 기대를 해 보면서....^^

문헌정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는 요즘

남들은 괜찮다는데 난 나대로 좌절의 쓴맛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어쩌면 나는 불안과 치열함을 안고 가야 하는 경쟁적인 환경을

회피해 왔던 것은 아닌지 <어른이라는 혼란> 을 읽으며 돌아보게 되었다.

개개인의 생각과 가치의 기준이 삶의 행복과 만족도를 좌우한다고 볼 때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나의 무너져버린 자신감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외부적인 것에서 온 것임을 알아차린 순간

타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낙타에 지나지 않다고.

외부의 어떠한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지를 더 고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의 완벽하지 못함, 아니 완벽할 수 없음을 제발 이제는 받아들여서 편해지고도 싶다 ㅋㅋ

힘 빼야 할 것들을 잘 분류해서 나의 소명을 찾고

궁극적으로 자기 실현하는 개성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

시간의 약을 먹는 동안 그래도 전보다 더 본래의 나를 찾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존엄하고 고유한 나, 세상에 유일무이한 내 안의 어린아이를 끊임없이 발견하면서

끊임없이 현재의 나를 넘어서고 싶다.

진짜 '자유' 를 누리고 싶다!

바꾸고 싶은 나의 모습과 그 문제의 근원을 의식하게 되었으니

내 마음부터 온전히 내가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훈련부터 시작해볼까 싶다.

생의 마지막에 오스카 와일드의 회한이 묻어나는 한 마디를

나는 이렇게 긍정 확언의 형식을 빌려서 선언하고 싶다.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 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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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여행하는 수렵채집인을 위한 안내서 - 지나치게 새롭고 지나치게 불안한
헤더 헤잉.브렛 웨인스타인 지음, 김한영 옮김, 이정모 감수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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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부 진화생물학자의 공저인데 분류는 인문교양서.

코로나 19를 거쳐간 현재를 이들은 '새로움의 가속화 시대',

'WEIRD시대'라고 재정의한다.

위어드 세계, 위어드 삶은 "서구의 교육 수준이 높은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 의 환경을 의미하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인간이라는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환원주의, 과학만능주의를 경계하며 진화에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최신이론들을 소개한다.

진화입문서로 우리 삶을 바꾸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며 시종일관 그 바탕에는

호모 사피엔스를 폭넓게 보는 관점과 인간탐구가 깔려 있다.

과학, 자녀교육, 사회학, 과학철학 등등 장르를 포괄하며

인문교양서로서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풍부한 인사이트를 뿜어내는 와이즈베리 신간이다.

탈공업인으로, 다시 구석기인들의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결을 가진 생활방식과 질서를 꿈꾸며 제안하는 저자들의 의도가 선명해서

가독성도 좋았다. 풍요와 선택권이 도처에 깔려있는 주변을 

천천히 한 바뀌 돌아보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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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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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갔다가

입구부터 시작된 통로 매대에서 발견한

와이즈베리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어서 들고 다니다가 이렇게 한 프레임에 담아본다.^^

<90년생이 온다> 로 한 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임홍택 저자의 신간이다.

이번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세대담론의 차이와

Z세대가 바라본 공정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다뤘다.

나 또한 기성세대에 속하고 젊은 세대의 인식 구조가 다름을 요즘 들어 체감하던터라

저자가 바라보고 문제 제기한 이슈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쳤다.

우선 서문이 너무 길지 않아서 맘에 든다...ㅋㅋ

사실 저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서

정독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너무 길면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핵심만 짚어주니까 뭘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 감 잡고 시작할 수 있었다.




2020년 전후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공정담론의 예열 과정을

저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한 가지 논란에서 발견하고 가져온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추진됐을 당시 기성 정치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20대 젊은 세대들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예상하지 못한' 기성 세대이다.

MZ세대가 희한하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게 아니라

젊은 세대는 진보적일 것이니까 통일이라는 역사적이고 평화로운 이벤트를

반대할 리가 없다는 기성 세대 중심적인 어이없는 예측이 문제인 것이다.

공정담론이 젊은 세대에서 이슈가 되어 다양한 논쟁거리가 양산되는 데는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면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권을 가진

기성 세대와의 불화가 결정적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왜 '공정' 에 이렇게 집착하듯 매달리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그런 노력은 커녕 예측이 어긋난 이후 당혹스러워함에서 끝나지 않고

미성숙하며 젊은 세대가 보수화됐다고,

심지어는 개인주의가 득세한다며 이기적이라고까지 몰아부친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4년을 기다려온 젊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외적인 권력에 의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기성 정치권에게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했을 뿐이다.

