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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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에서는 수상작품집을 출간함으로써 해당 출판사의 브랜드 마케팅과 더불어

신진작가들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활동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추세이다.

미래엔도 이 흐름에 발맞춰 '전국 덕질 자랑' 을 주제로 하여

작년부터 "미래엔 단편 에세이 공모전" 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단편 에세이들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제2회 수상작품집은 그래서 <오늘의 덕질> 되시겠다.

https://blog.naver.com/hyuna5071/222782581256

 

작년에 출간된 제1회 수상작품집은 바로 <이웃덕후 1호> 였다.

덕후의 삶은 참으로 스펙트럼이 넓다.^^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취향 중에서 2023년에 꼽힌 주제와 분야는

SF, 책, 여성 아이돌, 발레, 식충식물, 로맨스판타지, 인형까지

모두 일곱 덕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상과 취향에 진심인 이들이 용기 내어 자랑하는 것을

이제는 수용하고 나아가 응원도 해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쪽 구석에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진실로 덕후를 권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하게 되어 있다.

지금의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것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내가 상상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저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덕질은 생산성이 없으니 당연히 의미없는 활동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에게

이 일곱 덕후는 비로소 덕질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제가 다양해서 독자마다 이해와 공감의 폭과 깊이가 각각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 하기에 즐겁고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독서모임의 쓸모를 높이 보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수많은 전환점들을 만났고,

또 때로는 미처 알아보지 못해 조용히 통과했을수도 있다.

덕후를 권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공감이 없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역시 1회보다는 2회가 나은가보다.

이번에 나온 제2회 미래엔 단편 에세이 수상작품집 <오늘의 덕질>은

재밌어서 2독을 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여성 아이돌, 발레, 식충식물, 로맨스판타지, 인형을 향한 덕질은

나의 취향과 겹치는 지점은 없었지만

저들의 세계는 또 저런 기쁨이 있구나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글의 맛이 있는 에세이들이다.

이동하면서 가볍게 한 꼭지씩 읽기에도 좋은 구성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 수상작품집의 순위와 나의 취향이 딱 겹친다.

"'덕후' 라는 종족은 꼭 스스로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경험한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라고 식충식물 덕후가 말하기도 했는데 나에게 무언가의 덕후라고 붙일만한

후보들을 꼽자면 책, 여행, 등산, 조깅, 소설... 정도.

이렇다 보니 나 역시도 SF와 책 덕후의 이야기에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다.

​책 덕후가 사랑하는 장소에 도서관이 빠질리가 없다.

그 곳에서 만났는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노랫말이 떠오를 이야기들로

피식 웃음도 나고 괜히 나 혼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욕망의 정수가 도서관에 다 모여 있다니...ㅋㅋㅋ

역시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있다.

 

 


 

 

SF 덕후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옥타비아 버틀러를 자기 소개에 언급하며

이러한 이야기들에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에세이 속에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가 등장한다.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으로 고전적인 SF소설도 만나긴 했지만

현재까지 내가 만나본 SF 중에서 원픽으로 꼽는 작품이 바로 테드 창의 이 소설집이다!

https://blog.naver.com/hyuna5071/222857154612


8개의 단편 중에서 표제작과도 같은 "네 인생의 이야기" 는

영화 <컨택트> 로도 만나볼 수 있는데 영화나 원작이나 제각각 다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미 미래의 결과를 알고 그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인 외계인 헵타포드가

어느 날 지구를 방문했고 지성을 가진 인간 집단들은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고자 한다.

언어학자 루이즈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점차 자신도 헵타포드와 같이 사고하게 되고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미래에 자신의 딸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결정을 하는 언어학자 루이즈.

루이즈의 결정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알면서도 불행한 미래를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불행한 미래를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제외하고 운명만이 남는다면 인간이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작가 자신의 인생 경험과 SF 작품들을 연결지어 소개하면서

SF 덕후가 된 자신의 선택에 그럴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설파한다.

SF 덕후 뿐만이 아니다.

그 대상이 다를 뿐, <오늘의 덕질> 에세이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세상을 보여준 그 대상을 향해 온전히 애정을 보낸다.

그로부터 받은 것이 감사하고 자신을 좀 더 성숙하게 해주기에

나 혼자 좋아하는 걸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깨달음이 독자들에게도 기분좋게 전염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각자가 꾸려가고 있는 인생의 행간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함을 발휘하는 건 어떨지.

 

누군가에겐 하찮은 것이겠지만

바로 그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가 된다.