젊은 세대는 단일팀 추진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박탈당할 위기에서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대의를 위해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희생할 이들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자칫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라치기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정담론에 대해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그것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공정의 기준에 대한 반감은 잠시 내려놓고

그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공정'이란 단어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 제목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공정을 외치고 있긴 하지만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마주하는 현상과 상황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 사회에 '부당에 대한 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다소 까칠하다 해도 MZ세대의 당당한 목소리가 어쩌면

고정관념, 편견, 관행, 새치기, 침묵적 카르텔이 지배했던

불공정한 시대로부터 이제는 변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는 듯 하다.

시어머니가 호된 시집살이로 고생했으면서

고스란히 자신의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처럼

기성세대가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젊은 세대에게

절차와 기준의 부당함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이유는 없다.

가만히 앉아서 그 부당함을 떠안을 Z세대도 더이상 아니다.



당신들의 공정이 진짜 공정인가요?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한 공정이라는 개념

그들의 언어는 단지 '부당하다'는 것이다

현세대가 공무원과 중소기업을 원하지 않는 공통의 이유

조직 안에서의 새로운 외침 '그것은 부당합니다'

국가의 정책 차원까지 파고든 부당함의 외침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부당하니까!

그동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자격에 대해 묻는다

태생적인 불평등에 대한 반대급부

부모보다 가난해지지 않는 세대가 되는 방법

그들이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식의 줄 서기

조직 사회에서 부당함 논란을 줄이는 방법

이걸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게 소제목을 너무 잘 뽑았다. ㅎㅎㅎ

완독한 1인으로서 소제목만 봐도 저자가 같이 생각해보자는

이슈의 핵심을 고스란히 모아 놨으니 말이다.

절대적으로 위 소제목들 만으로 이 책을 다 봤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Z세대의 인식의 기저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지 그걸 들여다보고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들이 부당함을 느끼는 지점과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의 독서가 마무리될 것이다.

같은 성인인데도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의 서열로 인해

처음 보는 자리에서 반말하는 상대에게 역지사지의 정신을 보여주는

Z세대의 대응에 당돌하다는 반응부터 보이기 일쑤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손윗사람의 위엄을 반말로 과시하는

관습적인 한국만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들의 행동이 이해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들에게는 당연한데

그 이전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불화가 이렇게

인간관계속에서 사부작사부작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거꾸로 젊은 세대가 꼰대에게

알려줘야 하는 이 상황이 그들 입장에서 참 피곤할 법도 하지 싶다.

그간의 관행이나 권력화 때문에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지 못해서 힘겨웠던 기성세대의 시간은

이제 MZ세대로부터 변화의 기점으로 향하는 반환점을 맞이했다.

괘씸하고 당돌하다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들의 논리, 인식의 구조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이 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으니까.

그 변화의 방향이 퇴행인지, 진보인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하기에 달려있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투명성 인식이 그보다 약간 앞선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나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이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를 논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공정' 이라는 키워드의 본색을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마무리하고자 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캐릭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드라마를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Z세대의 부당하다는 외침을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예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공평, 공정, 평등... 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은 이 키워드들을

그림으로 쉽게 접근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워낙 많이 알려진 그림인데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어 정의를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떤 그림이 어떤 키워드를 정확히 반영했는지 구분짓는 매칭은 더더욱 아니다.

개개인이 소유한 재산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참고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서도 다른 관점으로 그림이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관점과 결과의 평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 따라

공정함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를 거론하면서

수능과 학종,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한 이 사회의 쟁점에 대해

MZ세대를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시험에 기반한 능력주의 시스템의 '예측가능성'을 선호하는 것이다.

저자는 '통제가능성' 이라는 표현을 더 중점적으로 사용하는데 큰 차이는 모르겠다.

예측이 될 때 통제로 연결되는 것이니까.

원칙이 있고 통제가 가능할 때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교란이 발생한다 싶을 때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이 가진 권리를 지키고 싶은

'개인보호주의' 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도 없지 않다.

개개인이 하나의 전체이자 덩어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각각 다른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이기주의로 전체를 치부하는 것 또한 곤란하고 위험한 시선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나 민족 문제같은 대의, 직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희생하는 일의 미덕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에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강요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저자가 제시한 세대담론의 불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로 놓고 제로의 시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총체적 부당행위가 이 사회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시간은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관행이나 적폐는 좋고 나쁨이 없고 그냥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젊은 세대에게 줄 서기의 원칙은 공정함의 또 다른 상징과도 같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규칙을 위반하는 문화를 조금씩 지워나가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요구된다.

부당하다 싶을 때 저항하는 것은 사회 공정을 바로 서게 하는 데 중요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정함을 부르짓는 행위의 본질은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저항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90년생이 온다> 보다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가 훨씬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독서토론 주제 도서로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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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쪽으로
이저벨라 트리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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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Wilding 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생태적 관계 속에서

인간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야생 상태 그대로 자연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되돌리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중심에 둔 생태학 에세이이다.


평소에도 가볍지 않은 인문학적 담론들을

얕지 않게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신간 <야생 쪽으로>

어느 영국인 부부가 '넵' 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대농장 사유지를 쟁기로부터 해방시켜

토양을 쉬게 하고 회복하게 하여 나아가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저벨라 트리는 작가이자 여행 저널리스트이며

그의 남편 찰리 버렐과 함께 넵 황무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찰리가 물려받은 대농장 '넵' 은 찰리 버렐의 조상인 3대 준남작 찰스 메릭 버렐 경이

대략 장미전쟁 때 생을 시작해서 수령이 550년쯤 되었을 나무에게

'넵 오크' 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당시 유명한 건축가에게

나무 바로 옆에 저택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때가 1800년대 초.

그렇게 '넵 캐슬'과 지금의 넵 사유지가 생겨났다.

인간 문명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대초원들은

인간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를 갈아 엎어 농사지을 땅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삶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와 그의 남편이 17년 전부터 야생을 복원하게 된 이유는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대농장을 유지함으로써 돌아올 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시작하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게 되면서

그들의 넵이 더이상 사유지가 아니라

지구의 탄소를 격리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토양에게 어떤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에게 돌려주게 되면

수자원 및 수질 정화는 물론이고 인간이 그 땅을 통해 얻게 될 식재료들과

풍부한 식량, 인간의 건강과 나아가 동물 보호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30년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생물의 다양성은 천연자원들과 종간 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에 의지한다.

전반적으로 한 생태계에 더 많은 종이 살수록

생태계의 생산성과 회복력은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능력이 있음에도

인간은 자연의 재생, 재활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에 애정도 없고 게다가 염치까지 없어 그저 빨대만 꽂고 있다.

어떻게든 착취해서 욕망을 채우며 인간 문명을 사방으로 뻗쳐 나가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만 일방적으로 자연에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점점 길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이저벨라와 찰스 부부처럼 진정 인간 문명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에 의해 재배되거나 사육되지 않는 상태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rewilding" 은 그래서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바람직한 캠페인이 되어야 한다.

원래 자연이 가던 그 길을 인간이 더 이상 집약적 농업과 공장식 축산으로 가로막지 말고

모든 생명체가 경계 없이 안정적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갈 길을 터주는 것이 곧 자연에게 원래대로 주도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재야생화 프로젝트는 주로 영국의 현실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영국의 새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

그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저자 부부의 감동이 오롯이 전해졌다.

초식동물, 야생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연을 돌려주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인간의 개입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이롭다.

넵 사유지의 자연주의적 방목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한계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로움과 가치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영국의 정부 기관인 잉글리시 네이처도, 공무원 사회에도

그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자연적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예산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공무원 사회는 어딜 가나 굉장히 보수적이구나....;;)

지방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기업의 기부에 의지해야 하는

환경 생태적 실천 프로젝트는 상상하는 모습에 닿기엔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멧비둘기, 맷돼지, 나이팅게일, 들소, 번개오색나비, 비버, 조랑말, 지렁이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서 생물 다양성을 안정시키는 데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다양성의 주도자라면 인간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속 자연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 혼자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런데 생물다양성이 자연에서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어디에서 왔겠는가.

우리는 자연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의 착취와 기술적 오만 뒤에

토양으로 다시 눈을 돌림으로써

우리 종들이 어떻게 단지 다음 수십 년 동안이 아니라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

우리의 창의적 지능과 전문 기술을 우리와 달리

수백만 년의 연구 개발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이 시스템과

결합시킬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토양은 우리의 기반이고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토양은 동그라미의 완성이다.




인간의 농업이 등장하기 전에 땅을 지배했던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행동양식을

더이상 외면하면 안되겠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채집수렵문화의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인간과 포식동물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야만 시대가 이제는 문명 시대로 바뀌었으면

다툼과 투쟁 말고 얼마든지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인간 중심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멈추기 어려울만큼 팽창되어버린 개발을 위한 집약적 농업에서

재야생화로 방향키를 돌려 자연이 회복되기까지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만 봐주면 좋겠다.

자연이 우리보다 더 알아서 잘 한다.

인류세가 자연에게 가한 부담이 이미 너무나 막대하다.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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