일곱 덕후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 에세이 책 공간에서

얼마나 재밌어 했고 마음의 치유를 받았을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 나에게 소확행이란 내 일상의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지금 이 순간, 이 기록의 행위에 있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와 겹치기도 하니

이제는 덕후 대열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기록하는 행위에 몰입할 때의 순수한 기쁨이 있으니 '기록 덕후' 도 추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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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불안하다면 -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 지음, 양소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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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과 불안감에 대해 연구해온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며 살아가는 감정인 불안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떤 태도로 대처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심리학책 <불안이 불안하다면> 에서 불안은 결코 질병이 아니며

과거 그렇게 접근했던 인류의 역사에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경험과 과학적 연구 결과를 버무려서 "불안의 쓸모" 를 역설함으로써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을

3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 삶의 불청객이라 생각하기 쉬운 불안이 사실은

인간에게 친구가 되자고 속삭이는 것이라며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를 소환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친구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중요한 말을 해 주는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이듯이

그간 도망가고 싶게 만들었던 불안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인간에게 제법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불안, 걱정, 우울, 초조함은 그저 불완전한 감정일 뿐이며

누군가에게 태도로 강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안을 공포나 질병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특징을 밝혀줄 하나의 감정으로 접근하여

기존의 오해를 깨부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불안의 정의, 불안이 존재하는 이유,

중세 암흑기의 현대 의학에서부터 시작된 질병으로서의 불안의 역사,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법 등을 만나게 될 것이다.

불안은 우리 신경계를 활성화해 긴장감을 높이고

심박수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로 '목을 조르다',

'고통스럽게 조이다', '불편하다' 를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이단어는 불쾌함과 더불어 두려움으로 마비된 몸과

우유부단함에 사로잡힌 마음,

다시 말해 신체적 및 정신적 질식의 결합을 뜻한다.

<불안이 불안하다면> P.20

불안함을 느끼게 되면 인간의 시야는 숲 대신 나무를 보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고

부정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인간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경계심이 작동하게 되면서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이는 불안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불안에 대처해왔던 우리의 자세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안이 보낸 경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시하고 덮어버림으로써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외면하는 것은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보이지 않으면 해결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뿐.

본인이 느끼는 현재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때부터 불안은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쓸모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과 지혜를 발견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르게 불안해하는 법의 시작이다.

불안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불안을 내가 쥐락펴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불안이라는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민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실험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안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경험론과 과학적 관찰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을 때

화학적 약물을 통해 고통을 가라앉히는 것이 산업이 되었고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불안이 질병인 것처럼 여겨져

빠른 시간내에 고통을 잠재우는 것의 효용성을 찬양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전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약물의 힘에 의존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목격하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인간의 조건을 거역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본의 아니게 인류는 지혜를 얻었던 경험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바로 그것이다.

남녀노소, 빈자와 부자 상관없이 인류는 안전과 생명에 대한 최고 수준의 불안을 경험했다.

전염에 의한 예측 불가능성은 인간을 조급하고 이기적이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을 결집시키며 존엄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인생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그 때의 불안이 오히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주의력과 추진력을 끌어모으게 했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기의 순간에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했고

함께 하는 것의 힘을 일깨워 주었다.

전염병의 대유행이 위기였음은 자명했으나

생존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폐기하지 않았고 창의성으로 연결시켜

삶의 진보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인류 앞에 예고없이 찾아온 뉴노멀 시대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의 삶을 무조건 행복하게 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늘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만이 인간을 만족시키는 삶 또한 아닐 것이다.

변화가 없는 삶은 인간에게 곧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전 인류가 경험했던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을 마주하게 했고

적응할 수 있게 했으며 나에게 이로운 환경으로 만들게 하는 힘을 심어주었다.

심리학책 <불안이 불안하다면> 을 읽으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인류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서 나는 불안의 쓸모를 이렇게 찾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디 가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불안과 친해지는 3가지 원칙' 방출~~!!!

1. 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보다. 불안에 귀를 기울여라.

2. 불안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두어라.

3. 만약 불안이 유용하다면

그 불안으로 목적성 있는 무언가를 하라.

<불안이 불안하다면> P.216

 

 

이 책에서 저자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는

불안을 '극복' 하는 게 목표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 뒤에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면 될 것이다.

앞으로는 "불안" 이라는 감정에 허우적대며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매몰되기 보다는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기회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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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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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베리에서 믿고 보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초판은 1996년에 <민주주의의 불만>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고

거의 4반세기 만에 전체 분량의 1/4을 새로 써서 나온 개정판의 제목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는 한국 사회에 그야말로 '정의' 열풍을 몰고 왔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에서는 시장지상주의를 비판했으며,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능력주의가 마치

절대선인양 사회 질서를 교란시켰다고 본 그의 문제의식이

이번에는 "민주주의" 로 향한다.

감수로 참여한 숭실대 철학과 김선욱 교수

마이클 샌델의 국내 번역서 대부분의 번역과 감수를 맡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만큼은 확실하다.

이번 책의 해제 역시 문장이 명료하고 깔끔한 정리 굿~~!

 

마이클 샌델의 글은 전후 논리가 촘촘하면서도 친절해서 자동으로 집중 모드가 된다.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목차를 통해 보이는 키워드들이 이번에 마이클 샌델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이 맞다!

정치경제학, 시민적 덕목, 임금노동, 자유노동, 자유주의, 케인스혁명, 절차적 공화주의....

현재 우리 모두가 느끼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떤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변화해 왔는지 민주주의의 서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불만에 대한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도.

아하~~

표제관련정보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였구나.^^

민주주의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과 달리

언제부턴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기 시작하더니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불편함과 온갖 해악들은

오롯이 제도를 만든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격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이후 3년 만에 마이클 샌델이 꺼낸 불편한 화두는

"불만을 너머 파탄이 난 민주주의" 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도 정말 그럴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시원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 독일의 통일을 보았던 시기까지

우리는 냉전시대를 지켜봤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공산주의가 붕괴되며

미국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살아남아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로 진화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재로선 불행히도 그래 보이진 않는다.

공동선을 향해 바로잡아야 하는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이기만 하다.

미국 건국 초기 도덕적 덕목과 자치의 역량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여

국가가 부패한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공화주의와 다르게

인간의 욕망대로 자유롭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유지상주의가 점점 팽배해지면서 시민적 덕목은 고사하고

사회적 결속력마저 붕괴되어 가는 현실 속에 무기력하게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까지 활개를 치며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험중이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에게서 마치 사상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강제적인 과세법에 저항하며 독립을 이뤄냄으로써

유럽발 부패를 끊어내고 공화주의적 이상을 신대륙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는 열망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공화주의는 시민적 덕목과 소박함을 갖춘 시민으로 국가를 구성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적 시민의 권리보다 소비자 마인드가 부상하게 되고

시장에 대한 믿음과 금융의 역할이 커지면서

경제 논쟁에서 시민적 노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문제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자유지상주의의 파급력은 한국에서도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에 대한 의심이 있다면 이 책이 적절하다.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엘리트들은 사익을 추구하며

죄책감없이 시민들에게 금융 자본주의적 폭력을 행사하지만

부채로 허우적대는 소시민들은 온갖 폐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시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만 죽어나고

설상가상 공동체의 도덕적 결속력마저 느슨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발전을 꿈꿨지만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인지 묻고 싶어진다.

인간이 만든 제도지만 일부에게만 이로울 뿐,

평범한 시민들은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수단으로 삼으며

비인간적인 산업과 상업의 방대한 구조 속에서 교묘하게 존재 가치를 착취하고 있다.

건국 초기 공화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형성해 갔던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 목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

자발주의적 자유관이 지배하는 세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미국적 이상, 공화주의적 이상은 점점 소멸되어 가고

번영과 성장에만 몰두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욕망이 민주적 지배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좋음(the good) 과 옳음(the right), 무엇이 선일까?

사생활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해주는 자유주의.

개인만 있고 공동선, 공적인 삶은 황폐해져 가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과연 건강해 보이는지,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민의 바람직한 덕목을 형성하게 한다는 것도 특정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라 보았던 존 롤스는 정면으로 공화주의적 발상을 거부한다.

그는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하며 개인권이 공적인 삶보다 중요하다는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들이

인간과 삶에 깨달음을 준다는 믿음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장 논리의 효율성이 모든 사회 문제를 덮어버리고 번영을 제공할 거라는

자본주의, 자유 지상주의의 교묘한 술수에 맞서

"시민적 공화주의" 라는 공공철학으로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가 민주적 통제에 순응하지 않음으로 해서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동선을 포기하지 않는 자유적 공동체주의자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시민이 시민으로 적절한 자치를 행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미국 국가 건설 당시부터 품었던 시민다움.

마이클 샌델은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기라고 진단하며

미국 공화주의의 기초 정신을 끌어올려 다함께 공적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사실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편 무섭기도 하다.

시장의 지배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적 덕목을 갖춘 국민들이

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모두가 바람직한 삶, 공동선을 만들어서

인간 친화적인 민주주의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돈이나 권력, 사치나 허영 같은 부패한 힘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경제권력을 지배할 수 있도록

인간적인 덕목, 공공의 정신이 이 사회에서 주류의 공공철학이 되길 희망한다.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자치의 역량, 시민성에 대한 인식, 공적인 삶의 회복.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형성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공화주의,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기까지

마이클 샌델식의 철학적 해석과 통찰이 담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이번에도 역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설득력 충만한 인문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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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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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덕후라면 파스칼 키냐르는 첫 입에 감히 '정복' 이라는 말을 꺼내기는 무리수일 것 같고

다만 조심스럽게 주변이라도 맴돌고 싶은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런 마음에 <음악 혐오> 부터 만나 보겠노라 책장에 들였지만

첫 인연은 따로 있었나보다.

을유문화사 고전 시리즈 신간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부터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경우는 며칠 전 존 버거를 통해 이미 겪기도 했다.

마음이 가면 책으로라도 만남의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서

<A가 X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기> 를 곁에 두었지만 결국은

<결혼식 가는 길> 을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되었드랬다.

문학이나 작가와의 '연'은 독자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넘어서서,

때로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세상은 '우연' 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필연으로 가기까지 어쩌면 당사자에게만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삶의 경험과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인해서

독자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어떤 작가나 작품에 이끌리듯 책을 펼친다.

좀 더 특별한 연이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 언제나 문학은 나에게 신비롭다.

파스칼 키냐르의 글도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당당하게 자신의 문학론을 설파해가는 파스칼 키냐르의 거침없는 문장들 속에서

신비로움과 통찰이 주는 그만의 깊이를 처음으로 겪어보았다.

그리고 감당하기로 들어간다...

 

당황스러운 첫 독자는 그의 문장을 내 온몸으로 담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첫 발을 내디딘 느낌이다.

언어가 표현하는 그 속내가 접하면 접할수록 너무 깊어서

내 눈으로 문장은 읽고 있으나 그의 말대로

언어 속에 빠져 익사할 수 있는 덫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집중, 몰입하면서 읽지 않으면 여지없이 헤매게 된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을 읽다 보면

이성과 언어에 파묻혀 작품 전체를 보는 시야를 잃게 되는 오류,

그의 말대로 홀려버려 독자로써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음을 일러둔다.

좀 각오하고 보시길...!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문체는

그것을 읽는 자를 전속력으로 덮쳐드는 방식으로,

독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초반에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키냐르의 문장에 적응하는 새벽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곧 몰입으로 인한 보상의 시간도 올 것이다.

각오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부부 관계가 주는 편안함은 곧 예측 가능함에서 오는 것일 터.

파스칼 키냐르와의 만남은 바로 이 부부 관계가 주는 편안함의 극단에 있다.

한 마디로 예측 불허.

독자로 하여금 쉬이 예상을 허용하지 않는 파편적인 글들이 난무하다 보니

어떤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고 전체의 맥락을 짚어보려는 독자의 노력에

끊임없이 제동을 거는 느낌이랄까...^^;;

첫 느낌은 이렇듯 정신을 못 차리게 어려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끝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었는데 뭔가 개운치 않다.

'내가 읽은 게 뭐지???'

(자연스럽게 자기반성의 시간이 이어지고 ㅋㅋ)

이어서 '다시' 책을 펼치게 하는 그런 마력이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속에는 그가 보물처럼 여기는 소론집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함도 있다.

독자의 주도하에 연결점을 찾아 책 한권을 이해하고 싶지만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녹록지 않기에

그의 문학론과 문체를 오롯이 수용하는 방법으로 나는 여러 번 곱씹기를 택했다.

그랬더니 어렴풋이 짙은 안개가 깔린 새벽이 점차 상쾌한 아침 하늘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언어, 말이 주는 덫에 빠지면 안 된다는 깨달음도

비로소 파스칼 키냐르 덕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저자가 심어준 가상의 삶 이야기를 인간 고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미지로 한결 더 깊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그간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 작중인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들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몰입하게 되는 과정들을 경험하긴 있으나

막연하게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속 이 구절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나의 행위에 대해서 좀 더 선명한 접근점을 찾은 것 같다.

음악이 현악기 속에 있지 않듯이

소설은 일상의 언어 속에 있지 않다.

문학 언어, 나이 없는 언어가 지역 특색을 띤 언어,

날짜 붙여진 언어보다 낫다.

소설은 언어 속에 있지 않다.

꿈이 결코 언어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꿈은 언어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언어 없는 동물들도 꿈을 꾼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P.157

 


 

이 책은 사실 키냐르의 책마다 "사색적 수사학"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키냐르에게 많은 스승들이 읽다고 이미 책 속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을 여는 인물은은

전통적인 서양철학사에 반기를 든 1세기 로마의 수사학자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개인 교사였던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이다.

서양철학사에서 잊혀진 이 인물의 반철학적 전통을 통해

키냐르는 이성적 논증보다 이미지 탐구에 천착하는 것이

어떤 문학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전통의 기원을 끌어올려 거침없이 보여준다.

"이미지 예술은 각 말을 관습과 분리해서 자연의 본성과 다시 이어 준다."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을 언어로 표현하여 설득하고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끼침으로써 수사학이 갖는 힘이 있던 시대에

프론토의 사색적 수사학은 당시로선 이단, 비주류, 비정상의 범주에 속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적인 반응을 부각시킬 뿐, 인간의 정서 유발은 안중에도 없었던

소피스트들의 수사학과 달리 프론토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로고스 방식 외에 에토스와 파토스의 방법도 끌어 들였으니.

키냐르는 이미지를 늘리고 신화를 구축해갔던 프론토의 수사학을 통해

당시 박해받았던 한 전통의 기록을,

망각되어왔던 이미지와 메타포의 흔적들을 정리하려는 것이라 밝히기도 하였다.

다수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전통이라는 힘을 얻은 것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또한 시간의 힘 앞에서 너무나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러한 반철학적 흐름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자신의 문학 이론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수사학의 기원을 되짚으며 키냐르의 문학론을 만나는 여정이 내게는 참으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독자, 플롯, 서스펜스, 작가의 문체와 어조, 멋진 서사의 조건,

키냐르식 소설가 분류법, 심연, 페르소나, 메타포, 그리고 이미지.

파스칼 키냐르가 문학을 옹호하는 방법을 이렇듯 폭넓게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로고스가 가하는 폭력에 관한 부분이었다.

메타포(이동)를 통해 존재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존재자 속으로 옮겨가도 결코 거기에 체류하지 않는다.

언어는 결코 직접 말하지 못한다.

언어는 잠깐의 휴식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실어 나르고,

빼내고, 솟구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얼굴을 가질 수 없는 말들을 전달한다.

폭로되는 사실은 언어 속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이동하고 옮겨 가며 흔적 아래로 사라지고,

제 붕괴에서 떨어지는 돌 틈으로 끊임없이 달아나며,

모든 단일성의 맥락을 벗고 드러난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P. 26

책방투어를 하다 보면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많은 곳에서

이따금씩 발견하게 되는 작가들 중에 한 명이

바로 파스칼 키냐르의 스승이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조르주 바타유.

도서관에 가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파스칼 키냐르와 조르주 바타유는 나에게 이전까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이

각각 알고 싶은 작가들이었는데 이렇게 연결점이 생긴다.

세상도 이렇듯 다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문학은 반反윤리다.

그것은 고상하게 다듬어진 정서이고,

제 질료의 추출, 언어의 추출이고,

제 원천에 자리한 약동의 재생이다."

"문학적이라는 건 관습에서 문자가 절대 분리되지 않는

생물학적 바닥까지 거슬러 오르는 무엇이다."

"소설은 언어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다른 무엇을 담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P.50

 

 

 


 

 

언어는 사람의 지혜로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하는 '계시'의 관점이 아니라

그저 신호하고 가리킬 뿐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언어 속에 빠져 익사하는 일은 좀 줄어들까?^^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이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고정관념을 건드려주는,

내게는 키냐르의 문학론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이 그러했다.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고, 나에게 다소 이런 고정관념이 있었던 듯 하여.

작가인지 사상가인지 모를 경계에 서 있지만

존재감 만큼은 확실하고도 커 보였던 키냐르의 문체를 만나

개인적으로 어지러웠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깨달음들이 적지 않아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내용은 이렇다 하고 이 책의 외적인 속성으로도

내용을 담은 폰트가 취향저격이었고

요철감이 느껴지는 책표지의 두께감과 색감,

키냐르의 얼굴이 있는 폭넓은 띠지도 맘에 든다.

원래 띠지는 읽고 나면 버리는 타입이지만 이건 보관해야지!

키냐르의 문장을 처음 만난 기념으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타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나 스스로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면서 사는 삶이 곧 내가 주인인 삶 아니겠어?^^

텀을 두지 않고 두 번 연속 읽는 책이 흔치 않은데 키냐르는 그걸 해냈다...

(내가 뭐라고...후훗...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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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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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교수라면 균형감있는 시각일거라 믿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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